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다른 과일 다 죽쑤는데… 나 홀로 대풍년 터진 '가을 제철 과일'

폭염이 대부분의 작물을 힘들게 한 이번 여름, 유독 무화과만큼은 풍년을 맞았다.

무화과 선별 작업 중인 모습. / 연합뉴스

뜨거운 볕을 오래 견딘 만큼 당도와 향이 한층 짙어지면서, 9월 지금이 무화과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시기로 꼽힌다. 폭염이 여러 농작물에 시름을 안긴 여름이었던 만큼, 무화과가 보여준 이례적인 풍작은 더욱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온다.

농가엔 시름, 무화과 밭엔 풍년

무화과는 따뜻하고 볕이 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아열대성 과일이다. 국내 최대 산지인 전남 영암에서는 올여름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오히려 좋은 생육 조건이 만들어졌다. 일조량이 풍부해지면서 열매의 색이 짙어졌고, 강우량이 적었던 만큼 당도 역시 높게 형성됐다. 폭염기에는 수분 증발이 많아지는 대신 당분이 농축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런 기상 조건이 마침 무화과에는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다른 작물들이 폭염으로 신음하는 사이, 무화과만큼은 '기후 위기의 역설'이라 불릴 만큼 생산량이 늘어난 셈이다.

시장의 반응도 빠르다. 대전의 제과점 성심당은 2024년 처음 선보인 뒤 매년 여름 끝자락마다 화제를 모으는 '무화과시루'를 다시 출시했다. 우유 크림에 무화과 콩포트를 더하고, 그 위에 손질한 생무화과를 켜켜이 올린 케이크다. 무화과 특유의 은은한 단맛과 톡톡 씹히는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으로, 출시 첫해부터 판매 시작과 동시에 품절되는 인기를 끌며 시즌 한정 메뉴로 자리 잡았다. 늦여름 무화과가 본격적으로 여물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출시되면서, 제철 과일을 기다려 온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반응은 비단 한 매장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새 여러 베이커리와 카페들이 앞다퉈 무화과 시즌 메뉴를 선보이면서, 무화과가 여름 끝자락을 알리는 하나의 시그니처 식재료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전국 단위 새벽 배송이 자리 잡으면서, 산지에서 수확한 무화과를 예전보다 신선한 상태로 받아볼 수 있는 유통 환경도 갖춰졌다.

소화 돕는 피신, 장 건강 지키는 펙틴

무화과가 주목받는 것은 맛뿐만이 아니다. 대표 성분인 피신(ficin)은 천연 단백질 분해 효소로, 고기를 먹은 뒤 무화과를 곁들이면 소화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제품과 함께 먹을 때도 이 피신 성분이 단백질 소화를 도와 위장을 편안하게 지켜준다는 설명이다.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도 풍부해 장내 유익균 증식을 돕고 대장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배변 활동에도 도움을 준다. 변비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무화과가 꾸준히 추천되는 이유다.

무기질 구성도 다채롭다. 마그네슘과 칼륨이 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근육 이완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폴리페놀과 안토시아닌 성분은 혈관에 쌓이는 산화 스트레스를 낮춰 혈액 순환에 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항산화 성분들은 혈관 벽의 노화를 늦추는 데도 도움을 줘, 심혈관 건강을 챙기려는 이들에게 무화과가 자주 추천되는 배경이 된다. 여기에 칼슘과 철분도 소량 함유돼 있어, 다른 제철 과일과 비교해도 무기질 구성이 고르게 갖춰진 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에는 장과 뇌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장-뇌 축(gut-brain axis)' 개념에 따라, 무화과가 소화기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자율신경의 긴장까지 함께 풀어주는 과일로도 조명받고 있다.

여름내 높아져 있던 교감신경의 흥분이 환절기 일교차와 부딪히면 피로와 소화불량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이럴 때 무화과 한두 알이 부교감신경을 깨워 몸을 이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화액 분비가 원활해지고 심박이 안정되는 방향으로 몸의 균형추가 옮겨가는 셈이다.

