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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
▲(上)동쪽 성외 문지 전경, (下)부여군 북동쪽 상공에서 촬영한 조사대상지 일원 전경. /사진-부여(편집 류석만 기자)[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1500년의 시간을 견뎌온 백제 왕도의 정문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충남 부여군과 백제문화재단이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아 추진한 「부여 나성(월함지) 정비사업부지」 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도성의 동문지(東門址)가 처음으로 확인되며 백제 왕도의 실체를 밝힐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번 발견은 단순한 성문 유적의 확인을 넘어, 사비 천도 이후 백제 왕도가 어떻게 계획되고 방어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성곽 문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확인되면서 백제의 뛰어난 도시계획과 토목·건축 기술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동문지는 폭 약 10m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다.
지금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성곽 문지가 대부분 폭 4~5m, 기존 최대 사례인 풍납토성 서문지도 약 7m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발견은 기존 기록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규모다.
향후 전면 발굴이 이뤄질 경우 문지 길이는 15~20m 이상으로 확인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학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문루(門樓)를 받쳤던 기둥 구조와 좌우 두 개의 출입 통로다.
문지 중앙을 따라 일렬로 배치된 기둥 흔적은 거대한 문루가 설치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람과 수레의 이동을 효율적으로 분리한 쌍통로 구조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백제 왕도가 단순한 방어시설을 넘어 치밀한 도시계획과 교통체계를 갖춘 계획도시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평지 구간 문지의 양쪽 성벽도 처음으로 모두 확인됐다.
성벽은 기반층을 단단히 다진 뒤 지대석을 설치하고 장방형 석재를 정교하게 쌓아 올렸으며, 내부에는 뒤채움석과 다짐흙을 활용하는 등 백제 특유의 석축 축성기법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또한 성문의 구조를 일부 변경한 흔적도 확인돼 최소 두 차례 이상 보수와 증축이 이루어진 사실까지 밝혀졌다.
부여 나성은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이후 왕도를 둘러싸며 수도를 방어했던 외곽성으로, 왕도의 경계와 국가 방어체계를 상징하는 핵심 시설이다.
그러나 그동안 동문의 위치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아 백제 사비도성 연구의 가장 큰 미해결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었다.
이번 동문지 확인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결정적인 성과다.
백제 왕도의 출입체계와 방어시설은 물론 수도의 공간구조와 도시 운영체계를 종합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학술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올해 조사는 유적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대형 유구가 확인되면서 향후 연구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오는 2027년부터는 동문지를 중심으로 정밀 발굴조사가 본격 추진될 예정이며, 백제 왕도의 정문과 문루, 성벽의 전체 구조가 온전하게 드러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부여군, 백제문화재단은 앞으로도 부여 나성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조사를 이어가 백제 사비도성의 실체를 규명하고,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역사적 가치와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여 나갈 계획이다.
이번 발견은 단순한 유적 발굴을 넘어, 1500년 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던 백제 왕도의 정문이 다시 세상과 마주한 역사적 순간이다.
백제가 남긴 뛰어난 도시계획과 건축기술, 그리고 왕도의 품격을 입증하는 이번 성과는 앞으로 삼국시대 성곽 연구는 물론 동아시아 고대도시 연구의 새로운 기준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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