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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들어 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이맘때면 자연스럽게 냉면이나 냉모밀을 찾게 된다.
그런데 더운 날일수록 뜨거운 국물이 당기는 날이 있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차가운 음식으로 더위를 쫓는 대신 뜨거운 국물 한 그릇으로 땀을 쭉 빼고 나면 오히려 속이 개운해지는 그 느낌. 그 느낌을 찾다 보니 칼국수와 수제비가 눈에 들어왔다.
양반가의 음식이 서민의 밥상으로
사실 칼국수와 수제비는 뿌리가 닮아 있다. 칼국수는 원래 양반들이나 맛볼 수 있던 음식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밀가루가 귀했다. 밀은 주로 남부지방에서만 재배가 가능했던 탓에 서민들의 주된 곡물은 메밀이었다. 칼국수는 그 귀한 밀가루로 빚어내는 음식이었으니 양반가 상차림에나 오를 수 있는 별미였다. 서민들은 음력 6월 유두절, 햇밀을 수확하는 시기에나 겨우 한 그릇 맛볼 수 있었다.
수제비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운두병(雲頭餠)'이라 불렸으며, 좋은 밀가루에 다진 고기와 파·장·기름·후춧가루를 넣고 닭 장국물에 익혀 먹던 음식이었다. 서민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양반가의 음식이었다. 칼국수와 수제비, 둘 다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 서민들이 함부로 먹을 수 없던 음식이었다는 점에서 같다.
그 두 음식이 서민의 밥상에 오르기 시작한 건 6·25전쟁 이후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귀하디귀하던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칼국수와 수제비는 빠르게 서민의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생활수준이 나아진 오늘날에는 주식이라기보다 가난하던 지난날의 향수가 어린 음식이 됐다. 그 두 가지를 한 그릇에 담아낸 음식을 찾아 인천 송도로 향했다.
빨간 간판 아래, 구수한 냄새
인천 연수구 송도동 상가 골목. 'ㄱ'자 홍두깨 모양 로고가 박힌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홍두깨칼국수다. 유리창 너머로 손님들이 고개를 숙이고 국물을 떠먹는 모습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밀가루 반죽을 끓인 구수한 냄새가 먼저 맞는다.
메뉴판에는 바지락칼국수, 해물칼국수, 수제비, 만두국, 떡만두국이 올라 있다. 그 중에서 칼제비를 골랐다. 칼국수 면과 수제비 반죽을 한 그릇에 담아낸 메뉴다.
한 젓가락에 두 가지 식감
그릇이 테이블에 놓이자 김이 피어오른다. 국물은 맑다. 색만 보면 싱거울 것 같지만 한 숟갈 떠보면 생각이 바뀐다. 조개를 오래 끓인 육수 특유의 감칠맛이 혀 위에 천천히 퍼진다. 기름기 없이 시원하게 떨어지는 맛이다.
면을 젓가락으로 건져 올리면 윤기가 흐른다. 직접 반죽해서 그 자리에서 썰어낸 손칼국수 면 특유의 탄력이 있다. 공장에서 뽑아낸 면과는 결이 다르다. 씹을수록 밀가루 본연의 고소한 맛이 올라온다.
그 사이사이에 불규칙하게 뜯어낸 수제비가 섞여 있다. 얇고 부드럽다. 한 젓가락에 면이 걸리기도 하고 수제비가 딸려 오기도 한다. 식감이 계속 바뀐다. 질리지 않는다.
호박과 대파가 들어가 국물에 단맛이 은은하게 깔린다. 자극적인 맛을 기대하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국물을 두세 숟갈 넘기다 보면 어느새 속이 풀린다. 땀을 한 번 쭉 빼고 나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깍두기 두 가지다. 깍두기를 국물에 살짝 띄워 먹으면 시원한 맛이 한 단계 올라간다. 김치를 젓가락으로 찢어 면 위에 올려 먹으면 또 다른 맛이 된다. 단출한 반찬 두 가지가 생각보다 오래간다.
한때는 양반가에서나 맛볼 수 있던 두 음식이 전쟁을 거쳐 서민의 밥상에 내려앉았다. 귀하디귀하던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칼국수와 수제비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신분을 가리던 음식이 세월을 거치며 가장 서민적인 한 끼가 됐고, 지금은 그 두 가지가 한 그릇에 담겨 더운 날 지친 속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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