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대신 카드로 답하는 심판들...피치 위에 '소통'은 없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설명 대신 경고, 대화 대신 제재…불신 키우는 심판들 현장 대응
선수를 통제 대상으로 볼 때, 심판의 권위는 권위주의로 변한다


지난달 30일 인천과 전북현대전 주심을 본 김대용 심판(왼쪽서 여섯번째)이 인천 윤정환 감독(왼쪽서 다섯번째)의 항의를 무시한 채 지나가고 있다. 김 주심은 이어 항의를 표한 인천 코치진 두명에게 옐로카드를 들어보인 뒤 심판실로 향했다./ 인천=K리그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우리나라에서는 경기에 지면 심판을 욕하기 때문에 심판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한국 축구가 16년 동안 월드컵 무대에 주심 한 명 배출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문진희 전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 한달여 전 국회 청문회에서 내놓은 답변이다. 판정 논란과 행정 부실의 원인을 외부의 비난 탓으로 돌리는 이 한마디는, 현재 한국 심판계가 안고 있는 왜곡된 인식과 고질적인 피해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늘날 심판들이 피치 위에서 겪는 불신의 비극은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닌, 일부 심판들의 태도가 스스로 불신을 키운 측면이 크다.

그동안 현장이 심판에게 요구해 온 덕목은 거창하지 않다. 균형 잡힌 잣대로 적용하는 '일관성', 그리고 필요한 순간 판정의 취지와 근거를 전달하는 '소통'이다. 오심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일한 기준으로 판정하고 필요한 순간 판정의 취지와 근거를 설명하는 것은 심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일부 심판의 현장 대응에서는 이 같은 소통의 원칙보다 권위를 지키려는 태도가 먼저 드러난다.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정당한 판정 근거 요구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소통의 문은 닫히고 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소통해야 할 때 카드가 먼저 나오는 순간, 카드는 규칙을 집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권위를 과시하는 무기로 변질된다. 지난달 30일 인천-전북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인천의 득점 기회 때 인천 김건희와 전북 박지수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충돌했고 김건희가 넘어졌다. 인천 선수들이 강하게 어필했지만, 심판은 VAR 없이 그대로 경기를 종료했다. 판정의 근거를 설명할 기회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항의와 카드 뿐이었다.

1일 K리그2 충북청주-수원삼성전 종료직전 터진 수원 두비츠카스의 헤딩골이 파울로 취소되자 수원선수들이 주심에게 달려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항의하고 있다./ 청주=K리그

지난달 1일 K리그2 수원삼성-충북청주FC전에서도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수원 두비츠카스의 역전골이 갑자기 공격자 파울로 번복돼 득점이 취소됐다. 수원 선수단과 관중의 항의에도 심판은 VAR 없이 경기를 종료했고, 경기 종료 후 항의하는 선수들을 말리고 상황을 수습하러 온 구단 관계자에게 레드카드를 내미는 황당한 장면까지 벌어졌다. 소통도, 일관성도 없는 독선이 권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현장이었다.

이 같은 불통과 권위적인 태도가 특정 심판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열린 WK리그 수원FC 위민-서울시청전에서는 수원의 포워드 지소연 선수를 둘러싼 주심의 부적절한 발언이 논란이 됐다. 지소연은 주심이 VAR실과 교신하며 자신을 두고 "예민하다. 걸스데이인가 보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그 내용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설명이 아니라 옐로카드였다. 심판의 이러한 행태는 단순한 판정 논란을 넘어 선수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과연 이것을 단순한 개인의 실수나 부적절한 발언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지난달 28일 열린 WK리그 수원FC위민-서울시청전 경기도중 지소연을 둘러싼 심핀진의 부적절한 발언 논란에 대해 항의하는 수원 벤치를 향해 주심이 옐로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한국여자축구연맹 유튜브 중계화면 캡처

지난달 22일 전북현대-울산HD전에서 벌어진 이승우와 김현석 감독의 거친 언쟁을 둘러싸고, 심판진 가운데 한 명이 이승우를 두고 "원래 저런 애"라는 식의 뒷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현장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심판과 선수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심판에게 필요한 것은 선수에 대한 호불호나 선입견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객관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카드의 숫자나 개별 판정 하나가 아니다. 선수를 경기의 동반자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심판의 인식에 있다.

심판과 선수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한쪽은 판정을 내리고 다른 한쪽은 그 판정에 복종하는 상하관계도 아니다. 같은 경기를 완성하는 동등한 경기 구성원이다.

그렇다면 심판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선수가 심판을 존중하는 이유는 심판의 손에 카드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카드가 공정한 규칙에 따라 사용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카드로 위협하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권위가 아니라 저급한 '권위주의'에 불과하다.

진정한 권위는 위력이나 강제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호 존중과 배려, 그리고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한 전문성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법이다. 카드를 무기 삼아 선수 위에 군림하고 소통의 문을 닫아버리는 심판에게는 프로 무대가 요구하는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다. 심판들이 권력이라는 환상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공정한 규칙 집행자'로 재정의하지 않는 한, 피치 위에서 심판을 향한 불신과 야유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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