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들어간 충남의 소나무숲 … “재선충은 번졌고, 행정은 뒤따랐다”
▲“붉게 죽어가는 보령시의 소나무.” 충남 보령시 화산동(대천3동) 큰골마을 뒷산에서 집단 고사한 소나무들이 누렇게 말라붙은 채 산림 곳곳에 서 있고, 화산동 74번지 성주산 자락에 자리한 용궁사 불상 주변에서 수십 년 된 소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로 누렇게 말라 죽어 있다. /사진-보령시프레스협회(편집 류석만 기자)▲“붉게 죽어가는 보령시의 소나무.” 충남 보령시 화산동(대천3동) 큰골마을 뒷산에서 집단 고사한 소나무들이 누렇게 말라붙은 채 산림 곳곳에 서 있고, 화산동 74번지 성주산 자락에 자리한 용궁사 불상 주변에서 수십 년 된 소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로 누렇게 말라 죽어 있다. /사진-보령시프레스협회(편집 류석만 기자)

[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르포] 푸르던 산이 붉게 변했다…충남 서해안 ‘소나무 대재앙’ 현장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푸른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었다.

충남 서천에서 보령을 거쳐 청양과 태안으로 이어지는 서해안 산림 곳곳에서 소나무들이 붉게 말라 죽은 채 서 있다.

멀리서 보면 단풍이 든 숲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잎은 바싹 말라 있고, 나무줄기에는 죽음의 흔적만 남아 있다. ▶본보 7월 30·31일, 8월 3·5일자 사회면 참고

한두 그루가 아니다.

능선을 따라 수십, 수백 그루가 줄줄이 붉게 변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산 전체가 고사목으로 뒤덮이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주민들이 말하는 현장은 행정기관이 발표하는 숫자보다 훨씬 처참하다.

“한두 그루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산 전체가 붉어졌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증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 13만9922그루…1년 새 26배 늘어난 감염목

충남도가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집계한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은 모두 13만9922그루다.

지난해 5,331그루와 비교하면 불과 1년 사이 약 26배 폭증했다.

특히 피해가 태안·보령·청양·서천에 집중됐다.

태안군 3만 4783그루

보령시 3만 1751그루

청양군 3만 1717그루

서천군 3만 1427그루

이들 4개 시·군의 감염목만 12만 9000여 그루로 전체의 약 92%에 달한다.

숫자만 놓고 봐도 이미 통상적인 예찰과 선택적 제거 방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문제는 이 수치조차 실제 피해의 전부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행정 통계에 아직 잡히지 않은 고사목들이 능선과 계곡을 따라 발견되고 있다. 조사 시점과 조사 방식에 따라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나무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지금 충남이 마주한 것은 ‘13만 9922그루의 피해’가 아니라 실제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대규모 산림 피해라는 것이다.

■ 방제는 따라가지 못했다…“베는 속도보다 죽는 속도가 빠르다”

방제 실적과 신규 피해 규모를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솔향 찾아 돌아왔는데 숲이 통째로 죽었다."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1리의 한 주택 인근 산자락에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으로 추정되는 벌목된 나무들이 남아 있다. 주민 B 씨는 “벌목된 지 일주일이 넘도록 나무가 현장에 방치돼 있다”며 감염목 방제처리지침 준수 여부와 추가 확산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확인을 요구했다. /태안군프레스협회▲"솔향 찾아 돌아왔는데 숲이 통째로 죽었다."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1리의 한 주택 인근 산자락에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으로 추정되는 벌목된 나무들이 남아 있다. 주민 B 씨는 “벌목된 지 일주일이 넘도록 나무가 현장에 방치돼 있다”며 감염목 방제처리지침 준수 여부와 추가 확산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확인을 요구했다. /태안군프레스협회

충남도는 지난해 약 3만 7000그루, 올해 상반기 약 4만 1000그루를 제거했다.

하지만 올해 5월 말까지 확인된 감염목만 13만 9922그루다.

단순 비교해도 올해 확인된 감염목은 상반기 제거량보다 약 9만 8000그루 많다.

여기에 감염 가능성이 있는 주변 나무와 이미 말라 죽었지만 아직 통계에 잡히지 않은 고사목까지 포함하면 실제 방제 물량은 훨씬 커진다.

죽는 나무를 베어내는 속도가 감염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제 현장에서는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감염된 나무를 치료해 되살릴 수 있는 치료제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감염목을 신속히 발견하고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예찰과 진단, 벌채, 운반, 파쇄·처리 등 행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매개충이 주변 소나무로 이동하면 피해 범위는 다시 넓어진다.

