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여름을 알리는 주황빛…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만 심었다는 한국 꽃

7월 골목길을 걷다 보면 담장 위로 주황빛 꽃송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장마철 눅눅한 공기와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선명한 빛을 잃지 않는 이 꽃은 여름을 알리는 '능소화'다.

능소화는 보통 6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7월에 가장 눈에 띄게 번진다. 봄꽃처럼 한꺼번에 피고 지는 꽃과 달리, 줄기마다 새 꽃을 이어 내며 가을바람이 불기 전까지 담장과 골목을 물들인다.

높은 곳까지 타고 오르는 덩굴의 생명력과 통째로 떨어지는 낙화 모습 때문에 능소화에는 여러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즐겨 심었다는 유래부터 꽃가루를 둘러싼 오해까지, 한여름에 더 눈길을 끄는 능소화에 대해 알아본다.

하늘을 능가하는 기상, 양반가만 심었던 '양반 꽃'

KSCHiLI-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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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라는 이름에는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높이 기어오르는 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름처럼 줄기 마디에서 나오는 덩굴손 형태의 흡착 뿌리를 이용해 벽과 나무틀을 단단히 붙잡고 무려 10m 높이까지 뻗어나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이 꽃을 아무나 심을 수 없었다. 평민이 마당에 심으면 관가로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는 전설이 내려올 만큼, 오직 절집이나 양반 가문에서만 키울 수 있어 ‘양반 꽃’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과거시험 장원 급제자의 모자에 임금이 직접 꽂아주던 어사화로 쓰이기도 했다. 특히 시들면서 꽃잎이 한 장씩 추하게 부스러지는 다른 식물과 달리, 송이가 가장 아름다울 때 통째로 툭툭 떨어지는 정갈한 낙화 모습 덕분에 조선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뜻하는 표본이 되기도 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주황빛, 그리움과 기다림의 꽃

KSCHiLI-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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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는 온 세상이 짙은 초록색으로 가득 차는 한여름에 더욱 돋보이는 선명한 색감을 지녔다.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 주황색 꽃잎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붉은빛이 짙어져 멀리서도 눈에 띈다.

특히 기와 담장이나 오래된 돌담, 서울 연희동의 골목길처럼 낡은 건물 외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능소화는 골목의 인상을 고즈넉하고 부드럽게 한다. 덩굴마다 중간부터 끝까지 줄줄이 매달린 꽃송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늘어진 모습은 주황색 꽃 폭포를 떠올리게 한다.

꽃이 지고 난 뒤 담장 밑 골목길 바닥에 주황색 꽃송이들이 흩어진 모습도 한여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주홍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장면에는 임금의 사랑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궁녀 ‘소화’가 담장 밑에서 꽃으로 피어났다는 설화가 얽혀 있다. 그래서 능소화의 꽃말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전해진다.

"꽃가루가 눈에 닿으면 실명?"…오해와 진실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눈부신 외형과 달리 능소화를 둘러싼 소문이 오랫동안 존재했다. 꽃가루에 갈고리 같은 미세한 가시가 돋아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각막을 상하게 하거나 심하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산림청의 연구 조사 결과, 능소화는 바람에 날려 가루를 퍼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나비나 벌 같은 곤충이 들락날락하며 가루를 옮기는 '충매화'이기 때문에 공기 중에 미립자가 잘 날리지 않는다. 또한 현미경으로 크게 관찰한 꽃가루의 구조 역시 그저 둥글고 매끄러운 모양으로 눈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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