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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박순규 기자] 사람의 인생을 숫자로 설명할 수 있을까. '59'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하다. 한 골, 또 한 골을 더해 만들어진 기록이다. 하지만 2026년 10월 6일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손흥민(34·LAFC)이 기록한 A매치 59번째 골은 그렇게 단순하게 셀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한 소년이 청년이 되고, 다시 한 나라의 축구대표팀 주장이 되기까지 견뎌온 15년의 시간이 들어 있다.
전반 6분이었다. 손흥민은 우즈베키스탄 진영 페널티아크 부근에서 자신이 얻어낸 프리킥 앞에 섰다. 숨을 고르고 골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른발을 휘둘렀다. 공은 낮고 빠르게 골문 오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손흥민의 A매치 151번째 경기에서 나온 59번째 골. 한국 축구의 오랜 상징이었던 차범근의 58골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크게 웃었다. 동료들이 달려와 그를 껴안았다.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문득 생각하게 된다. 저 한 골을 넣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괴뇌하며 견뎠을까.
손흥민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것은 2010년 12월 30일이었다. 열여덟 살이었다. 아직 얼굴에는 소년티가 남아 있었다. 이듬해 1월 18일 아시안컵 인도전에서 첫 A매치 골을 넣었다. 당시만 해도 누구도 그 소년이 15년여 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세계 최고의 프로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라는 영광을 줬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알릴 기회도 줬다. '우리는 손흥민 보유국'이라는 자부심도 팬들에게 안겼다. 월드컵 본선을 네 차례 밟았고 수많은 골과 승리를 경험했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선물만 주지는 않는다. 월드컵에서의 좌절도 있었고, 아시안컵에서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아픔도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 골을 넣지 못하면 가장 먼저 비판받았고, 대표팀이 흔들리면 주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주장은 승리할 때는 동료보다 한발 뒤에 서고, 패배할 때는 가장 앞에 서야 하는 자리다. 손흥민 역시 그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고개를 숙였던 날도 많았다.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때로는 부상당한 몸으로 대표팀에 합류했고, 유럽에서 수천㎞를 날아와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15년이다. 그래서 59골 가운데 어느 하나도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오른발 38골, 왼발 17골, 헤더 4골. 오픈플레이 39골, 직접 프리킥 9골, 페널티킥 11골. 그래서 그는 말했다. 어느 한 골이 더 중요한 골은 없다고. 그래도 59호골은 다르지 않냐고 진행 아나운서가 감회를 묻자 그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모든 골이 다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숫자를 만든 과정은 뜨겁다. 59개의 골 뒤에는 수천 번의 슈팅 훈련이 있었을 것이고, 수없이 반복한 질주와 넘어짐, 부상과 재활이 있었을 것이다. 골을 넣은 날보다 골을 넣지 못한 날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쉽게 잊는다.
스포츠의 기록은 성공의 역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패를 견뎌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장에 가깝다. 미국 농구의 전설 마이클 조던은 생전에 자신이 수천 개의 슛을 놓쳤고 수많은 경기에서 패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흥민의 59골도 마찬가지다. 골을 넣은 59번보다 골을 넣지 못했던 훨씬 많은 경기들이 지금의 기록을 만들었다. 최근 손흥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붙는다.
34세. 유럽을 떠나 미국 MLS로 무대를 옮긴 뒤부터 '에이징 커브'라는 단어가 그의 이름 뒤에 붙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대표팀에서 뛰어야 하는지, 주장 완장을 계속 차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생겼다.
세월 앞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20대의 손흥민이 보여주던 폭발적인 스피드가 영원할 수는 없다. 그의 축구 인생 역시 어느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갈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속도가 줄어드는 대신 깊이가 생기는 시간이 있다.
젊은 시절의 손흥민이 상대 수비를 질주로 무너뜨리는 선수였다면 지금의 손흥민에게는 수많은 승부를 거치며 얻은 감각과 경험이 있다. 고사성어 '노마지지(老馬之智)'가 떠오르는 이유다. '늙은 말은 길을 안다'는 뜻이다. 젊은 말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수많은 길을 걸어본 말은 어느 길이 위험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다.

지금 한국 축구에서 손흥민의 가치는 단순히 골을 넣는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 부임 이후 치른 4경기에서 손흥민은 3골을 넣었다. 에콰도르전, 우루과이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골을 기록했다.
여전히 가장 확실한 해결사다. 그러나 이제 손흥민에게는 또 하나의 역할이 생기고 있다. 이강인과 오현규, 오세훈, 김민수 등 다음 세대가 대표팀의 중심으로 성장할 때 그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일이다.
손흥민은 수많은 길을 먼저 걸었다. 유럽 무대의 외로움도 알고, 월드컵의 압박도 알고, 주장 완장의 무게도 안다. 골을 넣었을 때 쏟아지는 환호뿐 아니라 골을 넣지 못했을 때 날아오는 비난까지 경험했다.
그 경험은 기록만큼이나 귀한 한국 축구의 자산이다. 그렇다고 한국 축구가 손흥민에게 계속 기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손흥민의 위대함을 존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짐을 다시 그의 어깨에 올리는 것이 아니다.
모레노 감독이 해야 할 일도 여기에 있다. 손흥민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정력과 경험이 팀 안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손흥민이 없는 한국 축구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세대교체다. 세대교체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을 밀어내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경험과 책임을 건네주는 과정이다. 그래서 손흥민의 59번째 골은 어쩌면 기록의 완성이 아니라 계승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누구의 기록을 좇지 않는다. 앞으로 넣는 한 골, 한 골이 모두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가 된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역시 대표팀 유니폼을 벗을 것이다. 그날이 왔을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마 59라는 숫자만은 아닐 것이다.
부상 속에서도 대표팀에 왔던 시간, 패배 뒤 가장 먼저 고개를 숙였던 주장, 후배를 다독이고 다시 그라운드로 나섰던 모습까지 함께 기억될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남긴 숫자보다 자신이 견뎌낸 시간으로 평가받는다. 2026년 10월 6일 손흥민이 만든 59번째 골은 그래서 특별하다.
차범근을 넘어섰기 때문만이 아니다. 열여덟 살 소년이 서른네 살의 주장으로 있을 때까지, 환호와 비난 사이에서 태극마크의 무게를 견디며 걸어온 15년 9개월의 시간이 마침내 하나의 숫자로 응축됐기 때문이다.
그 숫자 뒤에는 골보다 훨씬 많은 눈물과 땀, 좌절과 책임이 있다. 그래서 이날 손흥민이 세운 것은 단순한 최다득점 기록이 아니다. 한 시대를 버텨낸 한 축구인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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