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아성이 영화 '파반느'를 통해 10년이라는 긴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었다. 20대 시절 원작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종필 감독과 시나리오 수정고를 함께 고민하던 시간까지, 그녀의 청춘 한 조각은 늘 '파반느'와 맞닿아 있었다. 촬영을 모두 마치고 인터뷰 자리에 선 고아성은 "영화를 많이 찍고 내보내는 것을 수차례 해봤지만 유독 더 특별한 작업인 것 같다"며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짙은 여운을 드러냈다.

이번 영화에서 고아성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는 10년 동안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상대역 '경록'과의 만남이었다. 고아성은 문상민 배우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의 공기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사실 문상민 배우는 그때도 정말 청춘스타였고 지금은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아요. 제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감독님과 상민 배우의 리딩 현장에 깜짝 등장했던 적이 있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아, 진짜 너였구나. 내가 너를 기다렸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그녀는 문상민의 차가운 눈빛 안에 담긴 불타는 열정을 발견한 순간, 그동안 혼자 대사를 치며 연습했던 희미한 경록의 얼굴이 비로소 뚜렷해지는 감격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촬영 현장에서 고아성은 캐릭터의 몰입을 위해 문상민과 의도적인 거리감을 유지했다고 한다. 미정과 경록으로서의 애틋함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몰입은 배우 고아성에게도 깊은 후유증을 남겼다. 그녀는 "촬영하면서 정말 지난 한 시절을 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짜 사랑에 빠진 듯했고,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문상민 배우가 연기한 경록의 잔상이 아른거렸다"고 고백했다.
고아성이 가장 애정하는 장면은 경록이 바쁜 와중에도 미정을 찾아와 복도 저쪽 끝에서 미정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경록의 모습만 또렷하게 보이고 게다가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졌던 그 장면에 대해 고아성은 "분명히 정상 속도로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슬로우를 건 장면인데 이상하게 그 장면을 촬영할 당시 제 눈에 손 흔드는 문상민의 모습이 슬로우로 보였다. 그정도로 그때 그 모습이 너무 저릿하게 기억이 남아 제일 애정하는 장면으로 꼽힌다"라며 미정의 세계에 얼마나 빠져들어 촬영에 임했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이러한 '상사병' 같은 증상은 영화의 믹싱과 편집이 모두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짙은 우울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고 이 10여 년의 작업이 종지부를 찍는 건가 싶어 씁쓸했는데, 영화가 공개되고 관객분들이 저와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시는 걸 보며 나 혼자만 이런 게 아니구나 싶어 외로움이 해소됐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종필 감독과의 돈독하면서도 묘한 관계성 역시 이번 작업의 핵심이었다. 이미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지만, 고아성은 감독과의 관계를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는 우리만의 거리감'이라 정의했다. "감독님께서 인터뷰에서 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10년 동안 이 작품을 함께 준비했다고 하니까 제가 감독님과 엄청 친하실걸로 생각되실 것 같은데 사실은 안 그렇다. 감독님이 엄청 살갑게 친하게 지내는 다른 배우분들을 보면 조금 질투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저는 감독님과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작업에 임하는 이 관계가 좋다. 60번 넘게 수정된 시나리오를 두고 '이 대사는 이번 수정고에서 빼야 하지 않을까요' 같은 고민을 저와 함께해주시는 분이기에 전적으로 믿고 임할 수 있었다."라며 이종필 감독을 이야기했다.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도 풍성했다. 이종필 감독과 함께 촬영을 위한 주요 장소 헌팅도 같이 다니면서 백화점 지하 주차장, 켄터키 호프집 등의 촬영은 어디에서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던 고아성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촬영 당시, 호프집에서 주인공 셋이 회식하는 장면을 찍으며 "이거 분명히 '파반느'에서 온 장면이죠?"라고 감독에게 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너무 아끼는 '파반느'의 감성을 전작에 미리 빌려주는 것 같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작 '파반느' 촬영장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 감독의 연출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촬영 중 계획에 없던 감정이 터져 나왔던 지하철 장면을 언급하며 "경록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냐'고 묻자 경록이 '그러면 안 되는 거냐'고 답했을 때, 감정이 너무 터져버렸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미정의 마음이 제 개인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아성은 이번 영화를 통해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서 꼭 해보고 싶었던 로망도 이뤘다. "사랑은 양방향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저는 혼자 있을 때도 씩씩하고 든든한 여주인공의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후반부에서 이종필 감독님이 그런 장면을 만들어주셔서 연기하는 내내 정말 행복했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과 동시 접속한 소감을 전하며 그녀는 "태국에 계신 관객분이 '제 아내 미정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보내주신 메시지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웃어 보였다.
고아성은 "미정이 갖고 있는 기억에서 빛을 찾아준 경록을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결말에 만족한다"고 밝히며 이종필 감독이 농담처럼 던진 '희대의 악녀' 역할 제안에 대해 고아성은 "사실 최근에 악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었다. 굉장히 솔깃하다"며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10년을 품어온 미정을 성공적으로 떠나보낸 고아성, 그녀의 다음 페이지는 또 어떤 빛깔로 채워질지 주목된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게 되는 영화 '파반느'는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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