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초록 숲, 밤엔 황금빛 궁궐”…요즘 감성 여행자들이 다시 경주로 가는 이유
경주 동궁과 월지 / 사진-경북문화관광공사경주 동궁과 월지 / 사진-경북문화관광공사

[투어코리아=김동환 기자] 경주시는 오래된 도시다. 하지만 지금의 경주는 ‘유적지 여행’이라는 익숙한 단어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천년 고도의 시간 위에 감각적인 미술관과 고요한 숲길, 밤이 되면 빛으로 물드는 야경 명소까지 더해지며 새로운 감성 여행지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여행자들은 경주에서 단순히 역사를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왕릉 옆을 산책하고, 호수에 비친 궁궐의 야경을 바라보며, 현대미술 전시를 보고 숲속 명상 프로그램까지 경험한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도시, 지금의 경주는 ‘머무는 여행’을 완성하는 공간에 가깝다.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하는 곳은 단연 동궁과 월지다. 신라 왕궁의 별궁터였던 이곳은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변한다. 문무왕 14년인 674년에 조성된 연못은 굴곡진 구조 덕분에 한눈에 전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설계됐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황금빛 조명이 전각과 성벽을 비추고, 그 모습이 월지 수면 위에 거울처럼 반사되며 환상적인 장면을 만든다.

동궁과 월지 야경/ ⓒ투어코리아동궁과 월지 야경/ ⓒ투어코리아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신라 시대 연회장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첨성대와 월정교까지 이어지는 야간 산책 코스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경주를 만날 수 있다. 화랑의언덕은 JTBC 예능 ‘캠핑클럽’ 촬영지로 알려지며 젊은 여행자들의 SNS 명소가 된 곳이다. 넓게 펼쳐진 초원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양들과 교감할 수 있는 체험 공간까지 더해져 ‘한국의 뉴질랜드’라는 별칭도 얻었다.

명상바위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경주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히 쉬어가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경주 오릉 /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경주 오릉 /사진제공-경주시

역사의 흔적을 가장 고요하게 느끼고 싶다면 괘릉과 오릉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원성왕의 능인 괘릉은 번잡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걷기 좋은 장소다. 능을 둘러싼 석물과 넓은 잔디밭이 어우러져 묘한 평온함을 만들어낸다.

오릉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공간이다. 둥근 봉분과 오래된 나무들이 이어지는 산책길은 마치 시간 여행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숭덕전과 알영정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신라 건국 설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경주는 이제 예술 여행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우양미술관은 1991년 개관한 국내 최초의 사립 현대미술관으로, 보문관광단지 안 힐튼경주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박서보와 이우환, 백남준 등 한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국내외 작가들의 기획전도 꾸준히 열고 있다.

경주솔거미술관은 경주의 감성 여행 코스에서 빼놓기 어려운 공간이다. 2015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한국화 거장 박대성 화백의 작품 기증을 계기로 문을 열었으며,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를 맡아 자연과 건축,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완성됐다. 특히 자연광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전시실은 창밖 풍경마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질 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장남원 작가 전시작 / 사진-경북문화관광공사장남원 작가 전시작 / 사진-경북문화관광공사

올여름에는 특별한 전시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경주솔거미술관은 오는 6월 11일부터 9월 13일까지 한국 유일의 고래사진가로 알려진 장남원 작가의 특별전 ‘움직이는 섬 고래’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바다 생물을 기록한 사진전이 아니다. 거대한 바다와 고래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현대인이 잃어버린 감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전시로 기획됐다. 장남원 작가는 1992년 일본 출장 중 처음 고래를 만난 이후 수십 년 동안 세계 바다를 오가며 고래와 수중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전시장에서는 대양을 가르는 고래의 압도적인 순간과 깊은 바다 속 장면들이 공개된다. 특히 국내 수중사진계가 접사 중심 촬영에 머물던 1980년대, 장 작가는 광각렌즈를 활용해 웅장한 바다 풍경과 거대한 수중 세계를 담아내며 새로운 흐름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한국대중음악박물관도 추천할 만하다. 한국 대중음악 100년의 흐름을 담아낸 이곳은 영화 OST 전시관과 오르골 전시관, 소리예술과학 전시 등으로 구성돼 있다. LP와 오래된 음향기기를 둘러보다 보면 세대와 시간을 넘나드는 감성 여행이 완성된다.

경주의 여유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보문관광단지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다.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곳은 호텔과 산책로, 자전거길이 조화를 이루며 낮과 밤 모두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는 경주 특유의 느린 시간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보문관광단지전경 /경북문화관광공사 제공보문관광단지전경 /경북문화관광공사 제공

아이와 함께라면 국립경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도 좋은 선택이다. 신라 유물을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어 역사 여행의 진입장벽을 낮춰준다. 선착순 예약제로 운영되며 하루 여러 차례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동해 바다를 마주한 문무대왕릉 역시 빼놓기 어렵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에 따라 바다에 묻힌 곳으로 알려진다.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풍경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경주 여행의 마지막 장면을 더욱 깊게 남긴다.

국립경주박물관 전경./사진-경주시국립경주박물관 전경./사진-경주시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