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안상호는 누구? 100년 전 신문 "완전히 내지화된 가정" [이슈in]
배우 하영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그의 행적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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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하영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iMBC연예에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가 맞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된 안상호의 친일 행각 의혹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안상호는 1872년생으로, 일제강점기인 1902년 도쿄자혜의원의학교를 졸업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1904년 귀국해 지석영이 세운 의학교와 동담한의학교에서 서양의학을 강의했다. 또한 서울 종로3가에 개인 진료소를 마련하여 의료 활동을 벌였고, 일본인 의사들의 단체인 경성의사회에 대항하여 한국인 의사로 구성된 한성의사회 회장을 맡았다.

1919년에는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자, 급히 진료했으나 끝내 구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일본인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그러나 뚜렷한 증거가 없어 학계에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도 안상호의 행적이 드러난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에서 확인 가능한, 1918년 12월 10일 발행된 매일신보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생활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완연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으로,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일본식 생활양식과 풍습을 받아들여 생활하고 있다는 안상호가 등장한다.

이 기사는 "조선에 처음으로 서양 의술을 수입해 성공한 안상호 씨는 일선동체의 가정을 만드는 데도 제일 먼저 성공의 기를 들었다"고 소개한다. 또한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고 조선 옷은 한 벌도 없다"고 말한 기록이 남겨졌다. 이는 조선총독부 측이었던 매일신보가 안상호의 가정을 두고 '일본식 생활을 받아들인 모범 가정'으로 선전하는 기사로 읽히는 대목이나, 이 역시 그가 실제 친일 행각을 벌였는지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증조부 안상호의 후손 하영은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에 출연했다.



iMBC연예 백승훈 | 사진 iMBC연예 DB | 사진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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