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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어렵고 힘든 경기를 잘 치러냈다. 결과도 만족스럽거니와, 이날 거둔 2-1 역전승의 무게감은 향후 2026 북중미 월드컵 여정을 이어갈 대표팀에 거대한 자신감이자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이다.
월드컵 첫 경기는 언제나 가혹하다. 심리적으로나 신경적으로나 짓눌리는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12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체코와 A조 1차전에서 가뜩이나 경기를 지배하고도 정작 골이 터지지 않아 전반을 소득 없이 마쳤을 때, 그리고 경기 후반 상대에게 먼저 선제골을 허용했을 때의 절망감은 주저앉기 충분한 조건이다.
후반 초반, 체코 블라디미르 초우팔의 롱스로인에 이은 헤딩 실점은 지배하던 경기의 주도권을 통째로 내줄 뻔한 치명적인 순간으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에게 큰 허무함을 안겼을 법하다. 이처럼 심리적, 물리적으로 한계에 몰린 상황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는 사실은, 한국 축구의 체질과 저력이 한층 단단해졌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승리의 환호속에서도 뒤에서 순식간에 달려드는 장신 라디슬라프 크레이치를 노마크로 놓친 장면은 향후 수비 전술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오점이다.

◆ 조심스러웠던 전반, '측면 봉쇄'로 지워버린 체코의 무기
이날 경기는 양 팀 모두 적극적인 공세보다는 수비에 무게를 둔 안정적인 운영을 택하면서 전반전에는 이렇다 할 결정적 장면이 많지 않았다. 두 팀 모두 수비 라인을 뒤로 내린 채 후방에서 전방으로 롱킥을 투입해 상대 진영에서 진흙탕 싸움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전술적 기조는 유사했다.
다만 디테일이 달랐다. 체코는 압도적인 높이와 힘을 앞세운 공중볼 경합에 치중한 반면, 한국은 체코 수비의 배후 공간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진 패스에 무게를 뒀다.
다행히 한국 수비진은 영리한 위치 선정을 통해 공중볼 경합에서 큰 위기를 맞지 않았다. 여기에는 체코 빌드업의 핵심인 오른쪽 윙백 초우팔을 이태석과 이재성이 유기적으로 꽁꽁 묶어놓은 공이 컸다. 초우팔의 발과 크로스가 봉쇄되자, 체코 공격의 핵인 파트리크 시크, 루카시 슐츠, 루카시 프로보드의 존재감은 피치 위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왼쪽 측면에 수비력이 뛰어난 이태석을 과감히 배치한 홍명보 감독의 용병술이 완벽히 적중한 셈이다.

◆ 고립된 손흥민, 분위기를 바꾼 오현규라는 '크랙'
공격 진영에서는 손흥민이 몇 차례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었으나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거나 골포스트를 살짝 빗나가는 등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손흥민을 활용해 수비 뒷공간을 부수는 전략은 좋았지만,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침투하며 시선을 분산해 주는 동료들의 지원이 부족했다. 결국 손흥민이 상대 수비수들 사이에 고립되는 상황이 잦아졌고, 외로운 싸움 속에 슈팅의 밀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함께 쇄도하며 상대 수비진의 간격을 벌려줄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전방에서 홀로 고군분투한 탓에 손흥민의 체력 소모는 극심했고, 이는 후반 들어 볼 터치가 길어지는 등 컨디션 난조로 이어졌다. 이때 1-1 균형을 만든 상황에서 손흥민을 과감히 빼고 오현규를 투입한 홍명보 감독의 결단은 옳았다.
골에 굶주려 있던 오현규는 단숨에 경기장의 공기를 바꾸며 체코 수비진에 균열을 냈다. 황인범이 오른쪽에서 찔러준 빠른 크로스를 골마우스 왼쪽에서 왼발로 툭 돌려놓아 골망을 흔든 장면은, 전문 스트라이커로서의 타고난 야성과 천성을 그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 중원의 지배자 황인범, 그리고 승리를 조율한 '마에스트로' 이강인
이날 황인범은 뒤지던 후반 22분 경기의 균형을 맞춘 주인공이자 대표팀이 터뜨린 두 골 모두에 결정적으로 관여하며 왜 자신이 한국 축구 중원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인지를 여실히 입증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승리를 막후에서 지휘한 최고의 연주자를 꼽자면, 이강인의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공간 패스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황인범의 첫 골 역시 상대 수비의 허점을 찌르며 침투하는 황인범의 발끝에 정확히 배달된 이강인의 킬러 패스로부터 시작됐다. 경기 내내 템포를 조율하며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흔들 수 있게 만든 핵심 원동력이 바로 이강인이었다.
◆ '무승 낙인'을 벗은 홍명보,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쏜 오현규
월드컵 첫 경기 역전승. 이 자체만으로도 대표팀이 거둔 수확은 막대하다. 하지만 이번 승리가 더욱 뜻깊은 이유는 두 가지 서사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첫째는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무승으로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홍명보 감독이 마침내 월드컵 무대 4경기 만에 첫 승리를 신고하며 오랜 '무승 낙인'을 씻어냈다는 점이다. 둘째는 차세대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오현규가 자신의 월드컵 데뷔전에서 보란 듯이 데뷔골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이번 승리가 한국 축구의 기운을 다시금 세차게 살려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편, 우리의 다음 상대인 멕시코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2-0으로 꺾고 첫 승을 신고했다. 멕시코 특유의 강한 압박과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는 역시 수준급이었지만, 우려했던 것만큼 압도적인 전력은 아니었다. 충분히 부딪쳐볼 만한 상대다.
우리가 첫 경기에서 보여준 다소 조심스러운 운영에서 벗어나 패스 플레이의 속도감과 템포를 한 단계만 더 끌어올린다면, 다가올 2차전 맞대결에서 최소 무승부, 나아가 승리까지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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