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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전북 현대의 18세 신예 김예건이 세르비아 명문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향했다. 지난달 충남아산의 19세 윙어 박시후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아로카로 이적한 데 이어, K리그 10대 '영건'들의 유럽 1부 무대 직행 행진이 또 한 번 물꼬를 튼 셈이다.
10대 후반의 어린 선수가 K리그 성인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한 뒤 유럽으로 직행하는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양민혁(토트넘), 윤도영(브라이튼), 박승수(뉴캐슬) 등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또래 선수들의 흐름에 김예건과 박시후가 합류하면서, 한국 축구 유망주들의 유럽 진출 경로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김예건의 즈베즈다행이 특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어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K리그에서 성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뒤 유럽으로 향했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 축구 유망주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올 시즌부터 달라진 K리그의 U-22 제도가 있다.

◆ ‘출전 보장’에서 ‘경쟁’으로
K리그의 U-22 제도는 어린 선수들에게 성인 무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유망주들이 프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U-22 선수의 출전 여부와 교체 가능 인원이 연동되면서 어린 선수를 선발로 내보낸 뒤 이른 시간에 교체하는 운영이 발생했고, 제도의 취지와 실제 경기 운영 사이에 간극이 생겼다.
2026시즌 K리그1은 이 같은 구조를 손질했다. U-22 선수의 출전 여부와 관계없이 5명 교체가 가능하도록 하면서 U-22 출전과 교체 카드의 연동을 없앴다. 다만 20명 엔트리에 U-22 선수 2명을 포함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유지했다. 반면 K리그2는 지난해까지 U-22 선수가 선발로 나서지 않으면 교체 가능 인원이 2명까지 줄어드는 의무출전제도를 유지했지만, 올해부터는 이를 완화해 U-22 출전 방식에 따라 3~5명의 교체가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U-22 제도가 완전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주어지던 출전 기회 보장 방식은 크게 완화됐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이제 특히 K리그1에서 어린 선수들은 과거보다 더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출전 기회를 보장받는 폭은 줄었지만, 반대로 경기력을 인정받은 유망주에게는 나이에 관계없이 더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
결국 중요한 것은 ‘U-22 선수인가’가 아니라 ‘경기장에서 계속 뛸 만한 선수인가’라는 질문이다.

◆ 보호막을 걷어내자 오히려 선명해진 영건들
물론 제도 변화만으로 유스 생태계의 성공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어린 선수에게 단순히 출전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성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쟁취하도록 만드는 육성 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2026시즌 K리그 그라운드에서는 경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눈에 띈다. 광주FC의 문민서는 2004년생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중원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7월에는 5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이달의 영플레이어상까지 거머쥐었다.
같은 또래 전북 현대의 강상윤 역시 일찌감치 성인 무대 경험을 쌓으며 중원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2005년생 수원FC의 하정우도 외국인 공격수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여기에 또 한명의 2005년생 부천FC의 성예건과 2007년생 FC서울의 미드필더 손정범 등도 각자의 자리에서 1군 경쟁력을 보여주며 K리그 영건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어리다는 이유로 경기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도 경기장에서 경쟁할 만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유스 육성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출전 숫자를 채우기 위한 유망주가 아니라, 1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수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선수가 K리그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무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 준프로 제도가 만든 ‘10대 프로’의 길
여기에 준프로 제도의 활성화도 빼놓을 수 없다. 고교 재학 중에도 K리그 1군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유망주들이 연령별 유스팀에서 단계적으로 성장한 뒤 성인 무대로 올라가는 기존의 경로도 달라지고 있다.
박시후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충남아산은 2025년 당시 신평고 3학년이던 박시후와 구단 최초로 준프로 계약을 체결했고, 박시후는 데뷔 첫해 K리그2 9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입증한 뒤 올해 포르투갈 1부리그 아로카로 이적했다.
