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언 대신 비유로 파고든다…판사들의 고사성어

김건희 1심 선고, '검이불루 화이불치'
전두환 내란수괴 2심 선고, '항장불살'


최근 김건희 여사의 1심 선고에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고사성어가 언급됐다. 판관들은 법정이나 공식석상에서 고사성어를 활용하며 자신의 메시지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려는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사진은 우인성 부장판사.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송다영 기자] 최근 김건희 여사의 1심 선고에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고사성어가 언급됐다. 법관들은 법정이나 공식석상에서 고사성어를 활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려는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우인성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28일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 여사에게 징역 1년8개월과 추징금 1281만5000원을 선고했다.

우 부장판사는 김 여사에게 영부인으로서 통일교 측의 금품 제공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꾸짖었다. 그는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처럼, 굳이 값비싼 물건을 두르지 않고도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로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우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 초반에도 "옛말에 형무등급(刑無等級), 그리고 추물이불량(趣物而不兩)이라는 말이 있다"며 "법의 적용에는 그 적용을 받는 사람이 권력자이든 아니면 권력을 잃은 자이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도 있다. 형무등급이란 법가 사상에서 나온 표현으로 '형벌을 내릴 때 신분이나 귀천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추물이불량' 역시 법가 사상에서 나온 표현으로 '사물을 대할 때 둘로 나누어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고사성어는 짧은 표현 안에 역사적·윤리적 맥락이 함께 담겨있어 복잡한 법리 판단의 취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를 직접적 언급하기보다 간접적 표현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1996년 12·12와 5·18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반란·내란우두머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전 전 대통령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사진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법에 출석했던 전 전 대통령 사진. /더팩트 DB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 혐의 재판이 오는 19일 1심 선고를 앞뒀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 재판에서도 고사성어를 인용한 판결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1996년 12·12와 5·18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반란·내란우두머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그는 판결문에서 '항장불살'(降將不殺)을 인용했다. '항장불살'이란 '항복한 적군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권 전 재판관은 전 전 대통령이 "6·29 선언을 수용해 민주회복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서를 연 것"이라며 감형 사유를 들었다. 이듬해인 1997년 4월 원심 판결이 확정되며 전 전 대통령의 무기징역도 확정됐다.

검찰개혁 여론에 불을 붙였던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슨 게이트 사건에서도 판사의 고사성어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김진동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2016년 12월 뇌물죄로 기소된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지음'(知音)이라는 고사성어를 썼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와 진 전 검사장은 30년지기 '지음'이기 때문에 두사람 사이 오간 넥슨 주식 1만주를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음'은 '열자' 탕문편에 나오는 춘추전국시대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다. 서로를 알아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판결 중 나오지는 않았지만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킨 판사의 고사성어도 있다. 김동진 당시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2014년 9월 '국정원 댓글 사건'의 핵심인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무죄 판결 선고 뒤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이글에서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서울중앙지법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질타했다. '지록위마'는 '사기'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말이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한다는 것으로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를 뜻한다. 이후 원 전 원장의 무죄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유죄로 뒤집혔다.

many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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