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선풍기로 버티는 80대 노인…'더위와 사투' 쪽방촌의 여름나기

전기세 부담에 에어컨 있어도 못 틀어
쿨링포그·무더위쉼터 실효성 지적도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건물의 방문이 열려 있는 모습. /진주영 기자

[더팩트ㅣ진주영 기자] "낮에 햇빛이 내리쬐면 방 안이 푹푹 쪄서 살 수가 없어요. 더워도 별수 있나, 선풍기 두 대로 버티는 거지."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에 서너 명이 앉아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쪽방촌 건물 사이 골목의 체감온도는 35도에 달했다. 길바닥에 주저앉은 주민들은 연신 얼굴과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방 안의 열기를 빼내려는 듯 곳곳에는 문을 열어놓은 집들이 눈에 띄었다. 쪽방촌 주민들 대다수는 선풍기에만 의지한 채 여름을 버티고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자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복도 양옆으로 10가구 정도가 줄지어 있었다. 천장에는 벽걸이 에어컨 한 대가 걸려 있었지만 복도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선풍기를 틀고 앉아 있던 70대 박모 씨는 "방 안에는 에어컨도, 창문도 없어서 문을 열고 복도 에어컨 바람이 들어오게 한다"며 "복도 에어컨도 공동으로 쓰는거라 마음대로 틀 수도 없어 밤에 잘 때는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5평(약 5㎡) 남짓한 쪽방에 침대와 냉장고, 선풍기가 놓여 있다. /진주영 기자

동자동 쪽방촌으로 이사온 지 10년째라는 80대 신모 씨는 "정부가 에어컨 설치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오래된 건물이라 설치 불가능한 곳이 많다"며 "집주인이 에어컨을 달아줘도 전기세를 공동으로 부담해야 해 눈치를 보느라 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옆 건물 파란색 철문 안으로는 성인 한 명이 겨우 생활할 수 있는 1.5평(약 5㎡) 남짓한 방이 보였다. 침대와 냉장고, 선풍기가 놓여 있는 방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천장에는 오래된 누수 흔적과 곰팡이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고 벽지는 습기를 머금은 채 울어 있었다. 방 안에 설치된 벽걸이 에어컨은 오래된 듯 노랗게 색이 바랜 모습이었다.

김순내(83) 씨는 "몇 년 전 중고로 나온 에어컨을 구해서 달았지만 전기요금이 부담돼 주로 선풍기를 틀고 생활한다"며 "장마철에는 비만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집이 워낙 오래돼 어디를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그나마도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고 창문도 없이 생활하는 집들도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더위에 지친 주민들은 쪽방촌 인근 새꿈어린이공원에 설치된 쿨링포그 아래로 모여들었다. 주민들은 쿨링포그 아래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신발을 벗은 채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 새꿈어린이공원에 설치된 쿨링포그 아래 주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진주영 기자

쿨링포그 아래서 땀을 식히던 윤모(73) 씨는 "쪽방촌에서 지낸 지 20년째인데 매년 여름마다 더위와 사투를 벌인다"며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전기세가 부담되다 보니 버티기 힘들 때 10분 정도 틀고 평소에는 선풍기만 쓴다"고 말했다.

윤 씨는 "쿨링포그 밑에 있어도 별로 시원하지도 않고 쉼터에 가도 몇 사람 앉지를 못해 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공원에 그늘막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동자동 쪽방촌에는 주민 약 8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나 신용불량자인 경우가 많아 생활이 녹록치 않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민자치 활동을 지원하는 김우진 씨는 "서울시에서 무더위 쉼터나 밤더위 대피소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공간이 좁아 정작 쉼터를 이용하는 주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몇 달 전에는 기업 후원을 받아 운영하던 목욕탕 이용이 중단된 적도 있고 일주일 전에는 쿨링포그가 고장나기도 하는 등 지원 정책이 불안정하게 운영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쉼터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더라도 주민들은 결국 다시 열악한 방으로 돌아가 무더위와 싸워야 한다"며 "폭염 대책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노후한 쪽방 주거환경 개선과 공공개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pear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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