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타자들만 못 치는 게 아니었네...WBC서 한국 타선 침묵시킨 그 좌완, 44.2이닝 연속 무실점 대기록
크리스토퍼 산체스(사진=MLB.com)크리스토퍼 산체스(사진=MLB.com)

[더게이트]

한국 야구대표팀이 무기력하게 당했던 게 어쩌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두 달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에서 한국 타선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도미니카공화국의 왼손 투수가 이번엔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좌완 크리스토퍼 산체스는 2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6피안타 9탈삼진 무볼넷 무실점의 역투로 팀의 3대 0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산체스의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은 44.2이닝으로 늘었다. 1911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가 달성한 필라델피아 프랜차이즈 역대 최장 연속 무실점 기록(41이닝)을 115년 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봐도 1961년 리그 확장 이후 좌완투수 신기록이다. 종전은 2014년 LA 다저스 시절 클레이튼 커쇼의 41이닝이었다.

크리스토퍼 산체스(사진=MLB.com)크리스토퍼 산체스(사진=MLB.com)


마이애미에서 한국야구 대표팀의 악몽

산체스는 한국 야구 팬들에게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선수다.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팟파크에서 열린 2026 WBC 8강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 선발로 나선 산체스는 한국 대표팀 타선을 5이닝 2피안타 1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마구에 가까운 싱커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앞세워 18개의 헛스윙을 유도했고, '바람의 손자' 이정후는 삼진과 병살타로 물러났으며 5회말에는 셰이 위트컴, 김혜성, 박동원이 나란히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결국 한국은 0대 10, 7회 콜드게임으로 완패하며 8강에서 짐을 쌌다. 당시 무기력한 한국 타선을 두고 '세계 레벨과 차이가 크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사실 메이저리그 타자들도 산체스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날 기록 경신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1, 2회에 주자를 내보내며 아슬아슬하게 출발했고, 4회초 매니 마차도의 타구가 담장 직전에서 잡히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산체스는 흔들리지 않고 후속 잭슨 메릴을 2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알렉산더의 기록을 넘어섰다. 이후에도 3이닝을 추가로 막은 뒤 100구를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주먹을 불끈 쥐며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모습이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타선에서는 카일 슈워버의 6회 1타점 적시타가 물꼬를 텄고, 트레아 터너가 9회 시즌 7호 솔로홈런으로 쐐기를 박았다. 마무리 호세 알바라도가 9회를 완벽히 막으며 시즌 첫 세이브를 챙겼다. 샌디에이고 선발 워커 뷸러는 패전(3승 3패)을 떠안았다. 산체스는 이번 등판을 포함해 최근 5경기 연속 7이닝 이상 무실점을 기록했다. 필라델피아 구단 역사상 전무한 기록이며,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역대 6번째에 불과한 대기록이다.

크리스토퍼 산체스(사진=MLB.com)크리스토퍼 산체스(사진=MLB.com)


역대 좌완 최장 기록까지 단 1이닝

산체스는 이미 지난 시즌 202이닝 212탈삼진, 평균자책 2.50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른 특급 에이스다. 올 시즌에는 6승 2패, 평균자책을 1.47까지 끌어내리며 한 단계 더 진화했다. 현재 44.2이닝 연속 무실점은 1920년 라이브볼 시대 이후 메이저리그 역대 7위 기록이다. 역대 최장은 1988년 오렐 허샤이저의 59이닝이며, 좌완 최장은 1933년 뉴욕 자이언츠 시절 칼 허벨이 세운 45.1이닝이다. 산체스는 이 좌완 기록에도 단 1이닝 차로 따라붙었다.

산체스의 다음 선발 등판은 전년도 우승팀 LA 다저스와의 원정 3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WBC 8강에서 한국 대표팀을 꼼짝 못하게 묶었던 에이스가 리그 최강팀을 상대로 또 하나의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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