한 그루를 놓치면 다음 해 수십 그루가 되고, 그 수십 그루가 다시 수백 그루로 번질 수 있는 구조다.

■ “예산은 늘었는데 왜 숲은 더 죽었나”

충남도의 방제 예산은 크게 늘었다.

올해 방제비는 358억원으로 지난해 108억원보다 250억원, 약 3.3배 증가했다.

그런데 예산 증가와 반대로 피해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대목에서 충남도의 방제 행정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예산을 늘리고 조직을 확대했는데도 감염목이 급증했다면 단순히 ‘돈이 부족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찰은 제때 이뤄졌는가.

감염목 발견 뒤 실제 제거까지 얼마나 걸렸는가.

시·군별 방제 인력과 장비는 적절했는가.

방제 우선순위는 실제 확산 경로를 반영했는가.

행정기관의 판단 속도가 현장의 확산 속도를 따라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 태안 해송림은 무너지고 있었다

태안군 남면 몽산리 일대 해송림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던 소나무들이 갈색 잎을 매단 채 집단으로 말라 죽었다.

해송림은 단순한 나무 군락이 아니다.

해풍과 염해를 막고, 주거지와 농경지를 보호하며, 지역의 경관과 생태계를 지탱하는 생활 기반에 가깝다.

주민들은 고사목이 주택이나 도로 쪽으로 넘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구체적인 제거 일정과 작업 계획을 알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

산림이 죽어가는 동시에 주민들의 일상까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산림청은 지난 7월 30일 태안을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 규모가 수만 그루에 이른 뒤 내려진 조치라는 점에서 선제 방제라기보다 사후 대응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 청양 마을을 지키던 노송도 사라졌다

청양군 화성면 화강리에서는 마을을 지켜온 노송마저 고사했다.

▲“수백 년 노송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청양군 칠갑산 인근 천장호 가는길에 수백년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된 채 고사한 모습, 잿빛으로 말라죽은 화성면 화강리 산다리 마을 뒷산의 소나무 군락지, 왼쪽 벌채지와 아직 제거되지 않은 고사목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모습. /사진-청양군프레스협회(편집 류석만 기자)▲“수백 년 노송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청양군 칠갑산 인근 천장호 가는길에 수백년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된 채 고사한 모습, 잿빛으로 말라죽은 화성면 화강리 산다리 마을 뒷산의 소나무 군락지, 왼쪽 벌채지와 아직 제거되지 않은 고사목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모습. /사진-청양군프레스협회(편집 류석만 기자)

주민들의 기억 속에 울창했던 솔숲은 16년 만에 넓은 벌채지로 변했다.

잘려나간 자리에는 편백과 낙엽송 등이 심겼지만, 주민들이 잃어버린 숲의 기능을 되찾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나무 한 그루를 베는 데는 하루가 걸릴 수 있지만, 그 나무가 자라 숲이 되는 데는 수십 년이 필요하다.

방제 행정의 실패가 단순히 올해의 산림 피해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그동안 주민들이 누렸던 그늘과 방풍 기능, 경관, 생태적 가치까지 한꺼번에 사라진다.

■ 보령, 2012년 첫 발생 이후 피해 급증…“잠재 피해 최대 20만 그루”

충청권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처음 확인된 보령 역시 상황이 심각하다.

2012년 2월 청라면에서 첫 감염목이 확인된 이후 피해가 이어졌고, 올해 5월에는 감염목이 3만 1751그루까지 증가했다.

지난해 720그루와 비교하면 약 44배 늘어난 수치다.

보령시는 감염 우려목까지 포함할 경우 잠재적인 피해 규모가 최대 20만 그루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확인된 감염목만 제거해서는 매개충의 이동과 추가 감염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몇 그루를 베었느냐’는 방제 실적 경쟁이 아니라 어디까지 퍼졌는지를 정확히 찾아내고 확산 고리를 끊는 전략이다.

■ ‘골라 베기’만으로 막을 수 있나…방제 방식도 전환점

기존 방제 방식의 한계도 뚜렷해지고 있다.

감염목 한두 그루를 찾아 제거하는 사이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가 주변 소나무로 이동할 경우, 다음 발생 시기에는 피해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다.

집단 고사지에서는 일정 구역을 대상으로 한 집중 벌채와 수종 전환까지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주민 동의와 예산, 벌채목 처리, 산림 복원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따라붙는다.

