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최악… 전 세계 주요국 75%에서 벌어진 '이 술'의 위기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가 술이 넘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소비량 기준 3년 치에 달하는 스카치위스키 재고가 쌓이면서, 업계는 198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에 빠졌다. 수요가 계속 늘 것으로 보고 생산량을 대폭 늘렸지만, 정작 소비가 예상과 거꾸로 꺾이면서 창고마다 팔리지 않은 술통이 쌓여가는 처지가 됐다.

위스키 자료사진. / Svittlana-shutterstock.com

10년 새 3배 이상 불어난 재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보면 현재 숙성 중인 스카치위스키의 양은 약 14억ℓ에 달한다. 10년 전 4억ℓ에도 못 미쳤던 것과 비교하면 3배 넘게 불어난 수치이자, 지금 팔리는 속도로 계산해도 3년은 족히 버틸 수 있는 물량이다. 재고 부담이 임계점에 다다르자 상당수 증류소는 이미 생산량을 3분의 1 넘게 줄였다. 업계에서는 스코틀랜드 전역 증류소 약 160곳 가운데 최대 4분의 1이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씨앗은 2010년대…코로나 특수가 부메랑으로

이런 공급 과잉의 뿌리는 20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업체들은 위스키 수요가 꾸준히 늘 것으로 내다보고 생산 라인을 키웠고, 코로나19로 집에서 칵테일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시기에는 생산량을 한 번 더 끌어올렸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술을 줄이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체재를 찾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건강을 챙기려는 소비자가 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 자체가 오프라인 술자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옮겨간 것도 소비 위축에 힘을 보탰다. 스카치위스키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는 1인당 주류 소비량이 2019년보다 11%나 줄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불황을 계기로 자금력이 약한 독립 증류소를 중심으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위스키만의 문제 아니다…전 세계가 '덜 마시는 시대'

이런 흐름은 스카치위스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주류시장 전반이 비슷한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진단이다. 글로벌 주류 데이터 기관 IWSR에 따르면 전 세계 주류 시장의 약 75%를 차지하는 22개 주요국에서 지난해 전체 주류 소비량은 전년보다 2% 줄었고, 시장 가치로도 약 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와인 시장의 위축은 한층 뚜렷하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사이 전 세계 일반 와인 소비량은 10% 줄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전 세계 증류주(스피리츠) 소비량이 와인 소비량을 앞질렀는데, 이는 와인 시장이 위스키·보드카 등 증류주보다 더 가파르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위스키 자료사진. / Lukas Gojda-shutterstock.com

반면 무알코올·저알코올 주류는 정반대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무알코올 맥주 소비량은 8%, 시장 가치는 12% 늘었다. 전 세계 무·저알코올 카테고리 전체 시장 규모는 24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2022~2024년 사이에만 전 세계에서 약 6100만 명이 새롭게 무알코올 음료를 찾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술을 완전히 끊은 게 아니라, 평일에는 무알코올을, 주말에는 도수 있는 술을 택하는 식으로 음주 습관 자체를 유연하게 바꾼 소비자들이라는 분석이다. IWSR는 앞으로 10년을 내다본 첫 전망에서, 2035년이면 전 세계 주류 소비량이 2025년 수준에 가깝게 회복되겠지만 순감소 폭은 여전히 1%가량 남을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의 중심축도 그동안 주류 소비를 이끌어온 북미·유럽·중국에서 인도와 남미, 아프리카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도 열리는 반등 조짐…인도·Z세대가 변수

암울한 전망 일색은 아니다. 올해 상반기 스카치위스키 수출량은 5000만 상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늘었고, 수출액도 3% 증가하며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시장은 인도다. 지난달 발효된 영국·인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스카치위스키에 매겨지던 인도의 수입관세는 150%에서 75%로 절반이 낮아졌고, 2036년까지 40%까지 단계적으로 더 내려간다. 현재 인도 위스키 시장에서 스카치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해, 관세 인하가 본격화하면 성장 여력이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Z세대를 겨냥한 신제품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Z세대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통념과 달리, IWSR 조사에서 15개 주요 시장의 법정 음주연령 이상 Z세대 중 최근 6개월간 술을 마셨다는 응답 비율은 74%로, 3년 전(66%)보다 8%포인트 높아졌다. 이에 업계는 과일 향과 단맛을 강화한 위스키, 캔에 담긴 완제품 칵테일(RTD)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며 젊은 소비자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이런 반등 신호에도 업계 전반의 무게중심은 이미 '얼마나 더 파느냐'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소비 변화에 적응하느냐'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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