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름 없는 소년들의 헌신, 이제는 국가가 응답할 차례”
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이규원 관장이 31일 오전 투어코리아와 인터뷰에 앞서 6·25 참전 인천소년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이규원 관장이 31일 오전 투어코리아와 인터뷰에 앞서 6·25 참전 인천소년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투어코리아=이창호 기자] “피해자(Victim)와 희생자(Sacrifice)는 엄연히 다르다. 사고로 화를 입은 것이 피해라면,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나라를 구한 소년들은 ‘희생자’이자 ‘헌신자’다. 하지만 국가는 70년이 넘도록 그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인천 중구 용동에 위치한 ‘인천학생 6·25참전기록관’에서 만난 이규원 관장은 단호했다. 그는 최근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경인 소년병들의 헌신에 관한 기록물’이 국가지정기록물로 예고된 것을 두고 “30년 맺힌 응어리가 이제야 풀리기 시작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기록물은 그의 부친인 고(故) 이경종 옹이 1990년대부터 직접 발로 뛰며 모은 사진, 구술 녹취록, 병적 자료들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거주표’에 새겨진 아버지의 한(恨), 추적의 시작

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전경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전경

이 관장이 소년병 기록에 매달린 이유는 아버지의 삶 그 자체였다. 이경종 옹은 인천상업중학교(현 인천고) 3학년 재학 중 16세의 나이로 참전했다. 하지만 전후 복구 과정에서 행정적 오류로 군번이 꼬였고, 이는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다.

“아버지는 1951년 부여받은 ‘남해 군번(4825)’과 전쟁 말기 대구에서 새로 받은 군번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정보공개를 통해 받아낸 ‘거주표(군인 명부의 일종)’에는 아버지가 16세에 입대해 19세까지 사선을 넘나든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년병의 실체를 증명하는 1차 사료다”

이 관장은 거주표와 병적 기록을 대조하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생년월일을 계산했을 때 만 18세 미만인 소년병들이 국가 공식 명단에서 대거 누락되어 있었다. 그는 직접 엑셀 파일을 만들어 12만여 명의 호국영령 데이터베이스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32년생부터 41년생 사이의 소년병 1,488명이 명단에서 빠져 있음을 확인했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행정 오류와 싸운 30년

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전경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전경

이 관장은 국방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를 상대로 수십 차례의 민원을 제기하며 절차적 정의를 요구해왔다. 특히 그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명단 공개를 거부하는 국방부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죽은 사람에게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군 규정상 30년이 지난 기록물은 공개가 원칙이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자료 부존재’를 주장하거나 부처 간 책임을 떠넘겼다. 인천 출신 소년병 120명 중 명부에 이름이 올라간 이는 38명뿐이다. 나머지는 족보 없는 군인이 된 셈이다. 이게 당나라 군대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는 소년병들이 단순히 ‘어린 나이에 끌려간 아이들’이 아님을 강조했다.

인천 지역 학생들은 국방부 정훈국 인천지구 파견대라는 조직 아래 공동의 유대감을 가졌고, 통영까지 500km를 걸어 내려가 자원입대했다. 이 과정에서 스승이 제자를 입대시키는 비극적인 아이러니도 발생했다. 이 관장은 “선생님은 제자들이 통신병으로 빠져 조금이라도 안전하길 바랐지만, 실제로는 상병 계급을 달고 최전방 분대장으로 투입되어 더 많이 희생됐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국가지정기록물 넘어 세계기록유산으로

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이규원 관장이 31일 오전 투어코리아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이규원 관장이 31일 오전 투어코리아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번에 지정 예고된 기록물에는 소년병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와 사진 1,00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기록원은 이 자료들이 전쟁사의 공백을 메울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관장은 이제 이 기록을 세계기록유산(UNESCO)에 등재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삼고 있다.

“유럽의 왕들은 전쟁터에서 죽어도 귀족으로 대우받지만, 우리 소년병들은 전사해도 가난과 망각 속에 버려졌다. 헌신(Devotion)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마음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소년병들이 몇 명이나 참전했는지, 왜 군번이 두 개인지 알고 싶어 하셨다.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한다”

이 관장은 기록물의 핵심 구성 요소로 ▲소년병들의 입대 시기와 생년월일이 명시된 ‘거주표’ 및 병적 기록(1차 사료), ▲이경종 옹과 생존 소년병 200여 명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녹취 테이프 및 CD(구술 기록), ▲전쟁 당시 인천상업중학교 등 지역 학생들이 전선으로 떠나기 전 촬영한 희귀 사진(시각 자료), ▲이규원 관장이 직접 전수 조사하여 도출한 누락자 1,488명의 명단 및 통계 자료(분석 데이터) 등을 제시했다.

이 관장은 인터뷰 끝에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 지워진 소년들의 이름을 되찾는 일은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라며 ‘국방부 인사 사령관’을 향한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한편, 지난 3월 16일 국가기록원은 최근 '경인 소년병들의 헌신에 관한 기록물' 국가기록물 지정 예고 공고를 올렸다.

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이규원 관장이 31일 오전 국가기록물 지정사유에 개해 설명하고 있다.6·25 참전 인천소년병 이경종 기록관 이규원 관장이 31일 오전 국가기록물 지정사유에 개해 설명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6·25 전쟁 당시 및 전후 소년병에 대한 공식적인 병적 기록이나 국가 차원의 생산 기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참전 실체와 전쟁사의 공백을 규명할 수 있는 기록으로, 단순한 전쟁사를 넘어 당시의 사회상·생활사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다”며 국가적인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정 필요 사유를 밝혔다.

해당 기록물은 6·25전쟁 당시 인천과 경기지역에서 입대한 소년병의 참전 사실과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병적 기록을 비롯해 당시 활동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생존자 및 유가족의 구술 녹취록 등으로 인천 중구 용동에 있는 '인천학생 6·25참전관'이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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