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와이어
봉화에서 실험한 관광, 미래 전략으로… ‘2026 Better里’ 중간간담회 성료

더팩트

[더팩트 | 박순규 기자] 광복절 아침, 한국과 일본 야구를 잇는 한 시대가 저물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단 하나뿐인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오전 6시41분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에서 뇌출혈로 치료받던 중 별세했다. 향년 83세.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에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타율 0.412라는 숫자를 남긴 지 44년 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삶을 닮은 승부였다.
백 전 감독은 전날인 14일 오전 6시께 천안 거주지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한때 숨이 멎은 것으로 전해져 별세 소식까지 알려졌지만, 이후 희미하게 맥박과 호흡이 돌아왔다. 평소 정기검진을 받던 단국대병원으로 다시 이송된 그는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사투를 이어갔다. 14일 밤에는 혈압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면서 한 가닥 희망을 안겼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광복절 아침 눈을 감았다.

평생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백인천다운 마지막 하루였다.
고인의 야구 인생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야구사의 한 페이지였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후 가족과 함께 한반도로 돌아왔고, 이후 서울에서 성장했다. 경동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 능력을 인정받았고 농협을 거쳐 1962년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했다. 훗날 니혼햄 파이터스가 되는 구단이다. 당시 한국 선수가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 프로무대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백인천은 그 길을 몸으로 뚫은 선구자였다.
말도, 음식도, 야구 환경도 낯선 일본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포수로 시작해 외야수로 전향했고 강한 손목과 빠른 발, 무엇보다 지기 싫어하는 승부근성을 앞세워 정상급 타자로 성장했다. 1975년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유니폼을 입고 타율 0.319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른 것은 그의 일본 생활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한국인 타자가 일본프로야구 타격 정상에 선 것이다. 이후 롯데 오리온스와 긴테쓰 버펄로스 등을 거치며 일본 무대를 누빈 그는 1981년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가 탄생했다.
0.412.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나선 백인천은 71경기에서 250타수 103안타를 때려 타율 0.412를 기록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다시 밟지 못한 KBO리그의 ‘금단의 영역’이다.
당시 마흔을 바라보던 베테랑이 갓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보여준 화끈한 타격은 야구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한국프로야구의 첫 페이지에 ‘4할’이라는 강렬한 숫자를 새긴 그는 단순한 기록 보유자를 넘어 초창기 프로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뿌리내리는 데 힘을 보탠 개척자였다.

지도자로서도 굵은 족적을 남겼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출범한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을 맡은 그는 창단 첫해 곧바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혼(魂)의 야구’, ‘투혼의 야구’를 강조한 그의 지도 철학은 강렬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지휘봉을 잡았고 여러 구단에서 타격 지도자로 후배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화려했던 그라운드의 삶과 달리 말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그래서 그를 아는 야구인들은 백인천을 단순한 ‘4할 타자’보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승부사로 기억한다. 고인과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도 그를 "목숨을 걸고 싸운 진정한 승부사"로 회고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마지막 날은 광복절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왔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인 야구선수의 가능성을 증명한 뒤 다시 돌아와 한국프로야구 출범의 한복판에 섰던 인생. 백인천의 83년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한일 야구 교류의 역사를 함께 품고 있었다.
KBO는 한국 야구 발전에 헌신한 고인의 공적을 기려 장례를 KBO장으로 치른다. KBO가 주관하는 장례는 이용일 전 KBO 초대 사무총장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발인은 17일 오전으로 예정됐다.
백인천이 남긴 수많은 기록 가운데 가장 빛나는 숫자는 물론 0.412다.
그러나 그 숫자만으로 그의 야구 인생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본으로 가는 길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국경을 넘어 도전했고, 마흔을 앞둔 나이에 고국으로 돌아와 신생 프로야구의 불씨를 지폈으며, 지도자로 다시 정상에 섰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한 차례 멎었던 맥박을 되살려 하루를 더 싸웠다.
한국프로야구의 ‘불멸의 4할’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승부사였다.

관심 없음
{카테고리}에 관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