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육도시 순천시, '교육 패러다임' 변화…'지역서 배우고 성장해 지역에 정착'

전남 동부권 교육 중심지 옛 위상 찾고 시민 체감 교육환경 필요
특목고·국립의대 유치로 교육·문화 중심 정주 여건 도시로 안착


순천시에서 가장 최근에 개관한 오천동 어울림도서관 내부. 높은 층고에 다양한 도서들이 찾기 쉽게 배치되어 있어 이용자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김영신 기자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한때 순천시는 전남 동부권에서 공부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였다. 광양시, 여수시, 고흥군, 구례군, 보성군 등 순천 지역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순천고 등에 진학했고, 고교평준화가 되기 전까지 순천고는 우수한 지역 인재의 '핵심 요람'이란 평가를 받았다.

전국에서 처음 문을 연 '기적의 도서관' 개관과 평생학습도시 지정은 학교 중심의 교육을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한 변화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학령인구가 줄고 교육 수요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순천시가 여전히 교육 때문에 선택받는 도시인지, 교육정책이 실제 정주 여건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26일 순천시에 따르면 현재 고등학교 신설과 특수목적고 유치, 교육발전특구 운영, 평생교육 확대 등을 추진하며 교육 경쟁력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국립순천대 의과대학 유치도 지역의 고등교육과 의료 기반을 확장할 과제로 거론된다. 그러나 계획이 많다는 것과 성과가 있다는 것은 다르다. 교육도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정책 발표를 넘어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할 변화, 지역에 사람이 머물게 할 실질적인 기반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다.

◇인재가 모이던 교육도시…과거의 명성이 현재를 보장하진 않아

순천시의 '교육도시 정체성'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 전남 동부권에서 학업에 뜻을 둔 우수한 학생들이 순천시로 모여들었고, 순천고는 이들이 진학을 희망하던 공립고 가운데 하나였다. 순천시는 학교와 교육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학생과 가족을 통해 동부권 교육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쌓았다.

교육은 학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과 가족의 이동은 주거와 소비, 문화생활을 함께 움직이고, 학교와 도서관 등 교육 기반은 지역에 머물 이유를 만든다. 교육 여건이 도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당시의 교육 환경과 지금의 교육 수요는 다르다. 과거에는 우수한 학교와 진학 성과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면, 오늘날 학부모들은 학교 선택권과 통학 거리, 돌봄, 사교육비 부담, 진로교육, 문화·독서 환경 등을 함께 고려한다.

학생이 지역에서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졸업 이후 진학과 취업의 기회가 있는지도 중요해졌다. 순천시가 교육도시의 위상을 회복하려면 과거의 명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생과 가족이 순천을 선택할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순천시는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하여 지역에 정착하는 인재 양성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밝혔다.

전국 최초의 어린이전용도서관 '순천 기적의 도서관' 모습. /순천시

◇기적의 도서관과 평생학습…기반은 넓혔지만 성과도 따져야

순천시는 학교 밖 배움의 영역을 넓혀 왔다. 2003년 11월 문을 연 기적의 도서관은 국내 첫 어린이 전용 공공도서관으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독서문화 공간의 모델을 제시했다. 같은 해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이후 관련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고 시민대학 등 성인 학습 기반을 확대해 왔다.

이런 변화는 교육을 학령기 학생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어린이 독서문화부터 성인 재교육까지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순천시는 '모두愛학교'를 통해 시민에게 다양한 평생학습 과정을 제공하고, 평생교육바우처와 취약계층 학생 교육비 지원, 학교 교육경비 지원, 초등학교 입학지원금 등 교육 관련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대안교육시설 급식 지원 등 교육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정책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사업의 종류나 규모만으로 정책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이 개설되어서 홍보는 잘되고 있는지, 시민이 시간과 비용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지, 취약계층의 교육 기회가 실제로 확대됐는지,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하는 부담이 줄었는지를 확인하는 행정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교육 기회를 넓히는 데서 나아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시민의 역량 강화와 재취업, 지역 활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기적의 도서관과 평생학습은 순천시가 축적해 온 기반일 뿐 현재의 교육 경쟁력을 대신 입증하는 성적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신대·해룡권 고교 신설…필요성만큼 실행력이 중요

순천시 교육정책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신대·해룡권 고등학교 신설이다. 신대·선월지구는 주거지 확장과 인구 유입에 따라 교육 수요가 늘고 있지만 고등학교 부족에 따른 통학 불편 문제가 제기돼 왔다.

