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고구마처럼 가슴이 콱 막히는데, 자꾸 손이 간다. '들쥐'에 대한 이야기다.


오는 28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는 의문의 존재 '들쥐'에게 이름과 얼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소설가 제문재(류준열)와 잃어버린 돈을 회수하려는 사채업자 노자(설경구), 형사 순용(이규형)이 들쥐의 정체를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10부작 추적 스릴러다. 공개에 앞서 리뷰를 위해 4회까지 시청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설화 '손톱 먹은 쥐'를 모티브로 했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최근 타인의 삶과 정체성을 훔치는 이야기가 잇따라 흥행한 만큼, 소재 자체만 놓고 보면 '들쥐'를 마냥 신선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안나'나 '레이디 두아'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탐하고, 거짓말을 거듭해 기어코 남의 인생을 차지하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이들의 선택은 비도덕적이고 위태롭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거짓말이 어디까지 통할지, 주인공이 얼마나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지 지켜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남의 인생을 훔치는 자의 대담한 질주가 곧 서사의 추진력이 된 셈이다.
'들쥐'는 이 익숙한 구도를 정반대로 뒤집는다. 남의 인생을 훔치는 자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들쥐가 제문재의 얼굴과 이름을 차지하고, 정작 진짜 제문재는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지 못한다. 타인의 삶을 가로채며 질주하는 쾌감 대신,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발악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래서 카타르시스 대신 답답함이 밀려온다.

시청자는 제문재와 함께 물에 잠겨 허덕이게 된다. 눈앞에 수면이 보이는데 좀처럼 머리를 내밀지 못한다. 더욱이 제문재는 위기를 시원하게 격파하는 영웅과 거리가 멀다.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발 빠르게 좇지 않고, 팔자 탓이나 하며 넋 놓고 살아온 문제적 남자다. 앙상한 몰골로 위기마다 보는 이의 속을 터지게 하는 행동을 거듭한다. 이미 자신의 삶을 빼앗은 상대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제문재는 뒤늦게 허우적거릴 뿐이다.
흥미로운 건 바로 이 답답함이 '들쥐'의 약점인 동시에 가장 큰 묘미라는 점이다. 제문재가 왜 저렇게 사느냐며 혀를 차다가도 어느 순간 그와 함께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손에 쥔 신분증 하나,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 몇 명, 각종 개인정보와 기록이 사라진다면 과연 나는 나 자신임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여기서 오래된 설화가 현대적인 공포로 다시 살아난다. 손톱을 먹은 쥐가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삶을 대신한다는 기괴한 옛이야기를 개인정보와 각종 인증 시스템으로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현대사회로 옮겨온 발상이 제법 절묘하다. 얼굴도 이름도 같은데 시스템이 가짜를 진짜로 인정하는 순간, 진짜는 순식간에 가짜가 된다. '들쥐'가 옛 설화에서 길어 올린 공포는 의외로 지금의 현실과 가깝다.
특히 원작의 복잡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각색이 돋보인다. 원작 웹툰이 독자를 거칠게 밀어 넣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만드는 불친절함을 지녔다면, 드라마 '들쥐'는 시청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한 뒤 폐쇄된 세계에 몰아넣는다. 큰 줄기를 명확하게 세우고 인물들의 목적과 관계를 차근차근 보여주면서도 핵심 미스터리를 놓치지 않는다. 원작의 기괴한 정서와 묵직한 질문은 살리되 진입장벽은 낮춘 셈이다.

류준열의 연기도 추격전에 힘을 보탠다. 제문재는 멋있을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초라하고 지친 모습으로 자신의 삶에서 밀려난 인간의 처절함을 드러내야 한다. 류준열은 빼짝 마른 몸과 예민하게 일그러지는 얼굴, 불안에 쫓기는 몸짓으로 제문재의 절박함을 극대화한다. 발성도 한몫한다. 막다른 상황에서도 멋지게 소리치는 대신 '빼-액'하고 지질하게 발악한다. 반대로 똑같은 얼굴을 하고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들쥐'와의 대비는 작품의 질문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이렇듯 위기를 단숨에 해결하는 영웅도, 수려한 비주얼로 눈을 사로잡는 미남 배우도 없다. 화려한 볼거리로 눈을 현혹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짜증 섞인 한숨 사이로 궁금증은 쌓여간다. 4회까지 '들쥐'가 시청자를 붙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오로지 이야기의 힘이다.
관건은 남은 6부다. 지금까지 제문재가 겪는 고통과 시청자가 느끼는 갑갑함은 분명 '들쥐'만의 맛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답답해서 속이 터지는데도 다음 화를 누르게 만드는, 꽤 맛있는 고구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고구마만 계속 먹으면 결국 목이 막힌다. 제문재가 끝없이 당하고 허덕이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지금의 묘미도 피로감으로 바뀔 수 있다. 남은 6부에서는 적절한 순간 사이다도 한 잔씩 내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시 고구마에 손이 갈 테니 말이다.
iMBC연예 이호영 | 사진 iMBC연예 DB | 사진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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