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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사 온 포도 한 송이를 씻어서 냉장고에 넣었는데 사흘 만에 밑동 쪽 알이 물러지고 곰팡이가 핀 적이 있다면, 그 선택이 오히려 포도를 더 빨리 상하게 만든 원인일 수 있다. 깨끗이 씻어야 위생적이라는 생각과 달리, 포도는 씻는 시점 하나만 바꿔도 보관 기간이 크게 갈린다. 포도가 한창 나오는 요즘, 사 오자마자 씻는 습관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포도를 사 오면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가 남은 채로 냉장고에 넣기 쉽다. 하지만 포도 껍질에 남은 물기는 표면의 미세한 상처를 타고 파고들어 과육을 무르게 하고, 곰팡이가 자리 잡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씻자마자 바로 먹을 것이 아니라면 씻지 않고 마른 상태 그대로 보관하는 편이 오래 간다.
포도 보관법을 두고 외국 매체들 사이에서도 이 지점에서 조언이 갈린다. 식초물로 씻은 뒤 완전히 말려 통풍되는 용기에 두면 오래 간다는 실험 결과가 있는가 하면, 씻는 행위 자체가 물기를 남겨 상하는 속도를 앞당길 수 있으니 먹기 직전에만 씻으라는 조언도 있다. 두 조언이 실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조건은 하나다. 포도 표면에 물기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포도 껍질을 만지면 손에 묻는 흰 가루 같은 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포도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연 왁스 성분으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외부 미생물이 침투하는 것을 늦추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씻는 과정에서 이 막이 씻겨 내려가면 포도알은 보호 기능을 일부 잃은 상태로 냉장고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 물기가 더해지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포도알 표면의 미세한 균열이나 줄기와 연결된 부위의 상처를 타고 물이 스며들면 과육 속 세포가 물러지고, 습한 표면은 곰팡이 포자가 자리 잡기 좋은 조건을 만든다. 반대로 표면이 완전히 마른 상태를 유지하면 왁스막이 남아 있는 한 보호 기능도 오래 유지된다.
포도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의 핵심은 물기 제거와 통풍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때 청소나 물기 닦기용으로만 쓰던 키친타월을 보관 용기 안에 까는 습기 흡수재로 써보면 효과가 크다. 키친타월은 원래 물기를 흡수하도록 만들어진 종이라 포도알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수분을 계속 빨아들여 표면을 마른 상태로 유지해 준다.
방법은 간단하다. 포도를 씻지 않았거나 씻어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뒤, 뚜껑에 구멍이 있거나 살짝 열어둘 수 있는 통 바닥에 키친타월을 두세 장 깔고 그 위에 포도를 줄기째 올린다. 알을 미리 떼지 않고 줄기가 붙은 상태로 두면 알 하나가 상해도 다른 알로 옮는 속도가 늦춰지고, 필요할 때마다 먹을 만큼만 떼어 먹을 수 있어 손이 덜 간다. 위에 키친타월을 한 장 더 덮은 뒤 냉장고 채소칸에 넣으면 된다.
리빙 매체 더키친이 진행한 보관 실험에서는 식초물로 씻은 뒤 완전히 말리고 이런 방식으로 키친타월을 깐 통풍 용기에 넣은 포도가 2주 가까이 단단한 상태를 유지했다. 이 결과는 특정 냉장고와 품종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모든 환경에서 똑같이 재현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물기 없이 바람이 통하게 보관한다는 원칙만은 품종이나 냉장고와 무관하게 적용된다. 밀폐용기에 물기 있는 포도를 꽉 채워 넣는 것이 가장 피해야 할 방식이라는 점도 이 원칙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선물세트로 포도를 받았다면 상자를 열자마자 상태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다. 이미 알이 터졌거나 물러진 부분이 있다면 그 알부터 떼어내 상자 전체로 곰팡이가 옮는 것을 막고, 남은 포도는 줄기째 키친타월을 깐 용기로 옮긴다. 마트에서 비닐 포장된 포도를 낱개로 사 왔다면 포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구멍이 있는 쪽이 위로 오도록 두거나, 위와 같은 키친타월 용기로 바로 옮기는 것이 낫다.
용기에 넣어뒀다고 안심하고 며칠 방치하면 안 된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용기를 열어 물러진 알이나 곰팡이가 핀 알이 있는지 확인하고, 발견하는 즉시 떼어내야 옆 알로 곰팡이가 옮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키친타월이 눈에 띄게 젖어 있다면 새 것으로 갈아주면 습기 흡수 기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선물세트처럼 양이 많을수록 이 확인 습관이 버리는 양을 줄이는 데 효과가 크다.
바로 먹을 포도는 물에 식초를 약간 섞은 물에 담가 흔들어 씻고, 흐르는 물로 헹군 뒤 키친타월로 물기를 완전히 닦아내고 먹으면 된다. 식초물이 포도를 완전히 살균해 주거나 냉장 보관을 대신해 준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이 좋다. 식초물 세척은 표면의 먼지와 일부 잔류물을 씻어내는 정도의 역할이지, 그 자체로 보관 기간을 늘려주는 처리는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식중독 예측지도는 식재료를 씻은 뒤에는 바로 조리하거나 냉장 보관하고, 씻은 채소나 과일이 다른 식재료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칼과 도마를 구분해 쓰라고 안내한다. 포도도 마찬가지로 씻은 뒤에는 물기를 없애고 바로 먹거나 냉장고에 넣는 것이 원칙이다.
키친타월의 쓸모는 포도 보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딸기나 블루베리처럼 물기에 약한 베리류도 같은 원리로 키친타월을 깐 용기에 담아두면 무르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한 번에 다 먹기 어려울 만큼 포도가 많이 남았다면 알을 떼어 씻고 완전히 말린 뒤 냉동실에 넣어두면 얼린 간식처럼 두고 먹을 수 있다. 김치통이나 반찬통 뚜껑 안쪽에 서린 물기를 닦아내는 데도 키친타월 한 장을 여벌로 넣어두면 습기 조절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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