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H(GALLERY H)는 2026년 8월 26일부터 9월 7일까지 박다인의 초대 개인전 ‘염원(鹽願): 소금의 기도, 소금산에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박다인이 이어 온 ‘염원: 소금의 기도’ 연작을 처음으로 종합해 선보이는 국내 첫 초대 개인전으로, 소금 회화 30여 점과 2톤이 넘는 소금으로 축조한 설치, 퍼포먼스 영상과 관객 참여 작업을 한 공간에 펼쳐 보인다. 전시의 중심에는 ‘법이 무너진 이후, 우리는 어떻게 공동의 약속을 다시 세우고 공동체로서 함께 머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놓인다.
작가는 회화 속에서 물과 먹의 흐름을 바꾸고 끝내 결정으로 남는 소금의 작용을 실제 소금산의 지형으로 확장하며, 그 끈질긴 생명력 안에서 공동체의 회복탄력성을 발견한다. 소금을 만지고, 건네고, 흩뿌리는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 몸짓을 통해 법의 언어가 미처 닿지 못하는 균열의 자리에서 잃어버린 공동의 약속을 다시 감각하는 실험의 장을 연다.
소금 동맹, 소금 언약, 평화와 치유의 기술
법이 문장이 되고 제도가 되기 전에,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을 몸으로 익히고 이를 의례를 통해 나누었다. 박다인은 헌법을 통치의 기술에 한정하지 않고, 공동체가 공유하는 믿음과 가치, 상징,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상상력을 담는 그릇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헌법의 원형을 예술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작가는 고대 문명에서 동맹을 맺는 표지로 사용되고 성경의 ‘소금언약(Salt Covenant)’에서 변하지 않는 약속의 상징이 됐던 소금에 주목해 왔다.
인체를 구성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소금은 인류 문명사에서 정화와 보호의 성물이자, 경계를 세우고 맹세를 봉인하는 의례의 매개로 사용돼 왔다. 작가에게 소금은 이처럼 생명과 공동체의 약속을 함께 보존해 온 ‘기도의 그릇(Vessel for Collective Prayer)’이다. 그는 분열과 대립이 깊어진 오늘의 세계에서, 오랜 세월 화해와 약속의 의례를 담당해 온 소금의 힘을 ‘평화와 치유의 기술(Technologies of Peace)’로 제시한다.
‘염원(鹽願)’: 기도의 지도를 만드는 퍼포먼스적 회화
전시에 선보이는 ‘염원(鹽願, 소금 염, 원할 원)’ 회화 연작은 소금의 삼투압과 결정화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생명의 원리를 회화의 생성 과정 안으로 끌어들인 작업이다. 작가는 이를 ‘퍼포먼스적 회화’라 부른다. 한국 산하의 형상을 그린 종이 위에 소금을 뿌리면, 소금은 물과 먹의 흐름을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스스로 길을 만든다. 그렇게 던져진 소금은 화면에 결정으로 새겨져 ‘기도의 지도(Map of Prayer)’를 형성한다. 작가에게 회화는 소금을 기도의 매개체로 담아 화면에 물질적으로 아로새기는 의식이며, 검은 먹으로 칠해진 어둠을 헤치고 신성한 생명의 길을 조각하는 과정이다.
물 위에서 먹과 맞서고 마침내 하나의 평형에 이른 소금 결정의 궤적에는, 보이지 않는 부패와 맞서 온 소리 없는 시간이 선처럼 남는다. 현미경적 시선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결정의 반짝임은 ‘빛과 소금’이라는 오래된 성스러운 상징을 화면의 실제 물질로 구현한다. 먹의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예술을 축조해 나가는 이 흰 결정은 작가에게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여 주는 질료적 증거이자 희망이다. ‘염원(鹽願): 소금의 기도, 소금산에서’라는 제목은 바로 이 회화적 과정에서 출발하며, 법이 권력의 비명이 아니라 시민의 노래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육화한다.
소금산, 정화와 화해의 제단이자 기도의 지형
거리 위의 퍼포먼스에서 시작돼 종이 위에 소금의 물길로 남은 ‘기도의 지도’는 이번 전시에서 평면을 뚫고 나와 실제 공간에 솟아오른 ‘기도의 지형(Topography of Prayer)’으로 이어진다. 지하 전시장에 축조된 2톤이 넘는 소금산은 부패를 막고, 상처를 자극해 깨우며, 생명과 염원을 보존하는 광물적 물질성이 축적된 원초적 지단(地壇)이자 ‘살아 있는 정화의 제단(Living Altar of Purification)’이다.
회화 속에서 소금이 물과 먹의 흐름을 바꾸었다면, 전시장 안의 소금산은 관객의 시선과 이동, 몸의 자세를 바꾸어 놓는다. 거리와 공적 광장에서 이어져 온 작가의 퍼포먼스 연작 ‘소금치기(Casting Salt)’는 이 소금산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작가의 몸은 소금을 다루고 지배하는 주체에 머물지 않는다. 소금산 사이에서 견디고 기대는 그의 신체는 국가적·제도적 트라우마가 통과해 회복으로 건너가는 ‘화해의 장소(Body as a Site of Reconciliation)’가 된다. 법의 위력에 맞서 헌법 정신을 깨우는 정화의 세례로 시작된 퍼포먼스 ‘소금치기’, 그리고 풍자와 화해, 저항과 치유, 분노와 구원의 양극을 이어 온 이 소금의 제스처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손을 넘어 관객의 손으로 옮겨간다.
