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나는 밥상] 민트초코를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디저트 역사] 치약 맛 논란 그 이상… 입가심용에서 영국 왕실 결혼식 디저트까지, 민트초코의 화려한 변천사

호불호의 대표주자 민트초코, 일명 '민초단'과 '반민초단'의 끝없는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이 디저트는 사실 영국 왕실의 공식 디저트 메뉴까지 등극했던 고귀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원한 청량감과 달콤한 초콜릿의 만남, 그 놀라운 탄생 비화를 짚어보았습니다.

■ 약용 카카오의 쓴맛을 달래던 유럽의 입가심 음료

민트초코의 기원은 16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페인 탐험가들이 유럽대륙에 가져온 카카오는 지금처럼 달콤한 간식이 아니라, 질병을 다스리는 ‘약’으로 쓰였습니다. 카카오는 특유의 깊고 쓴맛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좀 더 수월하게 마시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 해결책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민트’였습니다. 씁쓸한 카카오의 맛을 중화시키고 입안을 개운하게 하기 위해 민트를 섞어 마시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민트초코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즉, 민트초코는 당초 디저트가 아닌, 약의 맛을 덜어내기 위한 ‘입가심용 기능성 음료’에서 출발한 셈입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1962년 영국의 Rowntree's(*1988년 Nestlé 인수됨)는 당시 영국 상류층이 저녁을 먹은 뒤 디저트를 먹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애프터에이트(After Eight)’ 즉, 저녁 8시 이후에 즐기는 고급 디저트 컨셉으로 출시했지만, 이 시기까지만 해도 민트초코는 소수의 애호가들만 즐기는 마이너한 메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 1973년, 영국 왕실을 매료시킨 ‘민트 로얄’의 등장

민트초코가 전 세계적인 디저트로 각인된 결정적인 사건은 1973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딸, 앤 공주(Princess Anne)의 결혼식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왕실은 결혼식 연회를 빛낼 특별한 디저트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경연 대회를 열었습니다.

요리 학교 학생이었던 마릴린 니켓츠(Marilyn Ricketts)는 민트 추출액과 고급 초콜릿을 황금 비율로 섞어 만든 아이스크림인 ‘민트 로얄(Mint Royale)’을 출품했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영국 왕실 결혼식의 공식 메뉴로 선정된 민트초코는 단숨에 영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이전의 마이너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잘 알려진 디저트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왜 한국에서는 유독 '호불호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민트초코가 유독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요? 과학적·문화적 측면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멘톨 성분과 치약의 상관관계입니다. 민트의 주성분인 멘톨은 입안의 냉각 수용체를 자극해 실제로 온도가 낮아지지 않아도 뇌가 ‘차갑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민트향이 첨가된 치약을 사용해왔기에, 민트초코를 먹을 때도 치약의 청량감과 동일하게 인식하게 되며 민트초코를 일명 치약 맛으로 표현하게 된겁니다.

둘째, 문화적 차이입니다. 서구권에서는 크리스마스마다 민트향 캔디케인을 먹으며 어린 시절부터 민트맛에 익숙해졌지만,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민트향이 치약의 전유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치약 맛’이라는 공식으로 굳어지며 강한 거부감을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거부감과 논쟁은 민트초코를 대중적인 화제성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오늘날각종 브랜드 스스로 민초 버터떡, 민초 치킨 등 그 영역을 폭발적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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