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영상인터뷰] 45년 음악인생 설운도, "아직도 나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82년 데뷔 후 45년…일본 음악수업부터 '트로트 레전드'까지
가수 겸 작곡가로, 수백 곡 히트작 만든 '한국 트로트 산역사'


가요계에서 설운도는 단순히 히트곡을 많이 가진 인기 가수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가수와 작곡가, 두 영역 모두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국내 가요계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자 트로트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상징적인 존재로 언급된다. /이상빈 기자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대한민국 트로트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설운도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단순히 히트곡을 많이 가진 인기 가수가 아니다.

가수와 작곡가, 두 영역 모두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국내 가요계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자 트로트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상징적인 존재다.

1980년대 초 데뷔 이후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의 음악은 한 세대의 추억을 넘어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 자체가 됐다.

설운도의 음악 인생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대중음악의 폭넓은 감각을 익혔고, 귀국 후에는 정통 트로트의 정서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내며 자신만의 색깔을 완성했다.

'쌈바의 여인', '사랑의 트위스트', '나침반', '원점', '보랏빛 엽서' 등 수많은 히트곡은 물론,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담아낸 '잃어버린 30년'은 시대를 기록한 국민가요로 남아 있다.

'강일홍의 스페셜영상인터뷰'에서 대한민국 트로트의 살아 있는 역사 설운도를 만나 그의 45년 음악 인생과 창작 철학, 전성기의 비하인드, 그리고 지금도 쉼 없이 새로운 노래를 만드는 이유를 직접 들어봤다. /이상빈 기자

특히 송대관, 태진아, 현철과 함께 이른바 '트로트 4대 천황'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성인가요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그는, 무대 위 스타를 넘어 창작자로서도 독보적인 족적을 남겼다. 주현미와 최진희부터 임영웅, 송가인, 장민호, 손태진, 정동원 등 세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가수들이 그의 곡을 기다리는 이유 역시 사람과 음악을 함께 담아내는 맞춤형 창작 철학 때문이다.

TV 트로트 오디션 열풍으로 장르의 저변이 크게 넓어진 지금도 설운도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후배들에게는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자 가장 곡을 받고 싶은 작곡가이고, 대중에게는 시대를 함께 걸어온 '현역 레전드'다.

최근 미국 교민 4000명을 열광시킨 공연은 국경을 넘어 그의 음악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입증했다.

<더팩트> '강일홍의 스페셜영상인터뷰'는 대한민국 트로트의 살아 있는 역사 설운도를 만나 그의 45년 음악 인생과 창작 철학, 전성기의 비하인드, 그리고 지금도 쉼 없이 새로운 노래를 만드는 이유를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트로트 레전드' 싱어송라이터 설운도 가수와 주고받은 일문 일답>

(지면 사정상 질문답변은 축약해 정리했고, 전체 내용은 약 40분 가량 진행된 영상인터뷰 전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45년 넘게 정상을 지켰습니다. 지금의 설운도를 만든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입니까?

""1983년 6월에 있었던 KBS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빼놓을 수 없죠. 우리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방송이었고, 하루 종일 국민들이 생방송을 틀어놓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이산가족분들이 만날 때마다 신곡 ‘잃어버린 30년’을 불렀어요. 계속 노래가 나오다 보니까 굉장히 빠르게 히트했고, 감동적인 장면과 겹치면서 국민들 귀에 자연스럽게 박힌 것 같습니다."

-잘나가던 시기에 왜 일본행을 결심했습니까?

"사실 유학이 아니고 일종의 야반도주였어요. ‘잃어버린 30년’으로 10대 가수가 됐지만, 다음 해 매니저에게 문제가 생기고 회사도 문을 닫으면서 혼자 서야 했어요. 방송에 얼굴이 안 나오니까 인기가 시들었다고 생각할 때였죠. 어린 나이에 우울증도 오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싶어 일본으로 피하게 됐습니다."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한 경험은 지금의 음악에 어떤 자양분이 됐습니까?

"일본은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너무 편안했어요. 한국에 있으면 방송도 보고 이야기도 듣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는데, 거기서는 다 잊고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충분히 실험할 수 있었죠. 일본의 섬세한 음악과 우리나라의 구수함을 접목해서 한국에 돌아가 새로운 설운도만의 음악을 보여주자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이건 제 가수를 떠나서 분단의 아픔을 담은 노래죠. 이 노래 때문에 북한에도 다녀왔고 판문점에 가서 철책 하나, 선 하나를 보는데 정말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그 선 하나가 수십 년간 가족을 생이별하게 하고 분단의 아픔을 만들었잖아요.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면 그때 현장이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고 늘 가슴이 찡합니다."

