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100주년<하>] '사람 중심' 경영으로 노사 무분규…새 100년도 '동업자 정신'

종업원지주제부터 전문경영인 체제까지
장기근속·고용안정·노사신뢰가 혁신 성장 이끌어


유한양행은 100년을 이어오는 동안 노사분규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창업주의 '사람 중심 경영' 철학이 상생의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1969년 유한양행 제44회 정기주주총회. /유한양행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연마된 기술자와 잘 훈련된 사원이야말로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가 남긴 이 고용 철학은 유한양행이 지난 100년간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없이 상생의 역사를 이어온 토대가 됐다. 26일 유한양행 관계자는 "회사에 노조가 있지만 노조와 사측 모두 서로가 잘 돼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유한양행은 제약바이오 업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노사 화합 기업으로 꼽힌다. 임직원 평균 근속연수 12년 8개월, 창사 이래 중대재해 0건, 그리고 100년 무분규라는 성과는 구성원을 단순한 피고용인이 아닌 공동체 주인으로 예우해 온 '사람 중심 경영'이 피워낸 결실이다.

유한양행의 선구적인 노사 화합 노력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최종 목적지가 개인이 아닌 사회여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따라 1936년 개인 기업을 법인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한국 기업사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전격 실시했다.

기업의 이익을 경영진이 독점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임직원에게 주식을 배분해 성과를 나누고 그들을 기업의 공동 주인으로 인정한 유 박사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1957년에는 학연과 지연을 철저히 배제한 사원 공개 모집을 업계 최초로 도입하며 채용의 투명성을 확립했다.

이러한 상호 신뢰 속에서 유한양행 내부에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립하는 구조 대신, 공동체의 주인이 함께 뭉친다는 뜻의 독특한 '노노(勞勞)' 문화가 자리 잡았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혹독한 경제 위기 상황이 닥쳐올 때도 유한양행은 인위적인 구조조정 대신 '고용 안정' 원칙을 최우선으로 지켜내며 임직원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오늘날 유한양행은 고용안정과 복지를 바탕으로 평균 근속 연수 12.8년을 기록했다. 이같은 환경이 지속적인 연구개발(R&D)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유한양행

유한양행의 노사 화합 노력은 시대 변화에 발맞춘 선제적이고 실질적인 복지 제도 도입으로도 증명된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0년 제약업계 최초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고령화 시대에 임직원들이 안정적으로 롱런할 수 있는 고용 환경을 구축했다.

최근에는 저출생 위기 극복에 동참하기 위해 자녀 1인당 1000만원을 지급하는 출산지원금 제도를 전격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장기 근속 환경과 고용 안정, 글로벌 수준의 산업재해 예방 시스템은 유한양행이 인적 자원에 부여하는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전문가들은 유한양행의 완벽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제도가 노사 간의 불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핵심 주춧돌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유 박사는 1962년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하며 자본을 분산시켰고, 1969년에는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친아들이 아닌 평사원 출신의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온전히 물려줬다. 오너 일가가 지분을 독점하지 않고 실질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이후 연만희 전 사장 시절 정관 개정을 통해 사장 임기를 최대 6년(3년 1회 연임)으로 제한하고 직급정년제를 명문화하면서, 특정 개인의 독단이 불가능한 회사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역대 대표이사 전원이 사원 공채 출신 전문경영인으로 이어지는 투명한 지배구조는 구성원들에게 '나도 CEO가 될 수 있다'는 비전과 함께 경영진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심어줬다.

경영진과 구성원 간의 확고한 신뢰는 기업의 장기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연구 및 영업 인력의 높은 정착률은 고스란히 연구개발(R&D) 역량 축적으로 연결됐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발굴한 국산 폐암 신약 '렉라자'가 2024년 8월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글로벌 무대에서 매출을 폭발적으로 키워가고 있는 점 역시 100년 무분규가 다진 끈끈한 조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창업주의 '사람 중심 경영' 정신을 계승하며 노사가 동업자로서 함께 성장해왔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100년 역시 임직원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신뢰의 문화를 바탕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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