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 무너지고 물에 잠겼는데…국가하천 20곳 ‘법정계획’ 늑장
▲어기구(충남 당진시·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어기구(충남 당진시·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제방이 무너지고 농경지와 주택이 물에 잠기는 홍수 피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정작 홍수 방어의 기본이 되는 국가하천 기본계획 재수립은 법정기한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국가하천 89곳 가운데 20곳이 법정기한을 넘겨 기본계획을 재수립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의 22.5%에 달한다.

특히 일부 하천은 법정기한을 최장 4년 6개월이나 넘겼다. 피해가 발생한 하천까지 계획 재수립이 늦어지면서 정부의 홍수 대응과 하천관리 체계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어기구(충남 당진시·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하천기본계획 수립기한을 넘긴 국가하천은 20곳이다.

■ 10년마다 세워야 할 홍수 방어 계획…20곳은 기한 넘겨

하천기본계획은 하천의 홍수 방어와 하천공사, 시설 관리 등 종합적인 관리 방향을 담는 법정계획이다.

하천법에 따라 통상 ‘10년 단위로 수립’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기한을 넘긴 20개 국가하천 가운데 절반 이상은 계획 갱신이 3년 이상 늦어졌다.

이 가운데 ‘2곳은 4년 6개월, 9곳은 3년 6개월’이나 법정기한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의 강도와 양상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하천의 위험요인과 주변 여건을 반영해야 할 법정계획이 수년째 갱신되지 않은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하천 가운데 실제 홍수 피해가 발생한 곳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경안천·공릉천·무한천·삽교천·곡교천·안성천 등‘6개 국가하천에서 최근 5년간 제방 유실과 세굴, 수문 파손, 침수 등의 피해가 확인’됐다.

■ 충남도 예외 아니다…삽교천·곡교천 9.17㎢ 침수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충남에서도 하천관리 계획 지연 문제가 확인됐다.

특히 당진·아산 지역과 연결된 ‘삽교천과 곡교천 수계’에서 상당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삽교천 주변인 예산군 신암면과 삽교읍 일대에서는 6.91㎢가 침수됐고, 두 구간에서 제방 총 120m가 유실됐다.

곡교천 주변 아산시 신창면 일대에서도 하천 수위 상승에 따른 내수침수로 2.26㎢가 피해를 입었다.

두 하천 주변 침수면적만 합쳐 9.17㎢에 이른다.

피해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지자체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호우로 인한 피해액은 ‘당진시 294억원, 아산시 260억원 등 모두 554억원’에 달했다.

복구와 지원에 투입된 규모는 1,66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막대한 피해와 복구비가 발생한 뒤에도 하천의 미래 홍수 대응 방향을 담는 기본계획은 제때 정비되지 못했다.

삽교천과 곡교천, 그리고 2023년 제방 세굴 피해가 발생했던 무한천은 올해 6월까지도 기본계획 재수립을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 피해 난 하천도 ‘계획 공백’…올해도 홍수 위험 이어져

문제는 과거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도 기본계획 재수립이 지연된 하천에서 홍수 위험이 현실화됐다.

지난 7월 오산천은 수위 상승으로 잠수교와 하상도로 등 3곳이 통제됐고, 공릉천 원당교 지점에도 홍수주의보가 발령돼 주변 통행과 하천변 출입이 제한됐다.

특히 공릉천은 2022년 제방 세굴 피해에 이어 지난해 수문 파손 피해까지 발생했지만, 정부가 제시한 기본계획 수립 예정연도는 내년으로 잡혀 있다.

이미 피해를 경험한 하천이지만 종합적인 관리계획 정비에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 “피해 난 뒤 복구만으로는 하천관리 책임 다한 것 아니다”

반복되는 침수와 제방 피해에 비해 예방을 위한 계획 정비가 뒤처지면서 정부의 하천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집중호우가 잦아지고 강우 패턴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과거 기준으로 수립된 계획을 장기간 방치할 경우 실제 현장의 홍수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어기구 국회의원은 “주민들은 집과 농경지, 점포가 잠기는 피해를 겪는데 정부는 홍수 대비의 기본인 법정계획조차 제때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가 난 뒤 막대한 복구비를 투입하는 것만으로 하천관리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복된 피해와 달라진 강우 여건을 반영해 계획 재수립을 서둘러야 한다”며 “정부는 하천별 지연 책임과 완료 기한을 분명히 하고, 계획 수립 전이라도 취약 구간의 점검과 정비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수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비를 투입하는 것과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제방이 무너지고 하천 주변이 침수된 뒤에도 법정계획이 수년째 늦어지고 있는 현실은 ‘사후 복구’ 중심의 하천관리에서 ‘선제 예방’ 중심으로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국가하천 89곳 가운데 20곳이 법정기한을 넘긴 현재, 정부가 각 하천의 계획 지연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언제까지 무엇을 개선할 것인지 구체적인 관리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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