-80~90년대 '트로트 4대 천황' 시대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뭐 굳이 서로를 의식할 필요가 있나요. 물론 서로 장르가 다르기도 하고요. 저는 잘되는 식당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똑같은 식당이라도 잘되는 집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잖아요. 결국 손님이 많은 것도 맛이나 취향에 따른 고객의 판단이고, 가수도 자기만의 색깔과 노하우가 있는 거죠."

-가수 설운도와 작곡가 설운도, 어느 쪽이 더 어렵습니까?

"작곡가가 어렵죠. 가수는 제가 본업이고 원래 노래로 시작했으니까요. 작곡은 처음부터 한 게 아니에요. 유명한 분에게 곡을 받겠다고 1년을 기다리다 자존심도 상하고, ‘그렇다면 내가 한번 써보지’ 하고 시작했어요. 반품된 LP판을 수없이 가져와 작곡가들이 기승전결을 어떻게 만드는지 계속 들었습니다."

-후배들이 ‘설운도 곡을 꼭 받고 싶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경쟁사회에서는 딴 게 필요 없어요. 상품이 좋아야 돼요. 한 가수에게 수십 곡이 들어오는데 아무 곡이나 선택할 수 있겠어요? 여러 사람이 들어보고 좋은 곡을 고르는 거죠. 그래서 단순히 곡을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곡이 ‘이거면 되겠다’고 선택돼서 PR할 수 있는 대열에 끼었다는 것, 저는 그게 감사한 거죠."

-수백 곡을 만들었는데도 아직 작곡이 어렵습니까?

"어렵죠. 요즘은 AI 시대라 아무나 작곡할 수 있지만 저는 창작성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창작이라는 건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본인이 거기에 몰두하고 자기 느낌을 다 녹여 넣어야 하는 거거든요. 혼신을 태워 음악을 만들고, 가수가 불러주고 히트했을 때 느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직접 아날로그 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물론 ‘잃어버린 30년’은 빼놓을 수 없죠. 제 출세작이고 역사적인 노래니까요. 하지만 그다음으로는 사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예요. 이 곡은 아내를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여자는 돈보다 명예보다 사랑, 작은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잖아요. 그동안 아내에게 잘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만든 곡이고, 임영웅이라는 가수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트로트는 여러 번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트로트가 두 번 정도 큰 아픔을 겪었어요. 힘들어할 때 장윤정이라는 가수가 탄생했고 ‘어머나’가 트로트도 사랑받게 했지만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죠. 이어 박현빈이 색다른 트로트를 보여주면서 또 젊어졌어요. 그렇게 오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겼고, 트로트가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겁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 트로트 시장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무엇입니까?

"미스터트롯은 제가 볼 때 전무후무합니다.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힘들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국민들이 정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돋움했고, 스트레스 받을 때 웃음과 행복을 줬어요. 우리 가요가 활성화되고 사랑받으면서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도 생겼고, 우리 가요계가 굉장히 풍성해졌다는 점에서 저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임영웅·송가인·장민호·손태진 등 후배들을 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저는 이 후배들을 보면서 일단 우리 가요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트로트가 이렇게 존재하고 국민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또 아이돌이나 R&B, 발라드를 하던 친구들이 트로트와 접목하면서 새로운 음악이 나오고 있어요. 거기에 젊은 친구들의 좋은 비주얼과 강한 팬덤까지 더해지면서 팬층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런 걸 보면 정말 신선하죠."

-후배들에게 곡을 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음색입니까, 사람입니까?

"맞춤형입니다. 양복도 기성복이 있지만 이왕이면 자기 몸에 딱 맞게 치수를 정확하게 재서 만든 옷이 보기 좋잖아요. 곡도 똑같아요. 그냥 만들어놓은 곡을 주는 게 아니라 그 가수에게 딱 맞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가수가 어떤 음색을 갖고 있고 어떤 음악을 할 수 있는지에 맞춰서 곡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선배가 의식을 바꿔야 돼요. 먼저 다가가야지.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날처럼 훈계하고 가르치려 들면 안 됩니다. 저는 요즘 후배들을 만나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애들이 점점 가까이 와요. 자기 수준에 맞춰서 이야기하고 같이 놀아주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죠."

