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정체에 수익 악화했는데"…가격 인하 나선 식품업계 속사정

범정부 물가 점검에 식품 가격 줄인하
식품기업 대부분 영업이익률 5% 미만
내수 침체로 실적 정체…희망퇴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질타와 검찰의 강력한 대응에 CJ제일제당과 삼양사, 사조동아원 등 주요 설탕·밀가루 생산업체들이 일제히 가격 인하를 단행한 가운데 지난달 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설탕을 고르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 | 손원태 기자] 국내 제당·제분업계가 식품의 주원료가 되는 설탕·밀가루 가격을 내리면서 식품업계 전반으로 가격 인하가 퍼져가고 있다. 겉으로는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속사정은 5% 미만의 낮은 영업이익률과 내수 한파로 실적 정체를 겪고 있어 복잡한 모습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날 김종구 차관 주재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태스크포스(TF) 유통구조 점검팀' 3차 회의를 개최했다. 정부는 지난 2월 농식품부 차관을 팀장으로 하고,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참여하는 물가 점검팀을 꾸렸다. 가격 상승 요인과 기업 불공정 행위, 유통 비효율성 등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기 위함이다.

특히 먹거리 분야에서 13개 핵심 품목(돼지고기·냉동육류·계란·고등어·쌀·콩·마늘·수입 과일·김·밀가루·전분당·식용유·가공 식품)을 지정, 올해 상반기까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제당 업체들의 설탕 가격 담합을 찾아냈고, 총 40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밀가루와 전분당 담합 사건도 현재 공정위 심의가 진행 중이며, 각각 1조1600억원과 1조2000억원 규모의 최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의 동시다발적 가격 담합 조사와 가격 동향 점검이 시작되면서 제당·제분업계는 설탕과 밀가루, 전분당 등 식품 원재료 가격을 줄줄이 인하했다. 설탕은 4~6%, 밀가루는 5~6%, 전분당은 3~5% 수준까지 출고가를 내렸다. 이후에도 정부는 커피값과 초콜릿값 등을 점검하고 있으며, 식품업계 전반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이후 식용유 6개 업체가 평균 3~6%, 라면 4개 업체가 평균 4.6~14.6% 수준으로 제품 가격을 내렸다. 전날에는 제과·빙과·양산빵 등 5개 업체도 가격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제과업체에서는 롯데웰푸드와 오리온, 해태제과가 평균 2.9~5.6%로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빙과업체는 롯데웰푸드와 빙그레가 평균 8.2~13.4%로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양산빵도 롯데웰푸드와 SPC삼립이 평균 5.4~6.0% 정도로 가격을 낮췄다. 조정된 가격은 다음 달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국내 제당·제분업계가 식품의 주원료가 되는 설탕·밀가루 가격을 내리면서 식품업계 전반으로 가격 인하가 퍼져가고 있다.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 내 마련된 과자 코너. /더팩트DB

그러나 식품업계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대다수 식품기업의 영업이익률이 5%를 밑돌고 있으며, 지난해 내수 침체로 실적 정체마저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연초부터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등 고강도 인력조정에 나섰다. 최근에는 중동권 전쟁으로 유가 불안정까지 겹치면서 경영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됐다.

실제로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오리온과 삼양식품을 제외하면, 국내 식품기업 대부분은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전날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한 롯데웰푸드, 빙그레, SPC삼립, 해태제과만 보더라도 이 같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롯데웰푸드와 빙그레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30.3%, 32.7% 급감한 1095억원, 884억원에 그쳤다. SPC삼립(-59.3%)과 해태제과(-13.8%) 역시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 폭을 나타냈다. 이들 기업의 매출 신장률이 5%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매출은 제자리걸음인데 이익은 대폭 깎여 나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웰푸드와 빙그레, 파리크라상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연초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빙그레는 자회사 해태아이스크림을 포함해 전 직원 대상으로 인력조정에 들어갔다. 빙그레가 전 직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 것은, 지난 2021년 이후 약 4년 만이다.

롯데웰푸드도 지난해 4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으나, 올해 추가 신청을 받았다. SPC삼립의 모회사인 파리크라상도 과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식품업계에서는 정부의 물가 안정이라는 공익적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경영 불확실성에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원가가 내려갔더라도 유류비와 인건비, 물류비 등 제반 비용이 일제히 오르고 있어 단순히 가격을 내리기에는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을 보더라도 식품업계 실적이 좋은 곳은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곳뿐"이라며 "내수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실적이 좋지 않은데, 원재료 가격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제품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도 "중동 전쟁으로 부산물인 포장재 가격도 치솟고 있다"며 "식품업계 특성상 기간산업도 아니고, 매출 규모가 다른 산업군에 비해 작아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tellm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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