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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 도토리묵 무침이 밥상에 자주 오른다. 손수 쑨 묵이든 사 온 묵이든 찬물에 꽤 오래 담가뒀는데도 씹을 때마다 뒷맛이 씁쓸하게 남아 당황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물에 얼마나, 어떻게 담가야 쓴맛이 제대로 빠지고 남은 묵은 또 어떻게 보관해야 상하지 않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도토리묵의 쓴맛은 도토리에 들어 있는 타닌 성분에서 나온다. 이미 굳어서 완성된 묵은 뿌리채소처럼 손으로 문질러 짜낼 수 없으니, 표면에 남은 쓴맛 성분이 물에 서서히 녹아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무작정 오래 담가둔다고 성분이 더 빨리 빠지는 것은 아니어서, 얼마 동안 어떤 물에 두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기준은 찬물이나 실온의 물에 20~30분 담갔다가 한 조각을 맛보는 것이다. 유난히 쓴 제품이라면 이 시간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 물을 한 번 갈아주고 다시 맛을 확인한다. 시간을 딱 정해두기보다 묵의 상태를 직접 맛보고 판단하는 편이 정확한데, 도토리 종류와 만든 방식에 따라 쓴맛의 정도가 제품마다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묵을 물에 담가둘 때 지켜야 할 조건은 하나다. 묵이 물 밖으로 떠오르지 않고 완전히 잠긴 채, 차가운 온도를 유지해 형태가 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실온이 너무 높으면 묵이 물러지면서 쓴맛이 빠지는 것과 동시에 식감도 함께 흐트러진다.

도토리묵은 두부보다도 조직이 무르고 잘 부서진다. 마른 칼로 자르면 단면이 뭉개지거나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가기 쉬운데, 칼날을 물에 한 번 적신 뒤 썰면 단면이 매끈하게 잘리고 부스러기도 훨씬 덜 생긴다. 도마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천이나 물기 없는 채반을 받치고 자르면 더 안정적이다.
썰어둔 묵을 곧바로 물에 담그면 단면적이 넓어진 만큼 쓴맛이 빠지는 속도도 빨라진다. 큼직하게 썰기보다 먹기 좋은 크기로 미리 썰어 담가두면, 앞서 설명한 20~30분 기준 안에서도 쓴맛이 더 잘 빠진다. 반대로 통째로 담가두면 겉면만 쓴맛이 빠지고 속은 여전히 쓴 상태로 남을 수 있다.

쓴맛이 심하다고 해서 이미 굳은 묵을 팔팔 끓여 빼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도토리묵은 도토리 전분이 물과 열로 엉겨 굳은 상태라, 여기에 다시 센 불로 오래 끓이면 굳어 있던 전분 조직이 풀리면서 묵이 물러지거나 부스러져 형태를 잃는다. 한 번 뭉개진 묵은 다시 굳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쓴맛을 더 빼고 싶다면 끓이는 대신 물을 갈아주며 담가두는 시간을 늘리는 쪽이 안전하다. 물기를 뺄 때도 세게 짜지 말고 채반에 얹어 가만히 물을 빼거나, 마른 천이나 종이타월로 표면을 살짝 눌러 닦아내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간장, 식초, 참기름, 마늘, 대파, 참깨로 만드는 양념장은 도토리묵과 미리 섞어두지 않는다. 묵과 양념장을 따로 두고 먹기 직전에 버무려야 양념장이 묵에서 빠져나온 수분에 묻혀 싱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식초의 산 성분은 텁텁하게 남은 맛을 정리해 주는 역할도 하므로 양이 너무 적으면 쓴맛이 도리어 더 도드라진다.
물기를 완전히 뺀 뒤 양념하는 순서도 중요하다. 물기가 남은 채로 양념을 끼얹으면 간장과 식초의 간이 묵 표면에 겉돌기만 하고 속까지 배지 않아 오히려 맛이 밍밍하게 느껴진다. 냉채나 비빔용으로 낼 때도 마찬가지로, 채소와 묵을 섞은 뒤 마지막에 양념장을 얹는 순서를 지키면 아삭한 식감이 오래 유지된다.

양념하지 않은 맨 묵은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두고 되도록 짧은 기간 안에 먹는 것이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묵 표면의 수분이 빠지면서 질감이 단단해지고 말라가기 때문에, 오래 둘수록 처음의 부드러운 식감을 잃는다. 물을 살짝 채운 채 보관하면 마르는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 두고 먹을 음식은 아니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식중독 예방 수칙도 냉장식품은 5도 이하에서 보관하라고 안내하는데, 도토리묵처럼 수분이 많은 식품일수록 이 기준을 지키는 것이 상태 유지에 도움이 된다. 표면이 미끈거리거나 냄새가 달라지거나 색이 변했다면 씻어서 되살리려 하지 말고 그대로 버려야 한다. 미끈거림은 표면에 세균이 자리 잡았다는 신호라 물로 헹궈낸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냉장고에 며칠 두고 나면 도토리묵 겉면이 말라 딱딱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상태의 묵을 데우려면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가 부드럽게 풀어주는 방법이 적당하다. 직접 센 불이나 전자레인지 고열로 데우면 조직이 갈라지고 부스러지기 쉬워 뜨거운 물에 잠깐 담그는 편이 형태를 지키는 데 유리하다.
말라서 뻣뻣해진 묵은 무쳐 먹기보다 다른 조리법으로 살리는 것도 방법이다. 도톰하게 썰어 부침가루를 살짝 묻혀 기름에 지지면 마른 식감이 오히려 노릇하게 구워지며 새로운 반찬이 된다. 된장국이나 맑은 찌개에 나중에 넣어 한소끔 끓이면 굳었던 질감이 국물을 흡수해 다시 부드러워지고, 오이나 미역과 함께 냉국에 넣어도 마른 식감이 크게 거부감 없이 어울린다.
이렇게 부치거나 끓이는 조리법은 이미 열을 가하는 과정이라 앞서 설명한 '센 불로 끓이면 부서진다'는 주의와는 다른 이야기다. 쓴맛을 빼려고 맨 묵을 끓이는 것과, 이미 쓴맛을 뺀 뒤 다른 요리에 넣어 함께 익히는 것은 목적과 결과가 다르므로 구분해서 적용하면 된다. 남은 도토리묵을 버리지 않고 그날그날 다른 방식으로 소진하면, 가을철 밥상에 반찬 하나를 더 얹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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