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힙합은 어리석은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힙합의 태동은 암울한 현실과 함께 해
사욕을 위해 힙합을 도구로 사용하는 작태 지양 필요


힙합은 1970년대 파티 음악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정신'이 깃들어 있다./더팩트DB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힙합의 시작은 파티 음악이었다.

1973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 세지윅 애비뉴 1520번지에서 파티를 개최한 DJ 쿨 허크(DJ Kool Herc)는 댄서들이 주로 드럼 비트가 이어지는 브레이크 구간에 맞춰 춤을 추는 것에 착안해 두 개의 턴테이블로 드럼 비트가 끊이지 않게 플레이하는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 기법을 선보였고 이것을 힙합의 시초로 본다.

또 DJ 쿨 허크는 이 계속되는 브레이크 구간에 맞춰 춤을 추는 댄서들을 비보이(B-Boy) 비걸(B-Girl)이라고 불렀고 이는 여전히 댄서들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DJ 쿨 허크에서 시작된 힙합은 비슷한 시기 활동한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나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같은 선구자들이 나타나면서 차츰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 잡았고, 이들의 디제잉에 맞춰 추임새를 넣던 MC들이 말재주를 뽐내던 것이 '랩'으로 발전하기 이른다.

이처럼 힙합의 시작은 파티 음악이었지만 당시 시대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 파티가 단순히 웃고 즐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는 치안과 행정이 무너지면서 갱단이 점령한 무법지대에 가까웠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늘 폭력과 마약, 보험 사기를 노린 방화 등에 노출돼야 했다. 당연히 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워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에 손을 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공간이 당시 브롱크스였다.

1977년 10월 12일,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2차전 경기 도중 캐스터였던 하워드 코셀(Howard Cosell)이 헬리콥터 카메라 화면을 보고 외친 "브롱크스가 불타고 있다(The Bronx is Burning)"이라는 말이 미국 전역에서 유행한 하나의 관용구로 정착할 정도였다.

이처럼 콘크리트 감옥 같은 브롱크스에서 살아가야 했던 주민들에게 DJ 쿨 허크와 아프리카 밤바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등의 파티는 잠시나마 암울한 현실을 잊게 만든 위안처이자 폭력과 범죄에 대항한 일종의 치유 과정이었다.

일례로 아프리카 밤바타(그 역시 아동 성추행 등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이지만 이와 별개로)는 줄루 네이션(Universal Zulu Nation)을 창설하고 '총과 칼을 버리고 마이크와 스프레이 춤으로 싸워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거리의 폭력을 랩 배틀이나 댄스 배틀 같은 평화적 경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힙합의 시작을 단순히 놀고 즐기기 위한 파티 음악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가 1982년 브롱크스 거리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The Message(더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컨셔스 랩(Conscious Rap,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다루는 힙합 하위 장르)이 탄생하기도 했다.

DJ 아프리카 밤바타는 힙합을 창시한 장본인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미성년자 성폭행 사실이 밝혀지면서 힙합계에서 퇴출 당했다./뉴시스, AP

특히 컨셔스 랩의 대표 아티스트로 꼽히는 동부의 퍼블릭 에네미(Public Enemy)와 서부의 N.W.A의 등장은 랩 가사에 적나라한 욕설과 파괴적인 단어 사용의 유행을 불러왔고, 이는 다시 '힙합=저항정신'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알 사람은 알 만한 힙합의 역사를 굳이 끄집어낸 이유는 랩 가사에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이나 욕설 등이 사용되는 것이 묵인된 이유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힙합은 그 태생이 암울한 현실에 저항하고 벗어나기 위한 목적을 내포하고 있으며 욕설과 조롱, 폭력적인 가사 등은 이런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물론 힙합이 범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고 수많은 하위 장르가 생겨났으며 거대한 상업시장을 형성한 지금 그 기원과 의미를 따지는 일은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힙합은 욕설이 난무하거나 폭력적인 가사를 쓸 수 있는 명분도 있었다.

이런 사회적, 역사적 과정을 망각한 채 단순히 '힙합이니까 그래도 돼', '힙합의 테두리에서 용인할 수 있는 가사'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최근 벌어진 래퍼 리치 이기가 일으킨 논란은 그래서 더 참담하다. 충분히 안전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온 19살 청년이 고작 자신의 '관종끼'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힙합과 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리치 이기의 랩 가사는 사회 비판도 저항도 아닌 저속한 어그로이자 힙합이라는 장르의 최소한의 기본조차 망각한 혐오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리치 이기에게 어떤 의도나 철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내뱉은 가사는 용인할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었다. 리치 이기의 음원에 등장하는 소아성애적 가사는 힙합이 아니라 그 어떤 장르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자의 망상'이나 다름없다..

당장 힙합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프리카 밤바타도 상습적으로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진 이후 힙합계에서 퇴출당하고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볼드모트' 취급을 받아야 했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미국 브롱크스의 상황을 대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힙합은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발버둥에서 탄생한 장르다. 힙합이 힙합으로 존재하는 한 이는 절대 바뀌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단편적인 면만 바라보면 리치 이기와 똑같은 착각과 오류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래퍼 리치 이기는 힙합의 기본 정신을 곡해하고 단순히 관심을 얻기 위해 자극 적인 가사를 써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리치 이기 소셜 미디어

한국식 라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피타입은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 데에 있어 잡(Job)이 들어간다. 굉장히 비뚤어진 가치관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힙합이 훌륭한 옵션으로 등장한다. '저 사람들은 몸에 문신도 하고, 노래에 욕도 하고, 좋은 브랜드 옷을 입는데 대학은 안 나왔어'라고 생각하는 거다.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냐"라고 지적한 바 있다.

힙합과 랩을 시작하려는 뮤지션들은 힙합이 '힙합이니까 그래도 돼'라고 착각하는 미성숙한 아이들의 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laugardagr@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