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이 지났지만 슬픔은 멈추지 않았다…여순사건 합동추념식 순천서 엄수

행안부 장관, 대통령 추념사 대독 국가 책임·진상규명 강조
'빨갱이' 낙인 억눌린 세월…미신고 희생자 발굴·명예회복 과제


여수·순천 10·19사건 제78주기 합동추념식이 19일 순천시 오천그린광장에서 열렸다. 유족 3세 채종정 씨가 시 '열여섯 살이었다'를 낭송, 여순사건의 아픔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김영신 기자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7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빨갱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던 희생자와 유족들.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을 향한 길이 열렸지만 아직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과 진상규명의 결실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유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다.

여수·순천 10·19사건 제78주기 합동추념식이 19일 전남광주 순천시 오천그린광장에서 열렸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유족, 시민 등이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통령 추념사를 대독했다. 윤 장관은 추모사 대독을 통해 "법을 만들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한다고 해서 국가의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영신 기자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통령 추념사를 대독했다. 윤 장관은 대통령 추념사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오랜 세월 고통을 감내해 온 유족들을 위로하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법을 만들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한다고 해서 국가의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국가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재수 여순10.19항쟁유족총연합 상임대표는 "국가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랬고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아픔을 함께 나눴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신고도 못한 유족들이 너무 많다. 갈등이 아닌 평화와 화해의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국가가 더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여순사건 희생자와 유족들은 80년 가까운 오랜 세월 사건의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반란'과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기억됐고, 가족들은 연좌제의 두려움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상처를 감내해야 했다.

이날 추념식에서는 희생자 유족의 사연이 참석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고, 여순사건의 아픔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서도 마련됐다.

유족 3세인 채종정 씨가 시 '열여섯 살이었다'를 낭송했다. 시에는 어린 나이에 가난과 고통을 감내하며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의 삶과 78년이 흐른 후에도 나이를 먹지 않은 '열여섯 살 형'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담겼다.

고(故) 박찬길 검사의 유족인 아들 박경진 씨의 사연도 전해졌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다며 울먹인 박경진 씨는 "아버지는 의로운 분이었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듣고 자랐다"며 빨갱이 검사라는 낙인 속에 어머니 혼자 자식을 키워야 했던 가족의 고난을 전했다.

무대 위에서는 여순사건을 연극화 한 짧은 연극이, 행사장 주변에는 여순사건 관련 미술 작품과 기록을 담은 전시가 마련됐다. /김영신 기자

무대 위에서는 여순사건을 연극화 한 짧은 연극이, 행사장 주변에는 여순사건 관련 미술 작품과 기록을 담은 전시가 마련됐다. 행사장 한 켠에서는 순천시 한 예술단체가 '여순항쟁 추모 공연'과 '순천 오장상여소리 공연'을 이어갔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발생, 여수·순천을 비롯한 전남 동부권에서 군경의 진압과 이후 수습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이후 78년이 지났지만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 미신고 희생자 발굴, 사건의 전모를 밝힐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날 추념식은 희생자와 유족이 더 이상 억울함을 숨기지 않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회, 미처 신고하지 못한 희생자까지 국가가 찾아 나서는 사회, 여순사건의 기억이 추모를 넘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한번 일깨웠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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