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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살아남는 기업은 드물다. 더욱이 창업주의 철학이 한 세기를 넘어 기업 운영의 원칙으로 작동하는 사례는 더욱 희귀하다. 유한양행은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사회환원 정신을 전문경영인 체제, 공익재단 중심의 지배구조, 장학사업과 연구개발 투자라는 제도로 정착시키며 한국 기업사에 독자적인 모델을 제시해 왔다.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의 현재를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 제약산업의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유한양행은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역사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다. 유한양행이 지난 20일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한 세기 동안 기업을 지탱해 온 원동력으로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꼽힌다. 그러나 '유일한 정신'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유한양행의 참된 차별성이 창업자 개인의 미담에 머물지 않고 이를 확고한 '선순환 거버넌스(지배구조)'로 제도화한 점에 있다고 분석한다.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한국 기업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최대주주는 창업주가 전 재산을 환원해 만든 공익법인 유한재단(보통주 지분 15.93%)이다. 그러나 유한재단은 회사의 지분을 장기 보유할 뿐 일상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유한재단의 목표는 장학사업"이라며 "의사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한재단의 중심축은 장학사업으로, 매년 수백 명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올해에도 158명의 대학생에게 총 65명의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오늘날까지 누적 1만200명에게 총 390억원을 지원했다. 유한재단 관계자는 "유한양행의 배당금은 단순한 재무적 배분이 아니라 사회 속으로 흘러가는 또 하나의 가치 투자"라고 강조했다.
유한재단은 1970년 유일한 박사가 전 재산을 기부하며 만들어졌다. 전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것이다. 유일한 박사는 1971년 별세하면서 장남에게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니 앞으로는 스스로 살아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어린 손녀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필요한 학자금 1만 달러를 남기고 딸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토지 5000평을 맡기며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유한동산'을 만들라고 당부했다.
유한재단은 다른 대기업이나 제약사 공익법인들처럼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국내 주요 상장 제약사 산하 공익법인 대다수가 오너 일가를 이사장이나 이사로 선임해 지배력을 보완하는 것과 달리, 유한재단 이사회에는 창업주의 후손이 단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재단 수장 역시 내부 퇴임 경영진이 관행적으로 이어받지 않고, 정원식·한승수 전 국무총리 등을 거쳐 현재 원희목 이사장까지 6대 연속 외부 인사에게 운영을 맡겨 투명성을 높였다.

이러한 기틀은 유일한 박사가 생전부터 추진한 과감한 결단들로 완성됐다. 유일한 박사는 1936년 국내 최초로 임직원에게 주식을 배분하는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고, 1962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하며 소유를 분산했다. 이어 1969년 혈연관계가 아닌 사원 출신의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넘기며 국내 최초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했다. 1971년 타계 당시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현재의 선순환 지배구조를 안착시켰다.
철저히 독립된 지배구조는 유한양행 100년 역사에서 경영 안정과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특정 개인의 사익이나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회사의 장기 전략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됐다.
회사가 거둔 경영 성과는 주식 배당을 통해 유한재단으로 유입되고, 재단은 이를 장학·복지사업에 다시 투입한다.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에 따르면 유한재단이 최근 10년(2016~2025년)간 공익사업에 투입한 금액은 총 51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제약업계 공익법인 중 가장 많은 101억원을 집행했다. '기업 성장 → 배당 확대 → 사회 환원'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제도를 숫자로 입증한 셈이다.
내부적으로는 구성원의 장기 근속과 기술 축적으로 이어졌다. 회사 내에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대립 대신 모두가 동업자라는 '노노(勞勞)' 정신을 강조한 결과, 유한양행은 창업 이래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았다. 2025년 기준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 8개월에 달한다. 연구 인력의 높은 정착률은 연구 경험의 단절을 막았고, 이는 결국 국산 항암 신약 '렉라자'가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역사적 결실을 맺는 원동력이 됐다.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유한양행 앞에는 지배구조와 사회적 책임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 과거 창업자의 철학과 상징성, 전통적인 일회성 장학·복지 사업만으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지속가능성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2022년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며 제약 본업과 연결된 사회적 책임 실현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0년이 창업주의 신념을 거버넌스라는 제도로 남긴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이를 글로벌 신약 기업이라는 본연의 역할 속에서 어떻게 확장해 나갈지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을 지속하고, 치료 접근성을 개선하며, 필수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등 보건 의료 분야에서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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