순천시의 공약 자료에도 신대·선월지구의 교육환경 개선 필요성이 담겨 있다. 다만, 과거 교육 당국은 세대 입주 조건 등 신설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 설립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문제는 교육도시를 표방하는 순천시가 풀어야 할 현실적인 과제다. 도시개발과 인구 유입에 맞춰 교육시설을 적기에 확보하지 못하면 주거 여건이 좋아져도 가족이 체감하는 생활환경에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학교 신설은 학생 수요와 재정, 교육 당국의 설립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하는 만큼 시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순천시는 신대·해룡권 고교 신설에 대한 협의를 교육 당국과 이어가고 있으며, 특수목적고 유치도 추진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특목고 유치 역시 학교 유형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교육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지역 학생들의 진학 선택권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 일반고와 특성화고를 포함한 기존 학교의 교육 여건은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특정 학교 유치에 기대기보다 지역 전체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는 접근이 필요하다.

◇AI·생태·대학·의료…미래교육을 지역 정착으로 연결해야

순천시는 교육발전특구 시범 사업을 바탕으로 생태와 문화콘텐츠, 디지털·AI 교육 등을 지역 특성과 연계하는 교육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과 산업체의 협력을 통해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고, 교육혁신선도지역 지정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미래교육의 방향은 타당하지만 핵심은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이 운영하느냐가 아니다. 학생들이 실제 수업과 진로 탐색에서 어떤 기회를 얻는지, 교육이 대학 진학과 취업으로 연결되는지, 지역 기업과 대학이 교육과정에 얼마나 참여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일회성 체험 행사와 단기 프로그램이 반복되는 데 그친다면 지역의 인재를 키우고 정착시키겠다는 목표와 거리가 생길 수 있다.

국립순천대 의과대학 유치도 교육과 지역 정주를 연결할 수 있는 과제다. 의대와 교육·수련병원 설립이 현실화하면 고등교육과 의료 인력 양성, 지역 의료서비스, 관련 일자리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교육과 대학, 산업, 의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며 살아가는 경로를 넓힐 수 있다. 반대로 교육정책과 지역 일자리 정책이 따로 움직이면 우수한 교육을 받은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흐름을 막기 어렵다.

미래교육은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배움이 지역의 기회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순천시가 운영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 '모두愛학교'에서 시민들이 컴퓨터 수업을 듣고 있다. /순천시

◇광양·여수와 다른 경쟁력, 교육이 정주 이유가 되려면

광양시와 여수시는 산업과 일자리, 관광 등 각자의 기반을 갖고 있다. 순천시가 교육을 차별화된 정주 경쟁력으로 내세우려면 교육도시라는 역사적 정체성뿐 아니라 현재 시민이 체감하는 교육환경을 보여줘야 한다.

학교 신설과 특목고 유치의 추진 상황, 교육비 지원의 실제 효과,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이용 실적, 학생들의 진로 선택과 지역 정착을 돕는 연계 정책 등이 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정책의 수와 예산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 당국과의 협의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당초 계획이 지연된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지원 사업이 누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공개돼야 한다.

교육도시의 위상은 과거의 명성이나 사업의 숫자만으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학생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고, 학부모가 교육비와 돌봄 부담을 덜며, 청년이 지역에서 배운 역량을 진학과 취업으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순천은 교육도시의 역사와 기적의 도서관,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 등 평생학습이라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를 미래교육과 지역의 일자리, 생활환경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교육이 정주 경쟁력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추진되는 정책을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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