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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땅출판사, 에세이 ‘명함이 사라진 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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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상차림을 준비하다 보면 사과와 배가 함께 담긴 선물 상자를 통째로 냉장고 채소칸에 밀어 넣는 집이 많다. 상자 안에는 완충재 사이로 눌린 과일이 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고, 사과와 배가 나뉘지 않은 채 한데 뒤섞여 있기도 하다. 며칠 지나 상자를 다시 열어보면 한쪽 귀퉁이 과일만 물러지고 나머지 과일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배어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선물 상자는 대부분 사과와 배를 한 상자에 담아 포장하기 때문에, 상자를 열어보지 않고 그대로 냉장고에 넣으면 눌리거나 멍든 과일을 골라낼 기회를 놓친다. 상한 부위에서 나온 수분과 미생물은 옆에 놓인 과일 표면으로 옮아가면서 연쇄적으로 물러지게 만든다. 포장재를 걷어내는 김에 상자 바닥에 깔린 종이나 스티로폼도 함께 확인해 두면, 그 밑에 눌려 있던 과일까지 놓치지 않고 골라낼 수 있다.
익은 정도도 함께 갈라야 한다. 이미 물러지기 시작한 과일과 아직 단단한 과일을 한데 두면 익은 과일이 상하는 신호가 단단한 과일에까지 번지기 때문에, 완전히 익은 과일은 앞쪽에 꺼내두고 단단한 과일은 뒤쪽에 보관해 먹을 순서를 정해두는 편이 낭비를 줄인다.

사과와 배는 익어가면서 스스로 에틸렌이라는 식물 호르몬 가스를 내보내는 과일이다. 에틸렌은 주변 과일의 숙성과 노화를 앞당기는 신호로 작용하기 때문에, 밀폐된 좁은 공간에 사과와 배를 함께 넣어두면 서로의 에틸렌을 주고받으며 물러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상자 하나에 두 과일을 그대로 두는 것보다 종류별로 나눠 담는 쪽이 신선도를 지키는 데 유리하다.
같은 이유로 채소칸에 습도 조절 슬라이더나 다이얼이 있다면 과일과 채소를 구분해 맞추는 것이 좋다. 환기구를 열어두면 과일이 내뿜는 수분과 에틸렌이 빠져나가면서 칸 안이 저습도로 유지되는데, 이 상태가 사과·배처럼 무르며 상하는 과일에는 유리하고, 반대로 잎채소처럼 마르며 시드는 채소에는 불리하다. 미국 생활정보 매체 더키친도 에틸렌을 내보내는 과일에는 저습도에 환기구를 연 채소칸이 맞고, 잎채소에는 정반대인 고습도 설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사과는 실온에 두면 무르는 속도가 빨라지므로 냉장고 안에서도 냉기가 가장 세게 닿는 자리, 즉 안쪽 칸이나 냉장실 아래쪽에 두는 것이 좋다. 배는 사과보다 여유가 있어 상온에 대략 일주일 정도 둬도 크게 상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오래 두고 싶다면 냉장고로 옮겨 보관하는 것이 낫다.
다만 냉장 보관이 무조건 정답인 것도 아니다. 냉장고 안 건조한 공기는 과일의 수분을 서서히 빼앗아 식감을 팍팍하게 만들 수 있어서, 장기간 안정적인 저온을 유지하는 방식과 단기간 냉장 보관 사이에서 상황에 맞는 선택이 필요하다.
오래 두고 먹을 사과라면 다 읽은 신문지를 버리지 말고 한 장씩 사과를 감싸는 데 쓸 수 있다. 신문지로 하나씩 감싼 사과를 상자 안에 겹치지 않게 한 겹으로 늘어놓으면 개별 과일이 서로 눌리지 않고, 한 개가 상해도 신문지가 어느 정도 막아줘 옆 과일로 번지는 속도를 늦춘다.
매번 신문지로 감싸기가 번거롭다면 종이봉투에 사과를 담아 채소칸에 넣어두는 쪽이 더 간단한 절충안이다. 종이는 표면 습기를 조금씩 흡수해 물방울이 과일 표면에 그대로 맺히는 것을 막아준다. 어느 쪽이든 비닐로 완전히 밀폐하는 것보다는 숨을 쉴 틈을 남겨두는 포장이 낫다.
사과는 표면이 냄새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서, 양파나 마늘처럼 냄새가 강한 채소나 뚜껑을 덮지 않은 반찬 옆에 두면 과일에서도 은근한 냄새가 나게 된다. 채소칸을 나눠 쓴다면 사과와 배는 향이 강한 식재료와 최대한 떨어진 자리에 두는 것이 좋다.
씻는 시점도 중요하다. 먹기 직전까지는 씻지 않은 채로 보관하는 것이 원칙인데, 표면에 남은 물기가 부패를 앞당기기 때문이다. 씻어서 보관해야 한다면 물기를 완전히 말린 뒤 넣어야 하고, 물기가 남은 채로 넣으면 오히려 저장 기간이 짧아진다.
추석 선물로 사과와 배만 오는 것은 아니다. 감이나 홍시, 포도처럼 무르기 쉬운 가을 과일도 상처 난 것과 멀쩡한 것을 섞어두면 상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품목마다 적정 온도나 보관 기간은 다르더라도, 상한 과일을 먼저 골라내고 종류별로 나눠 담는 기본 원칙은 똑같이 적용해볼 만하다.
포장을 잘 나눠뒀다고 끝이 아니다. 며칠에 한 번씩 상자나 채소칸을 열어 물러지거나 즙이 배어나오는 과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런 과일이 보이면 바로 골라내 그 자리에서 먹거나 버려야 나머지 과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정리하면 선물 상자를 받는 순간 상자를 열어 손상된 완충재를 버리고, 사과와 배를 종류별로 나누고, 익은 과일은 앞쪽에 단단한 과일은 뒤쪽에 두는 순서를 한 번만 챙기면 된다. 이 네 단계만 지켜도 추석에 받은 과일 선물을 훨씬 오래, 흠 없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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