지중해에서 건너온 오래된 과일

무화과는 인류가 재배해온 과수 중에서도 손꼽히게 역사가 깊다. 수천 년 전부터 지중해와 중동 지역에서 재배돼 그 지역 사람들의 식탁을 지켜온 과일로 전해진다. 성경과 고대 문헌 여러 곳에도 등장할 만큼 오랜 재배 역사를 가진 과일로, 건조시켜 저장 식품으로 활용해온 전통도 함께 이어져 왔다. 국내에서는 보통 여름부터 가을 사이, 특히 8월에서 10월 무렵까지가 맛이 가장 좋은 시기로 꼽힌다. 잘 익은 무화과는 껍질이 얇고 탄력이 있으며, 만졌을 때 살짝 눌리는 정도의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것이 좋은 상태다. 반대로 표면이 갈라지거나 즙이 흘러나올 정도로 물러진 것은 이미 숙성이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아 구입 시 주의가 필요하다.

무화과 자료사진. / Stock Holm-shutterstock.com

한의학적으로도 무화과는 오래전부터 소화기를 다스리는 식재료로 여겨져 왔다. 성질이 평이하고 맛이 달아 비위를 편안하게 하고 기력을 보충하는 데 쓰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예로부터 목이 붓거나 기침이 잦을 때,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 무화과를 활용한 민간요법이 전승돼 온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별 요리에도 두루 쓰이는 만능 과일

무화과는 서양 요리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식재료다.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는 말린 무화과를 치즈나 와인과 함께 즐기는 문화가 발달해 있고, 프로슈토 등 염장육과 생무화과를 곁들이는 조합도 전통적인 애피타이저로 꼽힌다. 중동 지역에서는 무화과를 꿀에 절이거나 견과류와 함께 조려 디저트로 즐기는 경우도 흔하다. 국내에서도 이런 조리법을 응용해 무화과와 견과류, 치즈를 함께 낸 안주나 브런치 메뉴가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그대로 먹어도, 곁들여도 좋은 무화과

무화과는 손질이 까다롭지 않아 활용 폭이 넓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씻어서 껍질째 그대로 먹는 것이다. 껍질에도 영양 성분이 있어 잘 익은 무화과라면 껍질째 먹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의견도 있다. 부드러운 과육과 톡톡 씹히는 씨앗의 식감이 별다른 조리 없이도 매력적이다.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 물기를 제거한 뒤 꼭지만 떼어내고 반으로 갈라 먹으면 손질은 끝이다.

곁들임 식재료로도 무화과의 활용도는 높다. 플레인 요거트에 무화과를 잘라 올리면 새콤한 맛과 무화과의 은은한 단맛이 잘 어우러져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손색없다. 견과류와 함께 먹는 조합도 추천할 만하다. 호두나 아몬드에 든 트립토판과 비타민B군이 무화과의 미네랄과 만나면 신경전달물질 생성을 도와 심신 안정 효과를 높인다는 설명이다. 루꼴라나 생햄을 곁들인 샐러드에 무화과를 더하면 씁쓸하고 짭짤한 맛 사이에서 단맛이 도드라지는 조합을 즐길 수 있고, 토스트에 크림치즈와 함께 올려 먹어도 잘 어울린다. 발사믹 식초를 살짝 뿌리면 새콤달콤한 풍미가 한층 살아나는 것도 무화과 샐러드의 매력이다.

오래 두고 먹고 싶다면 콩포트나 잼으로 만들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무화과를 설탕과 함께 뭉근히 졸이면 향과 단맛이 응축돼 빵이나 유제품에 곁들이기 좋은 형태가 된다. 여기에 레몬즙을 살짝 더하면 단맛의 균형을 잡아주면서 보존 기간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만든 콩포트는 냉장 보관하면서 몇 주에 걸쳐 조금씩 꺼내 먹을 수 있어, 짧은 제철 기간이 지나도 무화과의 풍미를 오래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다만 무화과는 상온에서 무르기 쉬운 과일인 만큼 구입 후에는 되도록 빨리 먹거나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고, 당도가 높은 편이라 혈당 관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적당량만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폭염이 남기고 간 아쉬움 속에서도, 무화과만큼은 이례적인 풍작으로 올가을 식탁을 달콤하게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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