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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
(사진 왼쪽부터)서소문 교회, 유숙자 권사 · 이영춘 집사 부부. 2026.03.22. / 투어코리아 이창호 기자[투어코리아=이창호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9번 출구(유원빌딩) 골목길 위로 80여년의 세월속에 자리잡은 서소문교회가 창립 80주년 기념 사업으로 '서소문 어버이의 기도' 신앙 유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소문 교회의 80년 역사 속에는 수많은 성도의 눈물과 기도가 쌓여 있다. 그중에서도 이영춘 집사(91)와 유숙자 권사(84) 부부는 각자의 삶에서 사별의 아픔을 겪은 뒤, 신앙 안에서 제2의 인생을 함께 일궈가는 산증인들이다.
2000년 백년가약을 맺은 이후,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의 헌신적인 선교 활동부터 서소문 교회 앞자리를 지키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삶은 ‘순종’과 ‘회복’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이영춘 집사의 고향은 부산 초량이다. 6.25 전쟁의 포화가 잦아들 무렵인 1953년 8월, 고등학생 신분으로 홀로 상경한 그는 마포 인근에서 자취하며 고단한 청춘을 보냈다. 당시 그를 붙잡아준 곳은 인근의 동막교회였다. 청년부의 도움으로 신앙을 접한 그는 교회 형의 권유로 서울사범학교에 진학하며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소문 교회 이영춘 집사. 2026.03.22. / 투어코리아 이창호 기자이후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인천교육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로 평생을 강단에 섰다. 전공은 경제학이었으나, 철학 전공자가 부족했던 대학 상황에 맞춰 늦은 나이에 철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열정을 보였다.
"당시 하나님께 매달리며 장사를 병행하던 시절, '빨리 끝내고 교회 가야지' 마음먹은 날은 수입이 유독 좋았다. 그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어요"
그는 2000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유숙자 권사와의 만남,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뜨거운 신앙의 재점화였다.
유숙자 권사의 고향은 중국 지린성 영길(연길)이다. 해방 직후인 다섯 살 무렵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그녀의 부친은 영길교회 장로였고, 서소문 교회의 초석을 놓은 서금찬 목사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은 깊은 인연이 있다.
서소문 교회 유숙자 권사. 2026.03.22. / 투어코리아 이창호 기자서울대학교 간호학과 1기 졸업생인 그녀는 전남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한 보건의료계의 원로다. 신앙적으로도 타협이 없었다. 재혼을 결심하며 이 집사에게 내건 조건은 단 하나, "기독교인이어야 하며 서소문 교회를 함께 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서소문교회의 산증인이셨어. 을지로에서 서소문까지 버스도 없던 시절, 어린 내 걸음으로는 참 먼 길이었지만 부모님은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셨지“
"나는 우리 교회가 가족 중심의 예배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어. 부부가 함께, 부모와 자녀가 함께 앉아 드리는 예배가 진짜 가정의 신앙을 지키는 힘이 되거든.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부모님이 지키시던 그 자리에 나란히 앉아“
현재 부부가 주일마다 예배당 앞자리를 고수하는 데에는 "지금 우리가 앉는 자리는 옛날 우리 부모님이 앉으시던 자리다. 오빠가 타지에 있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결혼하면 반드시 남편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고 특별한 이유를 설명했다.
부부는 결혼 직후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으로 향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부부는 월급 한 푼 받지 않는 자원봉사 선교사로 살았다. 유 권사는 간호대학장으로, 이 집사는 서양철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특히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이고 신앙을 전수하며 ‘연변의 부모’ 역할을 자처했다고 회고했다.
"학생 16명을 우리 자녀처럼 맡아 아침, 저녁으로 밥을 해 먹였어. 주일이면 택시비를 쥐여주며 교회에 보냈지. 그렇게 10년을 살다 보니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 무엇인지 알겠더라고"
유 권사의 사역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현재 세계기독간호재단의 평양과학기술대학 간호대학 설립위원장을 맡아 북한 내 의료 교육 기반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비록 국제 정세로 인해 직접 방문은 어렵지만, 해외 교수진을 통한 온라인 강의 지원과 설립 기금 마련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두 사람에게 신앙은 관념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이 집사는 과거 대수술을 받았던 척추 재건축 수술 당시를 떠올렸다. 병상에서 생사의 기로를 헤맬 때,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기호처럼 변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며 성령의 임재를 느꼈다. 그는 "그때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셨음을 확신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절히 매달렸지. 그때 성령님이 나를 덮으셨다가 싹 나가는 것을 느꼈어. 그 이후로 거짓말처럼 회복되었고, 지금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야“
서소문 교회, 유숙자 권사 · 이영춘 집사 부부가 22일 오후 서소문교회 80주년 기념사업 신앙 유산 프로젝트 '서소문 어버이의 기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26.03.22. / 투어코리아 이창호 기자유 권사는 '용서'를 가장 큰 기도 응답으로 꼽았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두고 3일간 금식하며 매달렸을 때,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떠오르며 마음의 빗장이 풀렸다.
"내 입으로 '용서했습니다'라고 뱉는 순간, 어깨 위의 돌덩어리가 사라지는 것 같았어. 용서하고 나니까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몰려오더라고. 그게 내 인생 최고의 기도 응답이었어"
구순을 넘긴 이 집사와 여든을 넘긴 유 권사의 마지막 소원은 자녀들의 신앙 회복이다. 특히 이 집사의 장남이 아직 교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 큰 기도 제목이며 남겨진 기도라고 전했다. 유 권사는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아들의 마음을 돌려 세우실 것을 믿는다"라며 "매일 카톡으로 손주들에게 성경 구절을 보내며 영적 유산을 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고령으로 인해 운전면허를 반납했다는 유 권사는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해 수지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오간다. 육체는 쇠약해질지언정, 예배를 향한 열정은 80년 전 서소문동 언덕을 오르던 선배 성도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함께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지금까지 나를 이해해주고 동행해준 배우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며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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