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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아침 차례상 앞에서 가장 먼저 손이 멈추는 순간은 지방을 쓸 때다. 음식은 전날 미리 준비해 둘 수 있지만, 지방은 한 해에 한두 번 쓰는 글자라서 해마다 기억이 흐려진다. 그래서 붓펜을 들고 한지를 펼친 뒤에야 어머니 본관을 어디에 넣는지, 할아버지 지방을 따로 써야 하는지 망설이게 된다.

지방은 몇 가지 규칙만 익히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다만, 기일에 지내는 제사와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모시는 조상의 범위가 다르다. 따라서 준비해야 하는 지방의 장수와 상 위에 놓는 방법도 달라진다.
지방(紙榜)은 사당에 모시는 신주를 대신해 종이에 조상을 적은 것이다.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동안 조상이 머무는 자리로 여기기 때문에 상 맨 안쪽 가운데에 세워 둔다.
종이는 깨끗한 흰 한지를 쓴다. 크기는 보통 가로 6cm, 세로 22cm 안팎으로 자른다. 윗부분 양쪽 모서리는 비스듬히 잘라 끝을 둥그스름하게 다듬는 집이 많다. 글씨는 붓과 먹으로 세로로 쓰는 것이 예법이다. 하지만, 요즘은 붓펜을 쓰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지방틀이 없다면 두꺼운 종이에 지방을 붙여 세우거나 병풍에 붙이면 된다.