소금산에서의 관객 참여 퍼포먼스 : 상징적 평화의 서약과 치유
원형으로 배치된 소금산 둘레에 앉은 관객들은 소금 결정을 가까이에서 만지고, 건네고, 다시 던지며 기도의 시간에 머문다. 이 촉각적 행위는 고대의 소금 동맹과 언약의 기억을 되살리며, 균열과 상처 이후에도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성(Commonality)’을 시험한다. 미세한 결정이 모여 하나의 산을 이루듯, 각자의 서로 다른 소망은 기도를 통해 합의를 찾아가며 하나의 행위 안에 함께 놓인다. 성문법이나 문서화된 서약 없이 몸의 기억에 새겨지는 이 행위는 ‘상징적 평화의 서약(Covenant of Peace)’이자 관객 스스로 수행하는 헌법적 실험이며, ‘체현된 치유(Embodied Healing)’로 확장된다.
관객들은 전시 기간 내내 소금을 만지고 건네고 흩뿌리며 각자의 기도와 언약을 전시장 한편의 ‘소금언약’에 모은다. 먼저 축적된 소금은 작가의 회화로 옮겨져, 폐막일인 9월 7일 공동체가 함께 만든 새로운 ‘기도의 지도’로 공개된다. 이후의 ‘소금의 기도’ 연작으로 이어지며, 관객의 언약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새로운 회화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법과 공연의 역사를 연구한 줄리 스톤 피터스(Julie Stone Peters)는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법이 재판정과 거리, 시민의 시선과 반응 속에서 형성돼 온 역사를 추적한다. 전시의 원형 배치는 특히 고대 로마의 재판정을 에워싸고 반응했던 관중의 고리, 즉 ‘코로나(corona)’를 환기한다. 근대 법정이 대중을 법의 체계에서 분리하는 폐쇄적 구조로 변화했다면, 박다인은 그 둘레를 전시장 안에 다시 불러들여 수동적 감상자를 서약의 형성과 수행에 참여하는 증언자의 위치로 이동시킨다. 관객은 판결을 내리거나 법을 선포하지 않는다. 대신 소금을 건네고 함께 머무는 몸을 통해, 기도와 맹세, 의례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원형적 약속을 수행한다. 이는 법의 권위와 정의의 정당성을 공적으로 감각하고 질문하며 다시 상상하는 정치적·의례적 실천이다.
예술이 헌법을 지키는 마지막 성소가 될 수 있는가
그의 작업은 한국의 지평을 넘어 인류 보편의 ‘성소(Sanctuary)’와 로마법의 성소법, 영국의 불문헌법을 탐색해 왔다. 더럼 대성당을 배경으로 법원과 사법부가 오히려 박해의 주체가 되는 현실을 고발한 ‘잊혀진 순례: Unheard Pilgrim, A Knock’(2023), 버킹엄궁의 발코니를 관객의 주권만큼 테이크아웃해 가져가게 함으로써 왕가의 전유물을 해체한 참여형 퍼포먼스 ‘더 로열 피쉬 앤 칩스(The Royal Fish & Chips)’(2023)는 시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헌법적 문법을 제안해 온 작업들이다.
‘염원(鹽願): 소금의 기도, 소금산에서’는 이러한 실천을 바탕으로 ‘예술이 헌법을 지키는 마지막 성소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물질과 가장 단순한 몸짓을 통해, 정의의 얼굴이 흐려지고 법의 언어가 무력해진 자리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의 감각을 다시 묻는다. 법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법이 되는 자리에서, 전시는 공동체의 믿음과 기억,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염원을 담을 더 근본적인 헌법의 그릇을 함께 채울 것을 제안한다.
박다인 작가 소개
박다인은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 뒤 법과대학으로 전과해 우등 졸업하고, 동경예술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으며 유사쿠 이마무라(今村 有策, Yusaku Imamura) 교수의 지도아래 국제법과 헌법을 예술적 언어로 전환하는 실천을 본격화했다. 현재 ‘Guardian University Guide 2026’ Fine Art 부문에서 100점으로 영국 1위에 오른 UCL 슬레이드 미술대학에서 박사과정(PhD Candidate)을 수행하고 있으며, UCL 법과대학의 민주적 입헌주의를 위한 글로벌 센터와 연계해 헌법과 미술의 접점에서 헌법을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를 연구한다. 박다인은 입학 당시 UCL 전 학문 분야에서 매년 최대 25명에게 수여되던 Graduate Research Scholarship(GRS)과 Overseas Research Scholarship(ORS)을 슬레이드 미술대학 한국인 최초로 동시 수혜했다. 사치 갤러리, 캠든 아트 센터, UCL 슬레이드 미술대학 등에서 브렉시트 국면의 법적 한계를 다룬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Korean Eye 2020: Creativity and Daydream’ 국제 순회전에 초청된 한국 작가 16인 중 한 명으로 러시아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뷰티컬트(Beauty Cult)’의 단독 오프닝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해당 작품은 런던 사치 갤러리와 서울 롯데월드타워 순회전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연례 비판법학학회, 국내외 전시와 연구 발표를 통해 법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언론연락처: 박다인 작가 문의 갤러리 H(GALLERY H) 02-735-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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