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그늘' 아이돌 연습생…자퇴는 기본, 영양실조에 우울증까지

아미넷, 연습생 16명 심층면접 조사 발표
대중문화사업법 보호 대상이지만 '사각지대'
"훈련 과정 구체적 보호기준 마련 시급"


아이돌 연습생들의 학습권·건강권 침해가 심각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법적 안전망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중문화산업법 등이 연습생 훈련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규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한 아이돌의 공연 현장으로 기사와 무관. /송호영 기자

[더팩트ㅣ김태연 기자] "대표님이 꼭 데뷔시켜주겠다고 말해 학교 자퇴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월말 평가 이후 피드백도 없이 회사에서 내보냈어요. 계약서에 꼭 데뷔시켜주겠다는 내용이 없으니 내보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영양분이 안 들어오니까 조금만 다쳐도 골절됐어요. 병원에서 춤을 추지 말라고 했는데, 좀 쉬면 내 자리를 다른 친구들이 차지할 수도 있으니 불안감에 쉬지 못했어요. 영양실조에 허리 디스크, 인대 파열, 생리 불순까지. 아이돌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에요."

아이돌 연습생의 학습권·건강권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법적 안전망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라 훈련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규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학교 다니면 뒤처진다"…조퇴·자퇴 압박하는 회사도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아미넷)는 지난 2019년 이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경험한 16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학교 자퇴나 조퇴를 강요하는 등 학습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고 30일 밝혔다. 이들 16명이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평균 나이는 15.9세였다. 가장 어린 참여자는 12.2세에 시작했다. 평균 연습 기간은 약 30개월이었다. 아미넷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세이브더칠드런 등 12개 단체로 구성됐다.

연습생 출신 A 씨는 "데뷔조에 있을 때는 준비할 게 너무 많아져 필수적으로 조퇴를 하라고 강요했다"며 "자퇴 안 하면 데뷔 못한다고 하는 회사도 있어 중학교 때부터 자퇴를 택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B 씨는 "회사가 하루에 10시간 연습하길 바랬는데 학교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연습을 5시간밖에 못하니 조퇴하라고 했다"며 "연습생들 대부분 데뷔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은 "학교 조퇴나 자퇴 등을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치열한 경쟁 압박 속에서 학교생활은 당장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니 자연히 조퇴와 결석, 자퇴 등을 선택하게 되고 이는 학업에 소홀해지는 것을 넘어 기획사 이외의 사회적 공간 자체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연습생 시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퇴하지 않고 학교를 계속 다닐 것"이라면서 "당시에는 학교에서 쓰는 시간보다 연습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야를 좁게 가졌던 것 같다. 공부도 함께 병행할 걸 후회된다"고 말했다.

건강권 침해 문제도 심각했다. 조사 참여자들은 과도한 다이어트와 체중 관리 과정에서 무월경, 실신, 영양실조, 탈수, 구토·변비약 복용, 디스크·관절 손상 등을 경험했다고 진술했다. 상시적인 평가와 경쟁, 외모 평가와 데뷔 불확실성 속에서 우울·불안 등을 겪었다는 사례도 나왔다. 사진은 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기사와 무관. /남윤호 기자

◆지나친 다이어트로 건강 이상…"춤 추다 거품 물고 발작"

건강권 침해 문제도 심각했다. 연습생들은 과도한 다이어트로 무월경, 실신, 영양실조, 탈수, 구토·변비약 복용, 디스크·관절 손상 등을 겪었다고 진술했다. 평가와 경쟁, 데뷔 불확실성 속에서 우울·불안 등을 겪은 연습생도 있었다.

C 씨는 "샐러드만 먹으며 키 169cm에 43kg까지 빠졌다. 볼이 파일 정도로 말랐는데 화면에는 예쁘게 나와 미쳐버릴 것 같았다"며 "춤을 추다가 발작을 일으키고 거품을 물며 쓰러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체중 감량에 실패하면 식비 지원 중단, 체중 달성 현황의 사내 공개, 연습실 사용 제한까지 있었다"고 강조했다.

D 씨 역시 "생리를 1년 가까이 하지 않았고, 영양실조로 하루에도 몇십 번씩 쓰러졌다"며 "수면 시간이 2~3시간에 불과했었는데 화장실에 가다 쓰러지거나 침대에서 몸이 저려 움직이지 못해 구급차를 부른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연습생들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많이 앓았고 몸무게에 대한 압박, 언제 데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일 울기도 했다"며 "살이 오른 연예인을 예시로 들며 '이렇게 되고 싶냐. 망하고 싶냐'는 폭언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성현 동서울대 K-팝과 교수는 "연습생의 목표 체중이 체질량지수(BMI) 15~18 수준으로 설정되는 사례가 있었다"며 "성장기 청소년의 건강권과 인격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체질량지수는 체중(㎏)을 신장(m)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정상 지수는 18.5~22.9에 해당한다.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연습생 건강권 보장을 위해 공개 체중 측정·게시, 식비 정지, 연습실 사용 금지 등을 과도한 외모 관리 강요의 예시로 시행령이나 표준계약서 등에 명시해야 한다"며 "연습생을 포함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섭식장애 예방을 위한 기준이나 관련 지침 마련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사업법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제공시간을 제한하고 학습권·휴식권 등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15세 미만은 주 35시간, 15세 이상은 주 40시간을 원칙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법은 '대중문화예술제작물 제작 시' 용역 제공을 전제로 한다. 사진은 한 기획사 안무 연습실 사진으로 기사와 무관. /더팩트DB

◆법은 있으나 마나…학습권·건강권 사각지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대중문화산업법)에는 대중문화예술사업자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과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과도한 외모 관리를 강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외모 관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다.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제공시간을 제한하고 학습권·휴식권 등을 보호하는 규정도 있다. 만 15세 미만은 주 35시간, 만 15세 이상은 주 40시간을 원칙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대중문화예술제작물 제작'에 대한 용역 제공시간을 전제로 하기에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에는 보호 규정이 작동하지만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수년간 반복하는 연습생 시절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연습생의 법적 지위도 애매하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에는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기 위해 교육·훈련 등을 받는 사람'을 예술인에 포함한다. 그러나 예술인이 권리침해 구제 등을 적용받을 수 있는 예술인 복지법에서는 예술인을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예술 활동 실적이 없는 연습생은 사실상 복지제도에서 배제된다.

김 변호사는 "케이팝 중심에 있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은 연예인이나 연습생이기 앞서 한 명의 아동·청소년"이라며 "대중문화산업법 등을 개정해 연령에 적합한 학습과 여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신체·정서·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여진 한국K-팝 고등학교 교사는 "미성년 연습생의 교육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준과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학교와 기획사가 각자의 역할을 보완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도전하면서도 교육과 건강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pado@tf.co.kr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