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2504승·162퇴장·14연속 우승…김하성 소속팀 왕조로 이끈 명장, 바비 콕스 84세로 별세
바비 콕스 감독(사진=MLB.com)바비 콕스 감독(사진=MLB.com)

[더게이트]

김하성의 소속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황금기를 일궜던 두 거인이 불과 며칠 사이로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테드 터너 전 구단주의 비보가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의 14년 연속 지구 우승을 진두지휘한 바비 콕스 전 감독이 10일(한국시간)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심부전 등 합병증과 사투를 벌여온 끝이다. 1990년대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던 '애틀랜타 왕조'의 두 설계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함께 사라졌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콕스 감독은 야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강팀의 시대를 이끌었다"며 고인을 기렸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콕스 감독이 남긴 통산 2504승은 코니 맥, 존 맥그로, 토니 라루사에 이어 역대 4위에 달하는 대기록이다.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14년 연속 지구 우승은 현대 야구에서 재현 불가능한 신화로 평가받는다. 1995년에는 애틀랜타 연고 프로팀 사상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기기도 했다.

애틀랜타 구단의 추모 메시지(사진=애틀랜타 브레이브스 SNS)애틀랜타 구단의 추모 메시지(사진=애틀랜타 브레이브스 SNS)


'브레이브스의 심장' 콕스와 전설의 투수진

그 전성기에는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로 구성된 '명예의 전당' 트리오가 늘 곁에 있었다. 세 투수 모두 훗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콕스 감독 역시 2014년 첫 투표 자격을 얻자마자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콕스 감독은 총 두 차례에 걸쳐 애틀랜타 지휘봉을 잡았다. 1978년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구단주였던 터너에게 해고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터너 전 구단주는 당시 "콕스 같은 사람을 후임으로 찾겠다"고 말해 조롱을 샀지만, 결국 1985년 다시 콕스를 불러들였다. 당시엔 감독이 아닌 단장 직함이었다.

단장으로서의 능력도 탁월했다. 1987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플레이오프 레이스 중 검증된 선발 투수를 원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더블A 유망주였던 존 스몰츠를 도일 알렉산더와 맞바꿨다. 그리고 1990년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로 치퍼 존스를 지명하며 왕조의 기틀을 닦았다. 그 스몰츠는 20년간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었고, 존스도 19년간 팀의 간판으로 뛰었다.

선수들에게 콕스 감독은 단순한 지도자를 넘어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글래빈은 "야구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법, 좋은 동료가 되는 법을 모두 그에게 배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내가 경기를 망치면 자책감과 함께 그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10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앤드루 존스 역시 소셜미디어에 "나의 제2의 아버지, 편히 쉬시라"는 글을 올렸다. 콕스 감독과 함께한 선수 중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이는 조만간 여섯 명이 된다.

바비 콕스 감독이 퇴장당하는 장면(사진=MLB.com)바비 콕스 감독이 퇴장당하는 장면(사진=MLB.com)


162회 퇴장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마음'

콕스 감독은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인 162회의 퇴장 기록 보유자다. 생전 그는 "설령 선수가 완전히 틀렸더라도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강조해 왔다. 심판과 얼굴을 붉히면서도 끝까지 선수들의 방패가 되어준 그의 리더십에 선수들은 진심 어린 신뢰로 화답했다.

뇌졸중 이후의 삶은 고단했다. 말하는 것조차 버거웠고 오른팔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콕스 감독은 야구장을 떠나지 않았다. 2019년 9월 트루이스트 파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관중이 기립했고, 2024년 7월에는 4년 만에 구장을 다시 찾아 클럽하우스에서 현역 선수들과 사진을 찍었다. 몇몇 선수는 눈물을 삼켰다.

2025년 8월 22일, 1995년 월드시리즈 우승 30주년 기념행사는 그가 나타난 마지막 공식 석상이었다. 휠체어를 탄 채 컨버터블 차량에 올라 퍼레이드를 하는 노감독을 향해 옛 제자들은 "사랑한다"며 손을 맞잡았다. 전광판에 콕스 감독의 얼굴이 비치자, 현역 스타들보다 더 큰 함성이 쏟아졌다. 스몰츠는 "그날 밤 가장 빛나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팸과 여덟 자녀, 그리고 23명의 손자가 남았다. 애틀랜타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긴 전설은 이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일군 왕조의 영원한 수장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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