남성 조상의 지방은 '顯(현)+관계+學生(학생)+府君(부군)+神位(신위)' 순서로 쓴다. 아버지 지방인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가 가장 많이 쓰는 형태다.
글자마다 뜻이 있다. 맨 앞의 顯(현)은 돌아가신 윗사람을 높이는 뜻으로 붙인다. 考(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妣(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리킨다. 學生(학생)은 벼슬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남성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고인에게 생전 관직이 있었다면, 學生(학생) 자리에 관직명을 대신 쓴다. 府君(부군)은 남자 조상을 높여 부르는 말이고, 神位(신위)는 신이 자리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여성 조상의 지방은 '顯+관계+孺人(유인)+본관+성씨+神位' 순서로 쓴다. 어머니가 김해 김씨라면 '顯妣孺人金海金氏神位(현비유인김해김씨신위)'가 된다. 孺人(유인)은 원래 조선시대 9품 관리의 아내에게 주던 칭호였다. 지금은 벼슬 없이 돌아가신 여성 조상에게 두루 쓴다. 여성 조상의 지방에는 府君(부군)을 쓰지 않고, 본관과 성을 적는다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한자가 부담스럽다면, 한글로 써도 된다. 한자 음을 그대로 옮겨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적는 방법이 있다. 또는 '아버님 신위', '어머님 신위', '할아버님 신위'처럼 뜻을 풀어서 써도 된다.
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를 말한다. 예로부터 돌아가신 날의 첫 새벽에 지냈다. 그러나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2023년 권고안에서 가족이 뜻을 모으면, 돌아가신 날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 초저녁에 지내도 괜찮다고 밝혔다.
지방에 적는 관계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 즉 제주를 기준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제주일 때 할아버지 지방은 '顯考(현고)'로 쓴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제주가 되면, 같은 할아버지를 '顯祖考(현조고)'로 한 대 올려 적는다. 그래서 제주가 바뀐 해에는 지방 문구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기제사 지방은 기일을 맞은 분을 중심으로 쓴다. 배우자도 이미 돌아가셨다면, 두 분을 한 장에 함께 모시는 집이 많다. 이때는 지방을 바라보는 쪽에서 왼쪽에 남성 조상을, 오른쪽에 여성 조상을 적는다. 한 분만 돌아가셨다면 그분만 쓴다.
제주를 기준으로 대상별 지방쓰는법은 다음과 같다. 여성 조상의 본관과 성씨는 김해 김씨를 예로 들었다.
- 아버지: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
- 어머니: 顯妣孺人金海金氏神位(현비유인김해김씨신위)
- 할아버지: 顯祖考學生府君神位(현조고학생부군신위)
- 할머니: 顯祖妣孺人金海金氏神位(현조비유인김해김씨신위)
- 증조할아버지: 顯曾祖考學生府君神位(현증조고학생부군신위)
- 증조할머니: 顯曾祖妣孺人金海金氏神位(현증조비유인김해김씨신위)
- 고조할아버지: 顯高祖考學生府君神位(현고조고학생부군신위)
- 고조할머니: 顯高祖妣孺人金海金氏神位(현고조비유인김해김씨신위)
- 큰아버지: 顯伯父學生府君神位(현백부학생부군신위)
- 작은아버지: 顯叔父學生府君神位(현숙부학생부군신위)
- 형: 顯兄學生府君神位(현형학생부군신위)
- 형수: 顯兄嫂孺人金海金氏神位(현형수유인김해김씨신위)
배우자의 지방은 첫 글자가 달라진다. 아내가 남편의 제사를 모실 때는 '顯辟學生府君神位(현벽학생부군신위)'라고 쓴다. 辟(벽)은 남편을 높여 이르는 글자다. 반대로 남편이 아내의 제사를 모실 때는 顯(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亡室孺人金海金氏神位(망실유인김해김씨신위)'처럼 亡(망)을 붙이고 아내를 뜻하는 室(실)을 쓴다. 亡(망) 대신 故(고)를 써서 '고실(故室)'로 적는 집도 있다.
동생이나 자녀처럼 아랫사람의 제사를 모실 때도 顯(현) 대신 亡(망)을 쓴다. 또한 府君(부군) 자리에 고인의 이름을 넣는다. 동생은 '亡弟學生OO神位(망제학생OO신위)', 아들은 '亡子學生OO神位(망자학생OO신위)' 형태다. OO에는 고인의 이름을 적는다.
차례는 보통 설과 추석 아침에 지낸다. 기제사가 기일을 맞은 조상을 모시는 자리라면, 차례는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을 한자리에 함께 모신다. 따라서 모시는 대수에 맞춰 지방을 여러 장 준비해야 한다.
몇 대까지 모실지는 집안마다 다르다. 예로부터 고조까지 4대를 모셨지만, 요즘은 범위를 줄이는 가정이 많다. 성균관이 2022년 성인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차례를 조부모까지 지내야 한다는 응답이 32.7%로 가장 많았고 부모까지가 25.9%, 증조부모까지가 17.6%로 뒤를 이었다.
차례 지방은 부부는 한 장에 함께 쓰고, 대가 다르면 따로 적는 것이 기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 장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한 장에 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같은 장에 함께 적지는 않는다. 각 장에서는 기제사와 마찬가지로 바라보는 쪽 왼쪽에 남성 조상, 오른쪽에 여성 조상을 적는다.

조부모와 부모 2대를 모시는 가정이라면, 지방은 2장이 필요하다. 첫 장에는 왼쪽에 '顯祖考學生府君神位(현조고학생부군신위)', 오른쪽에 '顯祖妣孺人金海金氏神位(현조비유인김해김씨신위)'를 쓴다. 둘째 장에는 왼쪽에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 오른쪽에 '顯妣孺人金海金氏神位(현비유인김해김씨신위)'를 쓴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둘째 장에는 아버지 지방만 적는다.
지방을 상 위에 놓을 때는 윗대 조상을 바라보는 쪽 왼쪽에 둔다. 4대를 모신다면 왼쪽부터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순서로 나란히 세운다. 2대를 모신다면 왼쪽에 조부모 지방을, 오른쪽에 부모 지방을 놓는다.
차례는 기제사와 절차도 다르다. 기제사에서는 축문을 읽고 술을 세 번 올린다. 반면, 차례는 축문을 읽지 않고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것이 예법이다. 그래서 차례를 준비할 때는 축문 없이 지방만 준비하면 된다.
지방을 쓰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진으로 대신할 수 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2022년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하면서 지방 대신 조상 사진을 두고 차례를 지내도 된다고 설명했다. 사진을 놓을 때도 지방과 같은 기준을 따라 윗대 조상을 왼쪽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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