박시후 사례가 준프로 제도가 유럽 진출의 새로운 경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김예건의 성장 과정은 그 가능성을 한층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주영생고 3학년인 김예건은 지난 3월 전북 현대와 준프로 계약을 맺은 뒤 7월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두 경기 만에 데뷔골까지 터뜨렸다. 이어 고교 재학 중 정식 프로 계약으로 전환되며 전북 구단 역사상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양민혁의 사례에 이어, 고교 유망주가 준프로 계약을 통해 성인 무대를 경험하고, 경기력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한 뒤 정식 프로로 올라서는 길이 실제 커리어 경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 축구 유스 시스템에도 중요한 변화를 요구한다. 단순히 연령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7~18세부터 성인 축구의 속도와 압박, 피지컬, 전술적 요구를 견뎌낼 수 있는 선수를 얼마나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 유럽은 어린 선수를 찾고, 선수는 ‘성장할 곳’을 찾는다
유럽 구단들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K리그에서 수년간 성인 무대 경험을 쌓은 20대 초중반 선수가 주요 영입 대상이었다면, 최근에는 10대 후반의 유망주를 일찍 확보해 자신들의 육성 시스템 안에서 성장시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어린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다. K리그가 유럽 진출을 위한 발판을 넘어, 유럽 구단이 주목하는 첫 번째 성인 무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가 늘어난 만큼 선수들의 선택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김예건의 즈베즈다행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예건의 선택은 ‘이름값’보다 ‘성장 경로’를 택한 결정에 가깝다. 맨체스터 시티와 바르셀로나 등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당장의 화려함보다 자신이 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했다. 그는 즈베즈다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잘 맞는 팀이라고 설명하면서, 유럽 무대에 적응하는 동시에 향후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유럽 구단은 어린 선수를 일찍 확보하려 하고, 선수는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줄 무대를 선택한다. 과거처럼 ‘어느 유럽 구단에 가느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뛰며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느냐’가 유럽 진출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빅클럽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
최근 어린 선수들의 유럽 진출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이런 변화가 감지된다. 양민혁과 박승수, 윤도영 등 앞선 사례들이 던지는 교훈도 결국 여기에 있다. 유럽에서는 어느 클럽의 유니폼을 입었느냐만큼이나 어디에서 얼마나 뛰며 성장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빅클럽이라는 이름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1군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거나 임대를 반복하는 것보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성인 무대에서 꾸준히 뛰며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선수의 성장에는 더 중요할 수 있다.
김예건의 선택 역시 그런 현실적인 판단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더 이상 ‘유럽에 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로까지 계산하는 어린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 K리그의 새로운 역할, ‘최종 목적지’가 아닌 ‘도약대’
이 변화가 제대로 정착한다면 K리그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유망주를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 선수를 성인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시켜 더 큰 무대로 연결하는 ‘도약대’가 되는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도 유망주를 육성해 유럽 진출 선수로 키워내는 일은 경기력뿐만 아니라 미래의 경제적 자산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어린 시절 선수를 등록하고 육성한 구단은 해당 선수가 훗날 요건을 충족하는 국제 이적을 할 경우, 새 구단이 부담하는 FIFA ‘연대기여금’의 일부를 배분받을 수 있다. 유망주가 더 큰 무대로 떠나는 것이 반드시 구단의 손실만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다. 선수를 발굴하고 성장시킨 과정이 경기력과 이적시장에서의 가치, 그리고 일정한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K리그의 유망주 육성 방식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10대 선수를 무조건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K리그에서 성인 무대의 경쟁력을 키운 뒤 더 큰 무대로 진출시키는 것까지 육성의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K리그가 10대 유망주에게 유럽 진출을 위한 실전 경험을 제공하고, 세계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다.
김예건의 세르비아행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18세의 선수가 K리그에서 성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유럽으로 향했다. 이제 한국 축구가 만들어가야 할 다음 단계는 단순히 ‘유럽에 보내는 선수’가 아니라 ‘유럽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선수’를 키우는 것이다.
K리그가 유망주의 종착지가 아닌 세계무대를 향한 출발점이 될 때, 한국 축구의 유스 시스템도 비로소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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