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 아직은 이르다"…안동 체화정 배롱나무의 마지막 여름

입추 지나도 붉은 꽃 만발…한여름 더위 이겨낸 백일홍의 자태

안동 제화정에 배롱나무꽃이 만개해 마지막 더위를 달래고 있다. /김종홍 씨(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자 장승 조각가) 제공

[더팩트ㅣ안동=김성권 기자] 절기상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가 하루 지난 8일, 경북 안동의 보물인 체화정이 붉은 배롱나무꽃으로 한여름의 마지막 더위를 달래고 있다.

조선시대 정자 건축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체화정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만개해 고풍스러운 한옥과 짙푸른 녹음,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체화정의 처마와 누각을 감싸듯 피어난 분홍빛 배롱나무꽃은 한여름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한 빛을 내며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붉게 핀다'는 뜻에서 백일홍으로도 불린다. 한 송이의 꽃이 100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랫동안 꽃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이어지는 개화 특성 때문에 배롱나무는 예부터 사찰과 선비들의 공간에 많이 심어졌다. 매끄러운 나무껍질은 겉으로 감출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청렴과 결백을 상징했고 선비들은 오랜 기간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에서 변치 않는 학문과 수양의 자세를 떠올렸다고 전해진다.

안동 제화정에 배롱나무꽃이 만개해 마지막 더위를 달래고 있다. /김종홍 씨(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자 장승 조각가) 제공

특히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은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실천해야 하는 선비의 삶과도 닮았다.

체화정의 배롱나무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름꽃을 넘어, 옛 선비들이 자연에 담았던 뜻을 되새기게 한다.

배롱나무에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찰에 배롱나무가 많이 심어진 것은 말없이 떠난 수행자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붉은 꽃을 바라보던 데서 비롯됐다는 설화다. 그래서 배롱나무의 꽃말 가운데 하나로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이 전해지기도 한다.

배롱나무의 꽃은 질 때조차 화려하다. 붉은 꽃잎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 빛깔을 잃지 않은 채 한꺼번에 떨어지며 여름의 끝을 알린다.

입추를 지나 가을 문턱에 들어섰지만, 체화정의 배롱나무는 여전히 한여름이다.

뜨거운 계절을 견디며 끝까지 붉게 피어 있는 꽃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과 삶의 자세를 되새기게 하는 풍경이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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