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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사 온 바나나 한 송이가 며칠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다. 노랗던 껍질에 갈색 점이 하나둘 생기다가 어느 순간 통째로 거뭇해지면, 아직 속이 멀쩡한데도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아직 초록빛이 남은 바나나를 서둘러 냉장고에 넣었다가 딱딱하게 굳어버려 못 먹게 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결국 바나나 하나를 두고도 언제 실온에, 언제 냉장고에 둘지에 따라 일주일 뒤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많은 집에서는 바나나 껍질에 갈색 반점이 번지면 상한 것으로 판단해 그대로 버린다. 그러나 겉껍질 색깔과 속살 상태는 서로 다른 문제다. 미국 생활매체 더키친은 껍질이 검게 변했더라도 속살이 단단하고 냄새가 정상이면 여전히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진짜로 버려야 하는 신호는 따로 있다. 껍질을 벗겼을 때 액체가 흘러나오거나 발효된 듯한 냄새가 나거나, 속살 전체가 죽처럼 물러졌다면 그때는 상한 것으로 보고 버리는 것이 맞다. 반점 몇 개, 어두워진 껍질 정도는 오히려 더 달고 부드러워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바나나를 냉장고에 넣으면 안 된다는 말도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냉장 보관은 껍질 갈변을 오히려 앞당기지만 속살의 숙성과 연화는 늦춘다. 이미 노랗게 잘 익은 바나나를 며칠 더 두고 먹으려면 실온보다 냉장고가 더 유리한 셈이다.

바나나는 다른 과일과 달리 수확 후에도 스스로 에틸렌가스를 내보내며 계속 익어가는 후숙 과일이다. 실온에 두면 이 가스가 주변으로 퍼지면서 숙성을 계속 진행시키고, 옆에 둔 다른 과일의 숙성까지 함께 앞당긴다. 그래서 바나나 한 개만 상온에 놔둬도 며칠 안에 색과 향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냉장고의 낮은 온도는 이 후숙을 만드는 효소의 활동을 늦춰 속살이 무르는 속도를 늦춘다. 다만 껍질 세포는 저온에 노출되면 갈변 효소 반응이 오히려 빨라져 색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냉장 보관 뒤 껍질이 새까매지는 것은 속이 상해서가 아니라 껍질에서만 나타나는 반응이라는 뜻이다.

아직 초록빛이 남아 있고 단단한 바나나는 원하는 색이 될 때까지 실온에 그대로 두는 것이 기본이다. 직사광선이 드는 자리와 사과·멜론처럼 에틸렌가스를 많이 내는 과일 옆은 피하는 것이 낫다. 다발째 그대로 두면 여러 개가 비슷한 속도로 함께 익고, 하나씩 떼어 놓으면 그 바나나만 따로 숙성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바나나 꼭지 부분을 랩으로 감싸면 숙성이 늦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소개하는 곳마다 결과가 달라 확정적인 방법은 아니다. 확실한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한번 시도해볼 수 있는 보조적인 방법 정도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노랗게 잘 익어 더 이상 숙성을 진행시키고 싶지 않다면 냉장고 채소칸으로 옮긴다. 이때 갓 사 온 따뜻하고 잘 익은 바나나를 밀폐된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넣으면 봉지 안에 물방울이 맺히면서 오히려 무른 부분이 더 빨리 생긴다. 비닐봉지 입구를 살짝 열어두거나 통풍이 되는 용기에 담아야 무름을 늦출 수 있다.

껍질에 반점이 잔뜩 생기고 속살까지 물러지기 시작한 바나나를 그대로 버리기 전에 얼려두면 새 재료가 된다.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뒤 종이호일을 깐 트레이 위에 서로 붙지 않게 펼쳐 냉동실에 넣는다. 어느 정도 단단하게 얼면 그제야 냉동용 지퍼백으로 옮겨 담아야 조각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는다.
얼린 바나나는 녹이면 조직이 물러지므로 그대로 썰어 먹기보다는 갈거나 굽는 용도로 쓰는 것이 좋다. 얼린 상태 그대로 우유나 요구르트와 함께 갈면 스무디가 되고, 살짝 녹인 뒤 으깨서 반죽에 섞으면 바나나빵이나 머핀 재료로 쓸 수 있다. 물러져서 못 먹겠다 싶은 바나나일수록 오히려 더 진한 단맛을 내기 때문에 베이킹에는 더 잘 맞는다.

바나나가 내보내는 에틸렌가스는 다른 과일의 숙성을 돕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덜 익은 아보카도나 키위를 바나나와 함께 종이봉투에 넣어 밀폐해두면 하루이틀 안에 한결 부드러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급하게 숙성시켜야 할 과일이 있을 때 굳이 새로 재료를 사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다.
반대로 이미 잘 익은 과일을 오래 두고 싶다면 바나나와 최대한 떼어놓아야 한다. 과일 바구니 한쪽에 바나나를 몰아두고 나머지 과일과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전체 과일이 동시에 물러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껍질도 그대로 버리기보다 활용할 구석이 있다. 안쪽 면으로 은제 식기나 화분 잎을 문지르면 광이 살아나고, 잘게 잘라 흙에 섞으면 화단 거름으로도 쓰인다. 바나나 한 송이를 사 오면서 껍질까지 어떻게 쓸지 생각해두면 남는 것 없이 다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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