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보다 은행대출?"…기업 자금조달 무게중심 이동하나

1~5월 회사채 3754억원 순상환…지난해 20.2조원 순발행과 대조
5월 은행 기업대출 10.6조원 증가…RWA·수익성 관리는 과제


시장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발행 부담이 커지자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은행대출로 자금조달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더팩트 DB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시장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발행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조달의 무게중심이 은행대출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회사채 발행액이 줄고 순상환 기조가 이어지는 반면, 은행권 기업대출은 두 달 연속 10조원 넘게 증가했다. 가계대출 관리와 생산적 금융 확대 요구에 직면한 은행들이 기업여신 영업을 강화하면서,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회사채보다 은행 차입의 상대적 매력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 집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회사채 발행액은 56조21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5조9427억원보다 15.0% 감소했다. 반면, 상환액은 56조3973억원으로 23.3% 증가하면서 회사채 시장은 3754억원 순상환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0조1924억원 순발행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회사채 시장의 순상환 흐름은 5월에도 이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회사채는 금리 상승에 따른 발행 부담과 은행대출 등 대체 조달수단 활용으로 1조1000억원 순상환했다. 기업어음(CP)·단기사채도 은행대출을 활용한 상환 등의 영향으로 2조1000억원 순상환으로 전환됐다.

반면 은행권 기업대출은 큰 폭의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5월 말 기준 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1408조3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10조6000억원 증가했다. 4월 10조7000억원에 이어 두 달 연속 10조원대 증가세다.

대기업대출은 5조2000억원 늘어난 317조1000억원, 중소기업대출은 5조4000억원 증가한 1091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은 대기업대출 증가 배경으로 은행의 적극적인 대출 영업과 회사채 상환을 위한 운전자금 수요 등을 꼽았다. 중소기업대출도 은행들의 기업여신 취급 확대와 운전자금 수요 등이 맞물리며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이 은행대출을 검토하는 핵심 배경은 조달비용이다. 지난 22일 오전 기준 무보증 AA- 3년물 회사채 금리는 연 4.443%,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연 3.811%를 기록했다. 회사채는 국고채 금리에 신용 스프레드가 더해지는 데다 증권신고서 작성과 신용평가, 수요예측, 인수수수료 등 부대비용도 발생한다.

금융권에서는 일부 은행이 우량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회사채 발행금리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의 대출 조건을 제시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채 발행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까지 고려하면 당장의 총조달비용 기준으로 은행대출이 더 유리한 기업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은행대출과 회사채는 금리 수준만으로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은행대출은 단기·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반면 회사채는 장기 고정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만기를 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은행대출에는 담보나 재무약정 등의 조건이 붙을 수 있는 만큼 기업은 현재 금리뿐 아니라 향후 금리 변동 위험과 차환 부담, 재무구조 관리 등을 함께 고려해 조달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기업 자금수요 유입이 가계대출 관리에 따른 성장 제약을 보완할 기회다. 기업대출을 확대하면 이자수익을 늘리면서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 공급 실적도 쌓을 수 있다.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집중된 자산구조를 기업금융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정책 방향에도 부합한다.

반면 은행채와 예금금리 상승으로 은행의 조달비용 부담까지 커질 경우 낮은 금리로 취급한 기업대출의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 대출잔액이 늘더라도 조달비용 상승분을 대출금리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순이자마진(NIM) 개선 효과가 제한되고 자본 투입 대비 수익성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본비율 관리도 과제다. 기업대출 확대는 차주의 신용도와 담보·보증 조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위험가중자산(RWA)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의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건전성 관리도 중요하다. 최근 기업대출 증가분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고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업황이 부진한 기업의 운전자금 수요까지 은행대출로 흡수될 경우 향후 연체율과 대손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기업 자금조달이 전면적으로 회사채에서 은행대출로 전환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장기 고정금리 조달과 만기 분산이 필요한 대기업에는 회사채가 여전히 중요한 자금조달 수단이며, 시장금리가 안정되고 채권시장 변동성이 낮아지면 발행을 미뤘던 기업들이 다시 회사채 시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최근 흐름은 회사채 시장의 기능이 약화했다기보다 금리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일부 우량기업과 차환 수요를 중심으로 은행대출의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 "향후 기업 자금조달의 무게중심은 회사채와 은행대출 간 금리 격차, 은행권의 대출 여력, 채권시장 수급에 따라 다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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