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뺏긴 시대, 하나고 '비선수' 농구 우승이 묻는 ‘참교육’ [박순규의 창]

비선수 1·2학년의 8전 전승 2연패…'1인 2기'가 입증한 전인 교육의 가치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못한 '연대와 협력'


비선수 출신 인문계 1~2학년으로 구성된 하나고 농구팀이 16일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에서 8경기 전승으로 우승, 대회 2연패를 이룩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독자 제공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대한민국 학교에서 가장 먼저 생명력을 잃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공간은 다름 아닌 운동장이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운동장으로 뛰쳐나와 공을 차거나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아이들의 함성은 아련한 옛 추억이 됐다. 점심시간마저 텅 빈 운동장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학생들은 교실 한구석에 웅크려 스마트폰 액정을 들여다보거나 쏟아지는 잠을 청한다.

방과 후면 가방을 둘러메고 곧장 학원가 빌딩 숲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오늘날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일상이 됐다. 체육 시간마저 미세먼지와 폭염, 안전사고에 대한 과도한 민원, 그리고 무엇보다 "입시에 도움 안 되는 과목"이라는 낙인 속에 강당 안 자율학습이나 입시 과목 보충 수업으로 대체되기 일쑤다.

신체 활동이 거세된 교실의 대가는 혹독하다. 소아·청소년 비만율과 척추 측만 등 기초 체력 지표는 해마다 바닥을 치고 있고, 우울증과 정서 불안, 대인기피를 호소하는 학생들은 급증하고 있다.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분출하고 타인과 부딪치며 갈등을 조율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오직 0.1점을 다투는 치열한 상대평가 감옥에 갇힌 탓이다. 교권은 땅에 떨어져 사제 간의 온기는 식었고, 친구는 넘어서야 할 경쟁자로만 인식되는 교육의 사막화 현장.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2020년대 대한민국 학교의 민낯이다.

이 참담하고 삭막한 교육 현실 속에서 들려온 한 편의 승전보는 신선함을 넘어 전율에 가까운 충격을 안긴다.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에서 하나고등학교가 16일 지역 예선부터 결승까지 8경기 전승이라는 무패 신화로 2년 연속 정상에 오른 사건이다. 놀라운 점은 팀을 이룬 학생들이 체대 입시생도, 과거 선수 생활을 했던 엘리트 출신도 아닌 순수 인문계 1·2학년 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빽빽한 교과 진도와 수행평가, 과제에 쫓기는 일반 학생들이 틈틈이 시간을 쪼개 훈련하고 합을 맞춰 서울 시내 쟁쟁한 학교들을 연파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하나고의 '1인2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 하나고 학생들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매주 4일씩 하루 90분간 체육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하나고

동양의 위대한 스승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고 갈파했다. 알기만 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뜻이다. 코트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동료의 눈빛 하나에 몸을 던지던 하나고 학생들의 모습이 바로 이 경구의 살아있는 증거였다. 대입 스펙을 쌓기 위한 억지 활동이 아니라, 땀방울이 주는 정직한 희열을 알고 승부 그 자체를 온몸으로 즐겼기에 빚어낼 수 있었던 값진 열매였다.

영국의 유서 깊은 명문 사학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는 거친 날씨에도 매주 수차례 럭비와 조정을 필수로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을 꺾은 웰링턴 공작은 훗날 "워털루 전투의 승리는 바로 이튼의 운동장에서 잉태됐다"고 회고했다. 근대 서구 엘리트 교육이 그토록 체육을 중시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신체를 혹독하게 단련하는 과정에서 규칙을 준수하는 법을 배우고, 패배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과 동료를 향한 헌신이라는 '인간됨의 기본'을 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이다.

하나고가 개교 이래 묵묵히 지켜온 '1인 2기(1體 1藝)' 교육은 바로 이 잊힌 교육의 본질을 되살린 모범 사례다. 전교생이 매주 4회, 회당 90분씩 정규 일과 속에서 농구, 검도, 발레, 악기 등을 체계적으로 익힌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오랜 라틴어 명언(Mens sana in corpore sano)을 말장난이 아닌 현실의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이번 8전 전승의 쾌거는 기적이라 부르지만, 사실 기적이 아니다. 매주 규칙적으로 동료들과 땀을 흘리며 몸을 부딪치고, 양보와 소통을 체화해 온 단단한 전인 교육의 토양 위에서 피어난 당연한 귀결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학교 폭력, 은둔형 외톨이, 교권 붕괴와 같은 복합적 위기는 아이들에게서 '운동장'을 빼앗아 버린 데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책상머리에서 주입하는 도덕 교과서 열 권보다, 코트 위에서 5초를 남겨두고 나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친구에게 공을 넘겨주는 단 한 번의 패스가 '배려와 연대'의 가치를 훨씬 깊게 각인시킨다. 거친 파울을 당해도 털고 일어나 심판의 판정에 승복하고 다시 달리는 경험은 그 어떤 훈계보다 강력한 '준법과 인내'의 산교육이다.

지식(智)만 비대해지고 덕성(德)과 체력(體)은 밑바닥인 기형적 교육 구조로는 결코 미래를 짊어질 건강한 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 위기에 빠진 공교육을 살리는 해법은 거창한 입시 개편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빼앗긴 아이들의 운동장을 되돌려주고, 흙먼지 속에서 마음껏 구르고 넘어지며 다시 손잡고 일어서게 만드는 '운동장의 교육학'을 복원하는 데 있다.

슛 하나에 환호하고 패스 하나에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우승을 일궈낸 하나고 학생들의 거친 숨소리가, 적막에 휩싸인 대한민국 학교와 기성세대를 향해 묻고 있다. "학교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책상 앞에만 가두어 둘 것인가."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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