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세계, 두 개의 불꽃이 쏘아 올린 '하나의 조화(Armonia)' [박순규의 창]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7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산 시로 스타디움에서 개회식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밀라노=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이탈리아의 밤하늘에 다시금 성화가 타올랐다. 2006년 토리노의 겨울 이후 20년 만이다. 하지만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마주한 세상의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한국 시간으로 7일 오전 막을 올린 이번 대회의 개회식 주제는 '아르모니아(Armonia, 조화)'였다. 400km나 떨어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 두 도시에서 동시에 성화가 점화된 사상 초유의 '이원 생중계' 개회식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은유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장소를 기술과 마음으로 잇는다는 이 설정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인류가 처한 가장 아픈 지점인 '단절'을 치유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신냉전'의 빙판 위에 선 올림픽

이번 동계올림픽은 문자 그대로 '혹한' 속에서 열린다.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 정세라는 기후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경제와 안보를 넘어 전방위적인 체제 대결로 치닫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여전히 유럽 대륙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국지적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시기에 열리는 올림픽은 자칫 무력해 보일 수 있다. 총성이 빗발치는 현실 앞에서 스포츠가 외치는 평화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이번 대회가 던지는 '조화'와 '연대'의 메시지는 더욱 절박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92개 참가국 가운데 22번째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산 시로 스타디움에 들어서고 있는 대한민국 선수단./밀라노=AP.뉴시스

◆대한민국 선수단이 보여준 '따로 또 같이'의 미학

이러한 시대적 화두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92개 참가국 중 22번째로 산 시로 스타디움에 들어선 한국 선수단은 이번 올림픽의 독특한 운영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피겨스케이팅의 간판 차준환과 스피드스케이팅의 박지우가 공동 기수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앞장섰지만, 우리 선수단 50명(선수 35명, 임원 15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빙상 종목이 열리는 밀라노에 21명, 설상 종목의 코르티나담페초에 14명, 리비뇨에 12명, 프레다초에 3명 등 선수단은 무려 4개 지역으로 흩어져 개회식에 참여했다.

물리적으로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같은 단복을 입고 같은 국기를 가슴에 품은 채 동시에 입장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화면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우리 선수들의 모습은 "우리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과 목표는 하나로 묶일 수 있다"는 '연대'의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냈다. 이는 분열된 국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따로 또 같이'의 공존 모델을 보여주는 듯했다.

◆얼음 위에서 피어나는 평화의 가능성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의 분산 개최는 당초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실용적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떨어짐'은 현재의 분열된 세계상을 반영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희망을 제시한다.

개막식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과 오페라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선수단이 기술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단일 공식 명칭에 두 개의 지명을 병기하고, 두 곳의 성화대에서 동시에 불꽃을 피어올린 것은 획일적인 통합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위치를 지키면서도 같은 불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다름의 인정'이다.

스포츠는 만국 공통어다. 0.01초의 승부 앞에서 이념은 힘을 잃고,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의 땀방울 앞에서는 국경이 희미해진다. 앞으로 17일간, 대한민국 선수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청춘들은 정치적 셈법이 아닌 공정한 규칙 아래서 경쟁하고 화합할 것이다.

◆진정한 '아르모니아'를 향하여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가 산 시로 스타디움을 채우고,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펼쳐졌던 개회식의 밤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진정한 축제는 폐회식 성화가 꺼진 뒤에도 그 온기가 세상에 남아있을 때 완성된다.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리비뇨, 프레다초 등 곳곳에 흩어져 땀 흘릴 우리 대한민국 선수단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그들이 쏘아 올린 열정과 두 도시의 성화 불꽃이, 차갑게 식어버린 국제 사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불씨가 되길 바란다. 분열된 도시를 잇고, 흩어진 선수단을 마음으로 잇고, 마침내 갈라진 세계를 잇는 것. 그것이 이번 동계올림픽이 완성해야 할 진정한 금메달의 가치일 것이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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