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가 길거리 노숙과 넝마주이 생활을 견디며 성장해 연 매출 100억 원 규모의 광고 회사를 일군 뒤, 현재는 길거리 미술관을 만드는 문화기획자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박동훈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진한 감동을 전했다.

24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뤄낸 '길거리 미술관 기획자' 박동훈의 인생 여정과 철학이 공개됐다. 박동훈은 40년 동안 광고 회사를 운영하며 직원 100명 규모, 연 매출 100억 원을 기록한 인물로 '충무로 성공 신화'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날 서장훈은 박동훈을 만나 "평생 벌어들인 돈을 길거리에 투자했다고 들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제로 그는 시민 누구나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충무로 일대에 7개의 길거리 미술관을 조성했다. 이 사업에 투입된 비용은 총 38억 원에 달한다.
특히 미술관이 세워진 장소들도 눈길을 끌었다. 쓰레기가 쌓여 있던 육교 아래 공간부터 도로 공사 후 남겨진 삼각형 모양의 자투리땅까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공간들이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박동훈의 집 역시 독특한 감각이 돋보였다. 세심한 기획력과 안목이 반영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은 가운데, 한류스타 배용준이 사용했던 전 세계 200대 한정판 TV와 고(故) 이건희 회장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리그넘 바이티 소재의 벽 오브제도 공개됐다.
화려한 성공 이면에 자리한 힘겨운 과거도 함께 조명됐다. 경남 산청 지리산 인근에서 외할머니와 생활했던 그는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부잣집 대청마루에 놓인 누룽지 물을 몰래 마셨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학비 문제로 어머니를 찾아 서울에 올라온 그는 호떡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재회했다. 하지만 집이 없었던 탓에 첫날 밤은 버스 종점 화장실 옆에 세워둔 리어카 곁에서 보냈다. 바닥에 은박지를 깔고 잠을 청했던 그는 "그곳이 서울에서 처음 가진 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알로에 농장에서 물을 주는 일을 돕는 조건으로 비닐하우스 한 칸을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게 됐다. 그는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뛰어난 미술 실력을 인정받아 예술고등학교로 옮겼지만, 높은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충무로 거리에서 폐지를 줍고 버려진 물건을 모으며 생계를 이어갔고, 스티커 제거 작업과 납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종이를 주울 때도 그림이 인쇄된 부분은 따로 모아 공부했다"고 밝혔다. 이후 디자인 회사에 인쇄 담당으로 입사한 뒤에는 직접 그린 그림을 사장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기회를 만들었다. 비록 작품이 여러 차례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은행 로고 디자인을 맡으며 디자이너로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대기업 광고 콘티 작업을 연이어 맡으며 입사 3년 만에 디자인 실장 자리에 올랐다. 1992년에는 29세의 나이로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고, 회사를 연 매출 100억 원 규모로 성장시키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박동훈은 "학연도, 지연도, 인맥도 없었던 나를 성장시켜준 곳이 바로 충무로였다"며 자신이 청춘을 보낸 공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매주 수요일 밤 9시 55분 방송되며, 방송 이후에는 넷플릭스·Wavve 등 OTT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가난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박동훈의 삶은 성공의 크기보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iMBC연예 유정민 | 사진출처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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