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재판소원 1호' 본격 심리…대법 심리불속행 기각 시험대

'녹십자 입찰담합' 사건 대법에 의견 요구
헌재 판단 따라 심리불속행 신중해질듯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본안 심리에 넘긴 사건에서 대법원에 의견 제출을 요청했다./더팩트DB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본안 심리에 넘긴 사건에서 대법원에 의견 제출을 요청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헌재가 다시 들여다보는 첫 사례인 만큼, 상고심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9일 녹십자가 제기한 재판소원 사건을 놓고 대법원에 심판회부통지서를 보내 30일 이내에 답변서와 증거자료 또는 참고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대법원이 반드시 답변서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닌 만큼 헌재의 요청에 응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답변서 작성 주체나 자료 제출방식, 실제 제출 의사 등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지난달 28일 지정재판부 사전심사를 거쳐 해당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재판소원 사건이 사전심사를 통과해 본안 판단에 들어간 첫 사례다.

이 사건은 녹십자가 대법원을 상대로 낸 재판취소 사건으로, 녹십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취지로 지난 3월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사건의 쟁점은 같은 입찰담합 사안을 두고 형사재판과 행정소송의 결론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형사사건에서는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지만, 과징금 처분을 다툰 행정소송에서는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녹십자의 패소를 확정했다.

녹십자 측은 "대법원이 실질적 심리 없이 사건을 종결해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에 중대한 법리 오해 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별도의 심리나 판결 이유 제시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남소 사건을 제외하고 결론이 난 민사·가사·행정·특허 상고심 사건의 75%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됐다. 가사 사건을 제외하면 2021년 이후 해마다 70%대를 유지했다.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본안 심리에 넘긴 사건에서 대법원에 의견 제출을 요청했다./더팩트 DB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심리불속행 제도 운용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가 심리불속행 기각의 한계를 제시할 경우 대법원의 상고심 운용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이 사건은 심리불속행 기각 대상이 아닌데도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을 해 전원재판부로 회부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단에 따라) 당사자가 법률 위반이나 판례와의 충돌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심리불속행으로 처리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대법원으로서도 향후 심리불속행 기각을 더욱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가 심리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도 주요 변수다. 단순히 심리불속행 절차의 위헌 여부만 판단할지, 나아가 하급심 판단과 대법원 확정판결의 내용까지 들여다볼지에 따라 파장이 달라질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사실상 '4심제'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재판소원은 구체적인 절차 규정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된 제도라 헌재의 재량에 따른 운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다만 명확한 기준이 없는 만큼 재량권 일탈·남용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이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판소원 심리 방식이나 기준을 둘러싼 규칙 정비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며 "대법원 판결 심사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y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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