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퍼펙트' 깬 최지훈 '번트'...불문율이 아닌 두 가지 이유 [김대호의 야구생각]

6회초 0-1 상황서 '불문율' 성립할까
한화 벤치의 안일한 대응이 더 문제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4월 30일 류현진의 퍼펙트 행진 중단과 관련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뉴시스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불문율'은 룰북에는 없는 암묵적인 규칙을 일컫는다. 상대에 대한 예의, 존중, 배려를 담고 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야구에 유독 ‘불문율’이 많은 이유는 ‘하드 볼’의 위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공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상대가 신사도를 지키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보복으로 이어진다.

메이저리그에선 고의든 실수든 몸에 맞는 공을 던지면 반드시 보복을 당한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을 때 도루나 번트를 시도하는 건 ‘전쟁’을 부르는 행동이다. 홈런 후 ‘빠던’(방망이를 던지는 행위)도 금지다. 퍼펙트게임이 진행 중일 때 기습번트를 시도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지난 4월 30일 대전 SSG 랜더스와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이 장면이 연출됐다. 한화 선발 투수 류현진은 5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1루에 내보내지 않았다. 6회초 SSG 선두 타자 최지훈이 류현진의 초구에 기습번트를 댔다. 타구는 3루수와 포수 사이에 절묘하게 떨어졌고, 최지훈은 1루에 세이프됐다. 내야 안타로 기록됐다. 류현진의 퍼펙트 행진이 허무하게 끝났다. 그 뒤 류현진은 무너졌다. 6회 초 투 아웃을 잡는 사이 6피안타, 2볼넷, 6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SSG는 이 경기를 14-3으로 이겼다.

한화 이글스 류현진은 4월30일 SSG 랜더스전서 5회까지 퍼펙트 행진을 벌이다 6회초 최지훈의 기습번트 이후 무너졌다. /뉴시스

다음 날 김경문 한화 감독은 "한국과 미국 야구는 차이가 있다"고 전제한 뒤 "퍼펙트 게임이나 노히트 같은 대기록이 나올 때 미국에선 번트를 대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의 경기를 김 감독의 일반적 ‘불문율’로 보기에 마땅치 않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당시 경기가 고작 6회 초였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최소한 8회나 9회가 됐어야 한다. 이제 중반전에 접어든 상황에서 상대 대기록을 위해 다양한 출루 수단을 포기하는 게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 감독의 생각이 맞다면 최지훈은 볼넷을 골라도 안된다.

둘째, 스코어가 한 점 차란 사실이다. 5회까지 한화가 1-0으로 앞서 있었다. 스코어가 7~8점 차로 크게 벌어진 상태에서 최지훈이 기습번트를 시도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상대 투수의 기록을 위해 승부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한화 벤치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는 게 맞다. 6회초 1-0에서 상대 선두 타자가 발 빠른 최지훈이라면 얼마든지 기습번트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화 내야진은 이에 대비하지 않았다.

SSG 랜더스 최지훈은 빠른 발을 자랑하는 선수다. 최지훈이 4월30일 한화 이글스전서 퍼펙트 행진 중이던 한화 선발 류현진을 기습번트로 무너뜨렸다. /뉴시스

‘불문율’은 과거의 전통이다. 현재의 변화와 충돌하기도 한다. ‘불문율’도 주어진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스포츠의 기본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페어플레이’다. 6회초 0-1로 뒤진 SSG의 최지훈이 기습번트를 시도한 게 페어플레이를 위반한 건 아니다.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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