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열두 고개 넘으며 나눔 실천한 봉화 보부상…공동체 정신 오늘에 잇다

오전리 토지·가옥 마을에 내어준 보부상 11인의 숭고한 뜻 기려
위령제와 마당놀 되살린 장돌뱅이의 애환…지역 전통문화로 계승


12일 봉화군 물야면 오전약수탕 일원에서 봉화 보부상 위령제 및 한마당 행사’가 열렸다. /봉화군

[더팩트ㅣ봉화=김성권 기자] 산세가 험한 열두 고개를 넘나들며 봉화와 울진 일대 장시를 누볐던 보부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나눔을 실천했던 이들의 정신이 오늘날 봉화의 향토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봉화군 물야면 오전약수탕 일원에서는 봉화 보부상 보존연구회 주관으로 '봉화 보부상 위령제 및 한마당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보부상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시작으로 전통문화 공연과 마당놀이 등을 통해 옛 보부상의 삶과 애환을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오전 11시 보부상 합동 위령비 앞에서 진행된 위령제는 조선시대 봉화에서 활동했던 보부상 11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의식으로 치러졌다. 이어 낮 12시부터 오전약수탕 주차장 일원에서 식전공연을 비롯해 보부상 마당극과 마당놀이, 축하공연 등이 펼쳐지며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전했다.

◇가진 것을 내어준 보부상 11인의 나눔 정신

보부상은 조선시대 전국의 장시를 오가며 물건을 사고팔던 상인들이다. 보자기나 지게 등에 상품을 짊어지고 산길과 고갯길을 넘나들며 지역과 지역을 연결했고,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장터를 중심으로 서민들의 생활경제를 뒷받침했다.

봉화 보부상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봉화와 울진 지역 장시를 오가려면 험준한 산길을 넘어야 했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먼 길을 이동해야 했다. 날씨와 지형의 영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여정 속에서 동료와 이웃의 도움은 삶을 이어가는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이들의 삶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고단한 생업의 흔적만이 아니다. 오전2리 마을에는 조선시대 보부상 11인이 생을 마치면서 자신들이 살았던 오전리 일원의 토지와 가옥을 마을에 내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2일 열린 '봉화 보부상 위령제 및 한마당' 행사에서 최기영 봉화군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봉화군

마을에서는 이들의 고귀한 마음을 기리기 위해 위령비를 세우고, 영령을 위로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위령제를 매년 지내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공동체에 내놓은 보부상들의 뜻은 마을의 기억 속에 남아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개인의 생계를 넘어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했던 마음은 오늘날에도 되새겨볼 만한 가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갔던 보부상들의 삶은 지역 사회가 함께 지켜온 역사이자 나눔의 의미를 일깨우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장돌뱅이의 애환, 마당놀이로 되살리다

봉화 보부상 위령제와 함께 이어지는 한마당 행사는 보부상들의 삶을 공연예술로 풀어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봉화 보부상 보존연구회는 험한 산길을 오가며 장사를 이어간 보부상들의 고단함과 그 속에서 피어난 정을 마당놀이로 재현하며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과거 보부상들이 겪었던 생활의 애환을 오늘날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로 승화해 주민들이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당극과 마당놀이는 단순히 옛 모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록으로만 접하기 쉬운 지역의 생활사를 생생한 이야기와 몸짓, 음악으로 전달하며 세대 간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역의 역사적 인물과 생활상을 소재로 삼는 공연은 주민들에게 고향의 뿌리를 돌아보게 하고, 외부 방문객에게는 봉화만의 고유한 문화적 특색을 알리는 기회가 된다.

매년 위령제와 한마당 행사가 이어지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다. 보부상들의 넋을 기리는 의례와 그들의 삶을 되살리는 공연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12일 봉화군 물야면 오전약수탕 일원에서 '봉화 보부상 위령제 및 한마당 행사'가 열렸다. /봉화군

지역의 전통문화는 한 번의 행사만으로 보존되기 어렵다.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는 주민들의 관심과 이를 꾸준히 이어가는 단체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봉화 보부상 보존연구회의 활동은 지역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주민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문화자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최기영 봉화군수는 "봉화 보부상들의 숭고한 나눔 정신과 삶의 애환이 담긴 이번 위령제와 한마당 행사가 우리 지역의 고유한 전통문화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잊혀져 가는 지역의 소중한 향토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계승·발전시키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겠다"고 말했다.

봉화 보부상 보존연구회 관계자는 "깊어가는 가을에 지역색이 묻어나는 전통문화 행사에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많은 관심과 참여를 보여줘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봉화 보부상의 보존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산길을 넘어 장터를 오가며 삶을 꾸렸던 봉화 보부상들. 이들이 남긴 것은 장사의 흔적만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공동체를 위해 가진 것을 나누었던 마음이다. 위령비 앞에서 올리는 제례와 마당에서 펼쳐지는 놀이가 해마다 이어지는 동안 보부상들의 삶은 잊혀 가는 옛이야기를 넘어 봉화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잇는 소중한 향토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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