일본 덮친 제24호 태풍 '크로반'…한국 덩달아 비상 걸린 이유

제24호 태풍 '크로반'(KROVANH)이 한반도를 비껴 일본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직접 상륙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정작 안심하기는 이르다. 크로반이 일본 남서부를 훑고 지나가며 기록적인 폭우를 뿌렸고, 제주에서는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크레인이 전도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태풍이 비껴갔다는 소식에 잠시 누그러졌던 긴장감이, 일본의 피해 규모가 드러나고 강풍특보 지역이 오히려 확대되면서 뒤늦게 다시 커지고 있다.

제24호 태풍 크로반 위성 사진 / NASA

오키나와 인근서 한 바퀴 돈 크로반, 8일 소멸 수순 밟을듯

기상청에 따르면 크로반은 7일 오전 3시 현재 일본 오키나와 동남동쪽 약 350㎞ 해상에서 시속 7㎞ 속도로 동북동진하고 있다. 중심기압은 990hPa, 최대풍속은 초속 20m로 태풍 강도 중 가장 낮은 '약' 단계다.

이 태풍 정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이동 경로다. 크로반은 오키나와와 아마미제도 주변을 북상한 뒤 동중국해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다시 오키나와 부근을 거쳐 동쪽으로 이동하며 오키나와 주변에서 사실상 한 바퀴를 도는 이례적인 궤적을 그렸다. 오키나와기상대는 태풍을 이동시키는 지향류, 즉 태풍 동쪽의 태평양고기압과 북쪽의 중국 동북부 고기압, 서쪽의 티베트고기압, 남쪽의 필리핀 부근 고기압 사이의 흐름이 약해진 것을 복잡한 진로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크로반은 7일 오후 3시께 오키나와 동쪽 약 440㎞ 해상에서 중심기압 994hPa, 최대풍속 초속 15m 수준의 열대저압부로 약화할 전망이다. 이후에도 8일 오전 3시께 일본 가고시마 남남동쪽 약 390㎞ 해상까지 이동하며 세력을 완전히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태풍이 열대저압부로 바뀐다고 해서 비구름과 저기압 자체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약화 이후에도 주변 지역에는 비와 강풍, 높은 파도가 이어질 수 있다.

제24호 태풍 크로반 예상 이동경로 / 기상청

이즈제도 관측 사상 최대 폭우...간토 전철망까지 마비

크로반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지난 3일부터 남서부를 중심으로 폭우와 강풍 피해가 이어졌다. 오키나와현 기타다이토섬에서는 3일 오전 1시29분 최대순간풍속 초속 30.3m가 관측됐고, 이시가키섬에서는 시간당 48.5㎜의 비가 쏟아져 일부 도로가 약 50㎝까지 물에 잠기고 차량 2대가 침수됐다. 같은 날 오키나와현을 오가는 항공편 6편과 여객선 56편이 결항했다.

가고시마현에서는 3일부터 5일까지 도시마촌과 야쿠시마정을 중심으로 3940가구, 6856명에게 피난지시가 내려졌다가 이후 전부 해제됐다. 아마미시에서는 주택 2채가 일부 파손됐고, 야쿠시마 일부 지역에서는 수백 가구 규모의 단수·탁수 피해도 발생했다. 미야자키현에서는 4일 집중호우로 일부 지역 24시간 강수량이 300㎜를 넘어섰고, 한때 20만여 명에게 피난지시가 내려지는 한편 산사태와 도로 침수·통제도 잇따랐다.

피해는 태풍이 오키나와를 벗어난 뒤 오히려 더 커졌다. 일본 기상청과 NHK 등에 따르면 도쿄도 남쪽 이즈제도 니이지마무라에는 6일부터 만 하루 동안 관측 사상 최대치인 430㎜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 지역에는 일본 재해경보 5단계(레벨 1∼5) 가운데 가장 높은 '레벨 5' 토사재해 특별경보가 발령됐다. 레벨 5는 이미 재해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어 안전한 상태로 대피가 권고되는 최고 수준이고, 그 아래 레벨 4는 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어 대피가 권고되는 단계다. 일본 기상청 관계자는 "특별 경보가 발표된 지역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폭우가 내렸다"고 전했다.

일본과 한반도 주변을 지나는 제24호 태풍 '크로반' 위성 사진 / NASA

간토 남부에도 폭우가 이어지면서 7일 오전 7시30분 기준 지바시와 이바라키현 다카하기시에 레벨 4 폭우 위험경보가 발령됐다. 특히 다카하기시에서는 시내 하천 수위가 범람 위험 수준을 넘어서면서 이날 오전 6시45분 기준 3721세대, 8627명에게 피난지시가 내려졌다. 도쿄도를 흐르는 젠푸쿠지강에도 레벨 4 범람 위험경보가 발령됐다.

