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 앞 헤드셋 집어던진 군인…대법 "상관모욕죄로 처벌 못 해"

대법원 판례 27년 만에 변경

단순히 불특정 다수 앞에서 상관에게 직접 불만을 표시했다고 군형법상 상관모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27년 만에 판례가 변경됐다./더팩트 DB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단순히 불특정 다수 앞에서 상관에게 직접 불만을 표시했다고 군형법상 상관모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27년 만에 판례가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2일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해군 상사인 A 씨는 2019년 10월 기지로 입항하던 중 함정 조타실에서 대위인 상관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자 하사 등 3명이 듣고 있는 가운데 "여기 지휘관 엉망이다. 권고도 듣지않는다"라며 헤드셋을 벗어 책상에 집어던지는 등 상관을 모욕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쟁점은 상관모욕죄의 성립 조건이었다. 군형법 64조 2항 상관모욕죄는 '문서, 도화(그림) 또는 우상(상징물)을 공시하거나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1999년 11월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관을 모욕하면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공연성이 문서, 그림, 우상의 공시, 연설 등의 방법에 상응하는 정도가 아니라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1,2심은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번 판단은 달랐다. 형법상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군형법은 '공연한 방법'이라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공연한 방법'은 모욕의 수단이나 방식이 그 자체로 공연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구성요건"이라며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연히'와는 명확히 구별된다"고 지적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 하면 '공연한 방법'을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해석한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상 확장해석금지 원칙에 어긋난 것이 된다. '그밖의 공연한 방법'도 지나치게 확장,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형법은 모욕죄보다 명예훼손죄를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다. 군형법은 상관모욕죄를 상관명예훼손죄와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한다. 대법원은 상관모욕죄는 모욕 상대가 상관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공연한 방법'이라는 모욕의 방법을 가중처벌 요소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 씨가 상관에 대한 불만을 충동적으로 내뱉기는 했지만 현장에 있던 군인 3명은 우연히 발언을 듣거나 목격했을 뿐이며 여러 군인에게 반복적, 지속적으로 확산될 만한 방법으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는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했다고 볼 수 없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상관모욕죄 성립에 있어 공연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재판을 다시 하도록 했다.

천대엽, 오석준, 엄상필, 신숙희, 박영재 대법관은 소수 의견을 냈다. 모욕 행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양상이 끊임없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군형법은 '그밖의 공연한 방법'을 추가해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입법 형식을 취했다고 해석했다. 이들은 "공연한 방법을 제한해 해석하는 다수의견은 60여 년 전 군형법 제정 당시의 문언에 얽매여 시대상황의 변화와 발전을 뒤따르지 못한 채 오히려 급진전하는 정보화 추세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형법상 모욕, 명예훼손 등 같은 명예에 대한 죄인데도 상관모욕죄만 공연성을 달리 보는 이유도 불충분하며 모욕 대상이 상관일 경우 가중처벌한다는 입법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봤다.

다수 의견대로라면 부하 군인이 불특정 다수 군인이 듣는 상태에서 여성 상관을 성적 대상 삼아 음란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처벌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모욕의 내용이 군 조직의 건전한 위계질서와 통수체계를 직접 침해해도 명시된 '공연한 방법'이 아니면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문언을 엄격하게 해석해 '문서·도화·우상 공시·연설에 해당하거나 상응하는 정도의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고 봐 처벌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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