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클로즈업] SNS 시대 예능, '방송 후 전쟁'...공감 대신 설전

"리얼리티 끝나도 논란은 계속된다"…SNS가 바꾼 예능 풍경
스타 된 일반인 출연자들, 관심과 악플 사이 '위험한 줄타기'


프로그램보다 출연자의 SNS가 더 큰 화제를 모으고, 방송보다 후일담이 더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현상은 이제 낯설지 않다. 연애 리얼리티와 관찰 예능의 출연자들은 방송이 끝난 뒤에도 사실상 프로그램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커뮤니티와 숏폼 플랫폼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거대한 증폭기가 됐다. /AI 이미지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한때 예능 프로그램의 화제성은 방송 직후 시청률이나 인터넷 게시판 반응으로 가늠됐다. 출연자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도 시청자들은 방송이 보여주는 범위 안에서만 판단할 수 있었다. 논란이 생겨도 제작진의 공식 입장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연애 리얼리티와 관찰 예능의 출연자들은 방송이 끝난 뒤에도 사실상 프로그램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개인 SNS는 물론 유튜브, 라이브 방송, 숏폼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실시간으로 밝히고, 때로는 폭로전까지 벌인다. 방송에서 시작된 갈등은 온라인에서 2차, 3차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커뮤니티와 숏폼 플랫폼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거대한 증폭기가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관찰 예능 출연자들의 갈등, 사생활 논란, SNS 설전이 연예 뉴스의 중심에 선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치 않다.

프로그램보다 출연자의 SNS가 더 큰 화제를 모으고, 방송보다 후일담이 더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현상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는 단순히 예능의 변화가 아니라 콘텐츠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결과다. 시청자는 단순 관찰자가 아니다. 제작진이 구성한 이야기와 별개로 출연자들은 직접 자신의 채널을 통해 추가 서사를 생산하고, 출연자의 SNS 게시물 하나, 좋아요를 누른 흔적, 팔로우 여부, 의미심장한 문구까지도 분석 대상이 된다.

관찰예능 '나는 솔로'는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직접 자신의 채널을 통해 추가 서사를 생산하고, 출연자의 SNS 게시물 하나, 좋아요를 누른 흔적, 팔로우 여부, 의미심장한 문구까지도 분석 대상이 된다. /SBS Plus, ENA

관찰과 공감이 어느순간 진실공방, 신상털기, 인신공격 '변질'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자극을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점이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관심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출연자 개인의 감정 표현조차 콘텐츠가 되는 현실에서 누군가는 해명하고, 누군가는 반박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추가 폭로에 나서는 순환고리로 이어진다. 갈등은 부각되고, 사소한 오해는 더욱 확대된다. 시청자들은 사실관계가 확인되기 전에 이미 편을 나누고 여론 재판을 시작하고 불과 몇 분, 몇 시간 만에 전국적인 이슈로 번진다.

예능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관찰과 공감이 어느 순간 진실 공방과 신상 털기, 인신공격으로 변질되는 이유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현실을 소재로 하지만 결국 편집을 거친 콘텐츠다. 수 백 시간의 촬영 분량 중 한정된 시간 안에 일부만 방송해야하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특정 장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종종 방송에 비친 이미지 하나만으로 출연자의 인격 전체를 평가한다.

제작 환경의 변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과거 제작진은 방송 내용에 대한 주도권을 상당 부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출연자 개인 채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프로그램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급격히 확대됐다. 방송에서 설명하지 못한 내용을 출연자가 직접 공개하기도 하고, 제작진의 의도와 다른 해석이 확산되기도 한다. 방송 후 SNS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란과 갈등은 왜곡 현상을 더욱 키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짧은 영상 몇 개와 자극적인 제목만으로 특정 인물 공격 '빈번'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커졌다. 출연자 간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프로그램 브랜드 전체가 훼손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프로그램은 출연자 논란이 본편보다 더 큰 이슈가 되면서 기획 의도 자체가 흐려지는 부작용을 겪었다. 출연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마찬가지다. 악성 댓글과 온라인 괴롭힘, 과도한 사생활 침해, 허위 사실 유포는 이제 일상이 됐고, 방송 출연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한 수준의 검증과 공격이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유다.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콘텐츠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여론 형성에 참여한다. 물론 다양한 의견 개진은 건강한 문화 현상의 일부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실 확인보다 속도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짧은 영상 몇 개와 자극적인 제목만으로 특정 인물을 단정 짓고 공격하는 일이 빈번하다.

리얼리티 예능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방송은 이제 더 이상 TV 화면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 방송가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자극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신뢰의 복원이다. /AI 이미지

SNS 시대, 리얼리티 예능의 생존 해법 '지속 가능한 신뢰 복원'

감정적인 폭로나 즉흥적인 저격은 순간의 관심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 자신에게도 상처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콘텐츠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송에 등장한 인물은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다. 비판은 가능하지만 인신공격과 온라인 마녀사냥은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에 휩쓸리지 않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주목할 부분은 SNS와 숏폼 플랫폼의 등장이 리얼리티 예능의 외연을 획기적으로 넓혔지만, 방송은 이제 더 이상 TV 화면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출연자의 일상, 커뮤니티의 반응, 숏폼 콘텐츠까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 화제성은 순간이지만 상처는 오래 남는다. 제작진은 책임 있는 기획을, 출연자는 성숙한 소통을, 시청자는 균형 잡힌 수용 태도를 갖출 때 비로소 건강한 리얼리티 문화가 가능하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갈등과 논란이 높은 조회 수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복잡한 맥락보다 자극적인 한 장면이 더 많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찰과 공감에서 출발한 예능이 갈등과 폭로의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다면 결국 모두가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방송가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자극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신뢰의 복원이다. 그것이 SNS 시대, 리얼리티 예능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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