폭우로 교통망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본 교통 당국은 이날 새벽 지바시 주오구의 지하 교차로 차량 통행을 사전에 통제했다. 국토교통성이 지난달 폭우 당시 이곳이 침수돼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 도입한 '예방적 통행규제'가 실제로 시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도권 전철 운행도 차질을 빚어 JR 야마노테센·주오센·소부센 등 주요 노선은 운행이 감축됐고, JR오메센·조반센 등 일부 노선은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운행이 정지됐다.

일본 기상청은 이번 폭우가 북상한 가을 장마전선에 크로반으로부터 유입된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더해지며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태풍 자체는 7일 중 열대저압부로 약화할 전망이지만, 간토·도카이·도호쿠 지역에는 선상강수대(띠 모양의 강한 강수구역)가 발달해 추가로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보했다.

일본에 폭우 피해 입힌 제24호 태풍 크로반 / 기상청

태풍 멀어졌는데 왜 지금 긴장하나...제주 전역 강풍주의보, 부산·전남에도 강풍특보

크로반이 한반도로 직접 북상할 가능성은 태풍 발생 초기부터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발생 직후에는 한반도행 우려가 제기됐지만 이후 진로가 남쪽과 동쪽으로 계속 바뀌면서 우려가 잦아드는 듯했다. 그런데 정작 태풍 중심이 한반도에서 멀어진 지금, 국내 경계감은 오히려 뒤늦게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 4일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에서는 작업 중이던 크레인이 강풍에 넘어져 2명이 크게 다쳤고, 가로수와 신호등 등 시설물 피해도 났다. 7일 현재 제주 전역에는 강풍주의보가 유지되고 있으며 순간풍속이 초속 20m 이상, 산지에서는 초속 25m를 웃도는 곳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풍 영향은 제주에 그치지 않고 부산 서부·중부·동부까지 이날 오전 10시를 기해 강풍주의보가 새로 발효됐고, 전남 여수·완도 등 일부 지역에도 강풍특보가 내려진 상태다.

제24호 태풍 '크로반'의 간접영향으로 강풍특보가 내려진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 뉴스1

해상 상황은 더 거칠다. 제주 전 해상과 남해서부 서쪽 먼바다에는 풍랑특보가 발효돼 바람은 초속 9~18m, 물결은 최대 5m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태풍 중심이 멀어졌다고 바다까지 곧바로 잠잠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먼바다에서 만들어진 긴 주기의 파도가 해안까지 밀려드는 '너울'이 이어질 수 있어서다. 너울은 멀리서 보기엔 파도가 높지 않아 보여도 갑자기 강한 물결이 해안으로 들이칠 수 있어 방파제나 갯바위 접근 자체가 위험하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번 강풍·풍랑특보는 8일까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겠으니 항해나 조업하는 선박은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며 "현수막, 나뭇가지 등 낙하물과 쓰러지거나 부러진 나무에 의한 피해가 우려되니 보행자와 교통안전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7일 오전 제주는 대체로 흐리다가 오후부터 구름이 많아지며, 중산간·산지에는 오전 9시~낮 12시 사이 곳에 따라 비가 내리겠다. 예상 강수량은 중산간·산지 5㎜ 안팎으로, 전날까지 이어진 비는 이날 오전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될 전망이다. 8~10일에는 제주 전역에 가끔 구름이 많은 가운데 별도의 강수 예보는 없다.

제24호 태풍 '크로반'의 간접영향으로 제주에 강풍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제주시 건입동 항구에서 작업 중인 크레인이 쓰러져 있는 모습 / 뉴스1

올해 벌써 태풍 24개째...한국 상륙은 아직 1개뿐, 가을 태풍은 이제부터

크로반은 올해 발생한 24번째 태풍이다. 8월에는 10개의 태풍이 발생해 1966년 이후 60년 만에 가장 많은 8월 발생 수를 기록했고, 올해 누적 발생 수(24개)도 1991~2020년 평년치(25.1개)에 근접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로 한국에 영향을 준 태풍은 기상청 통계상 현재까지 1개에 그친다.

기상청의 평년 통계를 보면 북서태평양에서는 9월 평균 5.1개, 10월 3.5개, 11월 2.1개의 태풍이 발생한다. 이 중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9월 평균 0.8개, 10월 0.1개로, 9월이 연중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이 가장 많은 달이다. 크로반이 약화하더라도 가을 태풍 시즌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다. 일본기상협회는 올해 9월 태풍 발생 수를 평년 수준, 10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태풍이 따뜻한 해역을 오래 지나며 강하게 발달하거나 멀리 떨어진 태풍이 가을장마 전선에 수증기를 공급해 집중호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크로반이 물러가더라도 다음 태풍 정보에 계속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태풍 영향으로 높은 파도가 일고 있는 제주 바다 자료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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