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는 미국에서, 훈련은 멕시코에서...침략국에서 월드컵 치르는 이란, 결국 '멕시코 우회로' 택했다
이란 축구대표팀이 베이스캠프를 멕시코로 옮긴다(사진=캔바 생성 이미지)이란 축구대표팀이 베이스캠프를 멕시코로 옮긴다(사진=캔바 생성 이미지)

[더게이트]

침략당한 나라가 침략국 본토에서 월드컵을 치러야 하는 기구한 처지. 대회 보이콧부터 경기 장소 변경까지 온갖 방법을 따져본 끝에 이란이 결국 우회로를 찾아냈다.

24일(한국시간) 이란 축구협회 메흐디 타지 회장은 성명을 내고 "FIFA의 승인 아래, 이란 대표팀 베이스캠프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멕시코 티후아나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2026 FIFA 월드컵 개막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의 전격적인 결정이다.

타지 회장은 "훈련장, 체육관, 전용 식당 등 팀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춘 아름답고 현대적인 복합시설"이라며 "로스앤젤레스 경기장까지 비행시간이 55분에 불과해 기존 투손 캠프보다 오히려 가깝다"고 설명했다. 샌디에이고 바로 남쪽,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걸쳐 있는 도시 티후아나까지 버스로도 약 3시간 20분이면 충분하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이란 대표팀의 월드컵 참가 여부가 안개속이다(사진=나노바나나 생성 이미지)이란 대표팀의 월드컵 참가 여부가 안개속이다(사진=나노바나나 생성 이미지)


전쟁이 바꿔놓은 월드컵 분위기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전역에 기습 공습을 단행했다.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국방위원회 서기 알리 샴하니, 총참모장 압돌라힘 무사비,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모하마드 파크푸르 등 이란 안보 수뇌부가 한꺼번에 사망했다. 이란은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내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으로 보복했고, 전선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축구판도 발칵 뒤집혔다. 이란 체육부 장관 아흐마드 도냐말리는 "이 부패한 정권이 우리 지도자를 암살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다"고 이란 국영TV를 통해 보이콧을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이란의 참가 여부를 묻는 말에 "솔직히 상관없다. 이란은 완전히 패배한 나라"라고 잘라 말했다.

이후 "이란 대표팀은 월드컵에 참가해도 좋다"는 입장을 내긴 했지만 말뿐인 환영이었다. 국무부는 IRGC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의 입국을 불허하겠다고 못 박았다. 타지 회장 본인도 밴쿠버에서 열린 FIFA 총회 참석차 토론토 공항을 통과하려다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란 선수단 전원의 미국 비자 역시 개막 한 달 전까지 단 한 장도 발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란 협회는 FIFA에 수차례 이의를 제기하며 신변 보장을 요구했다. 3월에는 경기 장소 자체를 미국에서 멕시코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FIFA는 일정 변경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베이스캠프만이라도 멕시코로 옮기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타지 회장은 "티후아나 이전으로 비자 문제 등이 대부분 해소될 것"이라며 "이란항공 직항편 이용도 가능하다"고 했다. 경기 일정 자체는 그대로다. 이란은 6월 15일 뉴질랜드, 21일 벨기에와 캘리포니아 잉글우드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맞붙은 뒤, 26일 시애틀 루멘필드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조별리그를 마친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베이스캠프를 멕시코에 둔다 해도 선수단은 경기일마다 미국 땅을 밟아야 한다. 신분이 불분명한 스태프나 임원 중 일부는 캠프에 남겨두고 경기장엔 동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애리조나 키노 스포츠 콤플렉스 측은 이미 이란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이와 관련 시설 측과 FIFA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란이 4회 연속, 통산 7번째 월드컵 무대를 밟는 것은 이제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침략국 경기장 잔디 위에 서기까지, 남은 3주 동안 어떤 변수가 또 불거질지는 알 수 없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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