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내일]"버림받은 줄 알았는데" 37년만에 만난 어머니가 아들에게 건넨 첫 마디
[2026-10-01 10:06:00]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자료 사진 / 위키트리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지면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 왜 가족과 떨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성장하면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네 살 때 가족과 헤어진 윤정미 씨도 그랬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친가족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정미 씨가 알지 못하는 사이 가족은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고 실종가족 찾기 방송에 출연하며 그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까지는 40년이 걸렸다.
가족과 헤어진 네 살 아이… 평생 버림받았다고 믿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자료 사진 / 위키트리
1974년 당시 네 살이었던 윤정미 씨는 가족과 떨어졌다. SBS가 2014년 보도한 사연에 따르면 정미 씨의 아버지는 1972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최순자 씨는 혼자 어린 자녀들을 키워야 했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정미 씨와 언니 이정옥 씨를 경기도 시흥에 살던 큰삼촌 집에 맡겼다.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데려올 생각이었다.
큰삼촌의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약 3개월 뒤 정미 씨는 서울의 한 가정에 수양딸로 보내졌다. 당시 정옥 씨는 어머니와 이야기가 된 일이라는 큰삼촌의 설명을 믿었다. 서울로 간 정미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정에서 나오게 됐다. 이후 여러 곳을 거친 그는 전남 구례에 사는 노부부의 양녀가 됐다. 양부모는 그를 윤정미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올렸고 학교에도 보냈다.
가족과 떨어졌을 당시 네 살이었던 정미 씨는 그때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친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성장했고, 성인이 된 뒤에도 가족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결혼해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던 중 주변 사람으로부터 자신과 닮은 여성이 잃어버린 동생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혹시 자신의 가족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불일치였다. 다만 이 일을 계기로 정미 씨의 생각은 달라졌다. 자신을 찾는 가족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경찰의 도움을 받아 실종가족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자신의 유전정보를 등록했다.
언니는 지역신문 광고까지 내며 동생을 찾았다
사진=초록우산
정미 씨가 가족을 찾기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친가족도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동생과 헤어진 뒤 언니 정옥 씨 역시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정옥 씨는 16살이 돼서야 다시 어머니와 살게 됐고, 그때부터 어린 시절 헤어진 동생을 찾아 나섰다. 정미 씨가 보내졌다고 알고 있던 서울의 가정도 찾아갔다. 그러나 동생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
SBS 보도에 따르면 정옥 씨는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고 실종가족을 찾는 방송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정미 씨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시절의 기록만으로 행방을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두 사람을 연결한 것은 유전자 정보였다.
정미 씨가 먼저 유전정보를 등록했고, 2014년 10월에는 어머니 최 씨도 경찰의 안내를 받아 유전정보를 등록했다. 이후 추가 검사를 거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미 씨가 가족과 헤어진 지 40년 만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정미 씨는 그제야 가족 역시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SBS 인터뷰에서 가족이 살아 있는지도 몰랐다며 “버림받았다고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37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어머니가 건넨 첫마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자료 사진 / 위키트리
유전자 정보를 통해 수십 년 만에 가족을 찾은 사례는 또 있다. 국가아동권리보장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 모 씨는 1985년 4월쯤 네 살의 나이에 부모와 떨어졌다. 이후 서울의 한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했고 2001년 시설을 나온 뒤에는 만화를 그리는 일과 지하철 택배 일을 병행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진 김 씨에게 가족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를 찾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4년부터 방송에 출연했고 경찰서에서 실종아동 유전자 검사도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가족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찾고 있었다. 전국을 수소문했지만 어린 시절 헤어진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다시 연결된 것은 2022년이었다. 김 씨의 어머니는 그해 1월 3일 경찰서를 찾아 아들을 실종 신고한 뒤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당시 아동권리보장원은 실종아동업무시스템에 등록된 김 씨의 신상정보를 확인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두 사람은 모자 관계로 확인됐다.
김 씨는 같은 해 3월 10일 서울성동경찰서에서 37년 만에 어머니를 만났다. 국가아동권리보장원이 공개한 당시 자료에 따르면 어머니가 아들에게 건넨 말은 “너를 버린 게 아니란다”였다.
김 씨는 힘들 때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했고, 언젠가 어머니를 만나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잃은 뒤 오랜 시간 그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아들이 과거 등록해둔 유전자 정보와 37년 뒤 어머니가 남긴 유전자 정보가 비교되면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가족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자료 사진 / 위키트리
장기실종자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을 확인할 단서가 줄어들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졌다면 본인이 기억하는 이름이나 주소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보호시설이나 다른 가정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름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가지고 있는 사진은 어린 시절 모습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장기실종자와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유전자 정보가 활용되고 있다. 현재 국가아동권리보장원은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협력해 실종아동 등을 찾기 위한 유전자 검사 관련 신상정보를 관리하고 있다. 실종아동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해 실종아동 등록과 유전자 검체 채취를 할 수 있다.
유전자 정보의 보존 기간과 관련한 제도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유전자 검사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유전정보를 폐기하도록 하고, 당사자나 법정대리인이 요청하는 경우 보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4년 7월 17일부터 시행된 개정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유전자 검사 후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유전정보를 당연히 폐기하도록 한 조항이 삭제됐다. 별도의 연장 요청이 없어도 가족을 찾을 때까지 유전정보를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위키트리는 장기실종아동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에 함께하고 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헤어진 뒤 자신의 가족관계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면 관련 정보를 확인해볼 수 있다. 자신을 찾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가족은 오랜 시간 그 사람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