결국 방제 행정은 ‘발견→벌채’라는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찰→진단→긴급 제거→주변 확산 차단→매개충 방제→수종 전환→산림 복원으로 이어지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 충남도, 뒤늦게 국비 200억원 요청

충남도는 12일 정부대전청사에서 홍종완 행정부지사가 박은식 산림청장을 만나 내년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국비 200억원 지원을 요청했다.

▲"푸른 해송이 사라졌다."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 산 89 일원 바닷가 해송과 몽산1리 야산 곳곳에 빽빽하게 서 있는 소나무와 노송들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푸른빛을 잃고 붉게 말라버려 ‘녹색 죽음’ 의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사진-태안군프레스협회(편집 류석만 기자)▲"푸른 해송이 사라졌다."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 산 89 일원 바닷가 해송과 몽산1리 야산 곳곳에 빽빽하게 서 있는 소나무와 노송들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푸른빛을 잃고 붉게 말라버려 ‘녹색 죽음’ 의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사진-태안군프레스협회(편집 류석만 기자)

또 보령시·서천군·청양군을 특별방제구역으로 추가 지정하고, 국립중부권산불방지센터를 충남에 설치해 달라고 건의했다.

충남도는 피해목 제거와 예방 나무주사, 드론을 활용한 매개충 방제, 집단 고사지 수종 전환 등을 병행하고 있다.

지역별 확산 경로와 방제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광역 방제 전략 수립 용역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산불·산사태·소나무재선충병을 전담하는 조직도 신설했다.

하지만 행정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만으로 숲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조직도도, 예산액도 아니다.

“내 마을의 소나무가 더 이상 죽지 않는가.”

“죽은 나무가 제때 제거되는가.”

“내년에는 피해가 실제로 줄어드는가.”

결국 평가는 이 세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 특별방제구역 확대, 늦었지만 ‘속도전’ 계기로 삼아야

특별방제구역 확대는 필요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정 자체가 아니라 지정 이후 무엇이 달라지느냐다.

방제 시기를 연중 확대하고 인력과 장비를 집중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피해 확산을 막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특별방제구역이라는 이름만 추가되고 현장 예찰과 제거 작업이 기존 방식에 머문다면 또다시 피해를 따라가는 행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내년 국비 200억원이 확보되더라도 마찬가지다.

감염목이 발생하면 베는 행정에서, 감염목이 발생하기 전에 찾아내는 행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찰 단계에서 발견된 고사목을 얼마나 빨리 진단할 것인지, 진단 이후 몇 시간 또는 며칠 안에 제거할 것인지, 시·군별 장비와 인력을 어디에 우선 배치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제 기준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벌채 이후 어떤 수종을 심고 산림의 기능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 ‘숲의 죽음’은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태안과 보령의 해송림은 단순한 산림 자원이 아니다.

해풍을 막고 주민 생활권을 보호하는 방풍림이자 지역의 대표적인 경관이다.

청양과 서천의 마을 솔숲 역시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생태계의 일부다.

따라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를 ‘13만 9922그루’라는 숫자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 숫자 뒤에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자라온 노송이 있고, 주민들이 기억하는 마을의 풍경이 있으며, 해풍을 막아온 해송림이 있다.

한 번 사라진 숲을 다시 만드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는 베어낼 수 있지만, 숲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 늦장 대응이 만든 ‘녹색 죽음’…이제는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홍종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예찰을 실시하고, 방제 시기에 맞춰 발생지 주변 피해 고사목 제거와 나무주사 등 지역별 맞춤형 방제 작업, 국비 확보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의 시선은 냉정하다.

이미 충남의 소나무숲 상당 부분이 붉게 변했다.

특별방제구역 지정과 국비 지원 요청도 피해가 급격히 커진 뒤에야 본격화됐다.

이 때문에 지금 충남도에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방제 속도와 성과를 숫자로 증명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감염목이 얼마나 줄었는가.

고사목 발견부터 제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단축됐는가.

추가 감염 지역은 얼마나 차단됐는가.

벌채된 산림은 얼마나 회복됐는가.

이것이 행정의 성적표가 돼야 한다.

지금 충남의 산림은 행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늘도 산에서는 소나무 한 그루가 붉게 말라가고 있다.

그리고 그 붉은색은 단순한 나무의 죽음이 아니라, 초기 대응에 실패한 산림행정이 치러야 할 대가를 보여주는 경고등일지도 모른다.

푸른 숲이 사라진 뒤 국비를 요청하는 행정이 아니라, 푸른 숲을 지켜낸 뒤 성과를 설명하는 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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