-최근 미국 공연에서 4000명 교민들이 열광했습니다. 해외 무대는 무엇이 다릅니까?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LA와 라스베이거스 중간쯤 되는 곳이라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나 가야 하고 날씨도 무지하게 더웠어요. 집사람하고 ‘공연장이 너무 큰데 손님이 다 올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완전히 꽉 찼어요. 너무 감사했고, 그런 분들이 환영하고 응원해주시는 걸 보니까 더 열심히 해서 저분들이 원하는 음악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5년을 노래했는데도 아직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하십니까?

"(긴장) 되죠. 이게 재미난 게 기름칠이 좀 돼야 돼요. 기계를 돌리기 전에도 기름을 약간 치잖아요. 처음에 삐그덕삐그덕하듯이 무대에 딱 올라갔을 때 처음 순간이 중요해요. 컨디션이 좋으면 그다음부터 아주 잘 넘어가는데, 잘못 삐그덕 해버리면 계속 에러가 나요. 그래서 어디를 가더라도 처음이 항상 걱정돼요."

-가장 힘들었던 슬럼프는 언제였고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84년부터 88년까지 일본에 있었던 4년간이 사실 암흑기였죠. 그런데 그 4년간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고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준 밑거름이 됐어요. 때로는 한 번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아픔이 없었다면 감사를 몰랐을 겁니다. 복귀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지만,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설운도가 생각하는 좋은 트로트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좋은 트로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활력이 되는 음악이죠. 들으면 즐겁고 뭔가 감동으로 와닿아야 해요. 음악은 듣는 사람들이 즐거워야 되고, 따라 부르기 쉽고 외우기 쉬워야 합니다. 대중가요는 결국 유행가가 돼야 해요. 누구나 따라 부르고 쉽게 들을 수 있어야 좋은 곡이고, 너무 어려우면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유행가가 되기는 어렵죠."

-지금까지 가장 잊지 못하는 무대는 언제입니까?

"국내든 해외든 40주년 공연을 꼽을 수 있어요.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는데, 공연을 앞두고 표가 생각보다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회사도 걱정하고 저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관객이 꽉 안 차면 가수는 정말 가슴 아프잖아요. 그런데 ‘아침마당’에 나가 공연을 홍보하고 그다음 날 저녁에 매진됐어요. 하루아침에 매진되는 걸 보고 너무 감사해서 그 공연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음악적 꿈이 남아 있습니까?

"K트롯이죠. 이제는 K트롯,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트로트를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K트로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젊은 작곡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의 감각에 우리 트로트를 잘 믹스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생소한 음악을 그대로 전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들의 음악에 트로트를 잘 접목하면 충분히 세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전드 설운도'라는 수식어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너무 좋습니다. 레전드 맞습니다. 제가 사실 레전드라는 말이 왜 좋냐면, 내가 그동안 이리 고생한 것을 이제서야 보답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오늘 이 순간이 있기까지 정말 피와 땀이 얼룩진 고생을 했거든요. 그래서 요즘 들어서는 ‘충분히 내가 이런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CF에서 나온 ‘장카설유’는 어떤 의미입니까?

"장카설유는 장기하, 카더가든, 설운도, 유병재 이렇게 네 명이 찍은 거예요. 카리나도 함께 참여했고요. 젊은 층들이 상당히 좋아하고 조회수도 많이 나와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좀 생뚱맞은 사람이죠. 그런데 젊은 사람들과 호흡하고 공유하면서 트로트라는 장르가 젊은 친구들에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제가 나온 거예요."

-45년간 한결같이 사랑해주신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레전드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까지 여러 가지로, 또 물심양면으로 큰 사랑을 주신 모든 분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트로트 선배로서 앞으로도 이 트로트가 더 사랑받을 수 있도록 저도 한 힘을 보태겠습니다. 좋은 후배들이 더 많이 탄생해서 우리 가요가 오래오래 풍성하게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만 좋아하지 마시고 우리 선배들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마무리) 네, 오늘 이렇게 모시고 많은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한때는 트로트 4대 천황으로, 경쟁보다는 함께 시장을 키웠던 동료들이었죠. 송대관 현철 씨는 고인이 되셨고, 트로트 오디션 활성화 이후론 레전드로서 유일하게 젊은 후배가수들과 협업하며 열정을 이끌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얼마전 미국 교민초청 공연에서도 엄청난 현지 열기를 내뿜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이 있는 가수로 거듭 익어가는 설운도 가수님을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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